5년 만에 햇빛 본 ‘니 부모 얼굴을 보고 싶다’에 던지는 의문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이번 주에 개봉된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사실 5년 전에 촬영이 끝난 작품이다. 영화를 보면 티가 나는 것이, 그 동안 비중 있는 주연급으로 성장한 노정의가 이 영화에서는 정말로 어리게 나오기 때문이다. 어쩌다 보니 출연작이 연달아 개봉하게 된 천우희만 봐도 ‘앵커’의 어른 얼굴과 비교해보면 풋풋하기 짝이 없다.

여기에는 다들 아는 사연이 있다. 주연배우 중 한 명인 오달수에 관련된 폭로가 영화 촬영이 끝난 뒤 터졌던 것이다. 영화를 보면 재촬영은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다. 캐릭터의 비중이 크고 계속 다른 캐릭터들과 얽히는데, 그 중 몇 명은 중학생이고, 아이들은 빨리 자란다. 무엇보다 세트는 이미 헐어버린지 오래고. 사람들은 배우 교체의 모범적인 사례로 케빈 스페이시를 크리스토퍼 플러머로 교체한 ‘올 더 머니’ 이야기를 하는데, 그 영화에서 플러머의 캐릭터는 공간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분리되어 있어서 교체가 상대적으로 용의했다.

보다 적극적인 트릭을 동원해 캐릭터들이 화면 안에서 어울리는 배우 교체의 사례로는 크리스 델리아를 티그 노타로로 교체한 ‘아미 오브 더 데드’가 있는데, 아마 그 작업을 하느라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총제작비의 몇 배가 깨졌을 것이다. 사람들은 CG가 만능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결국 어떤 불운한 영화들은 문제가 되는 배우를 끌고 가야 한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그랬던 것처럼.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원작이 있다. 극작가이며 현직 교사인 하타시와 세이고가 쓴 희곡이고 이 작품은 나중에 원작자 자신이 소설화했다. 희곡은 10년 전부터 꾸준히 우리나라에서도 공연되는 작품이다. 원작과 영화가 공유하는 공통된 설정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던 중학생이 자살(시도)를 하고 편지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들의 부모들이 학교에 불려온다는 것이다.

희곡과 영화는 많은 점이 다른데 가장 큰 차이점은 남성화되었다는 것이다. 원작은 가톨릭 여자 중학교에서 벌어지는데 영화는 공학인 명문 국제 중학교가 무대이고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남자다. 주인공인 학부모들도 아버지 쪽으로 무게 균형이 쏠려 있다. (천우희가 연기한 담임교사 캐릭터도 원래는 남자였다고 한다) 학교 회의실에서 아이들 없이 학부모와 교사 중심으로 전개되는 원작과는 달리 영화는 시공간이 열려있고 아이들의 비중도 크다. 영화가 연극보다 보기 힘든 이유도 아이들의 극단적인 폭력과 폭언이 어떤 필터도 거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전시되기 때문인데, 이것이 과연 얼마나 옳은 선택인지 확신할 수 없다.

대립구조를 설경구 캐릭터인 접견 변호사와 오달수 캐릭터인 병원원장의 기싸움으로 단순화시킨 선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원작과 영화 모두 끔찍한 어른들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은 같다. 하지만 두 남자 중심으로 몰아가다보니 다양한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결이 사라져버린다. 무엇보다 두 남자는 크게 다를 게 없는 사람들이다. 아들을 위해 모든 짓을 다하고 그 과정 중 발생하는 피해에 대해서는 외면하는.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그마나 깨지기 쉬운 설경구 캐릭터에게 위기를 주면서 교훈이 있는 도덕극으로서 기능을 수행하려 하지만 그렇다고 동아시아 이야기 특유의 패배주의와 중년남자의 자기연민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이렇게 악의 저열함과 단순함이 한국 남성 사회의 힘겨루기 속에 묻혀 버린다면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가 나오기 힘들다. 결국 좋은 이야기는 진부하고 추한 현실을 그대로 전시하는 것만으로는 나올 수 없기 때문에.

잘 만든 대중영화이고 결코 지루하다고 할 수 없다. 끊임없이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고 방향을 전환하는 각본도 관객들을 긴장시킨다. 사실 이 반전이라는 것들은 대부분 관습화된 것들이라 예측하기 어려운 건 아닌데, 그래도 적절한 위치에 있다면 여전히 올바른 기능을 수행한다. 종종 문제가 된 배우의 얼굴을 보는 게 힘들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캐스팅도 좋다. 단지 그렇게 캐스팅한 배우들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섞고 입체적으로 쓸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김홍파와 남기애는 완전히 낭비된 배우이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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