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숙의 인생캐와 완전 다른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의 힐링캐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수많은 장년 여배우들이 본인의 캐릭터를 바탕으로 예능으로 진출한 지는 이미 오래다. 배우 김영옥과 김수미는 욕쟁이 할머니 롤로 수많은 예능을 섭렵했다. 반면 윤여정은 젊은 층의 사랑을 받으면서, tvN <윤식당> 등을 통해 시크하고 쿨한 장년 여성 예능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그에 비하면 KBS 예능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의 박원숙은 조명을 덜 받은 셈이다. 이미 프로그램이 시즌3에 이르렀고, 화요일 KBS 저녁 예능에서 꾸준한 시청률을 올리고 있음에도 말이다.

물론 그 이유도 이해는 간다.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는 젊은 층에 어필하는 예능 프로는 아니다. KBS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와 <1박2일>의 어딘가 중간쯤으로 배우 또래 나이 여성들에게 전해지는 편안한 힐링이 프로그램의 목적이다. 따라서 잔잔한 미션들은 있지만, 그렇게 톡톡 튀거나 자극적인 프로는 아닌 것이다. 프로그램 포맷 역시 박원숙을 포함 4선녀의 남해 박원숙 집에서의 모임이나 여행을 중심으로 이런저런 수다와 체험을 주고받는 방식이다. 그 사이 간간이 지난 시절의 화려한 전성기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가지만, 어느새 먹고 사는 수다와 잔잔하게 어우러진다.

그럼에도 2017년 KBS1에서 교양 성격으로 출발한 이 프로그램은, 박원숙의 편안한 리더십과 잔잔한 입담 덕에 2022년까지 사랑받는 시즌제 예능으로 자리 잡았다.

박원숙은 사실 또래 배우 중에서도 캐릭터성이 강한 배우였다. 21세기형 못된 시어머니 캐릭터로 2000년대 주말극에서 한 번 더 전성기를 맞이했고, 미워할 수 없는 코믹 악역이 무엇인지 강렬하게 보여주었다.

허나 박원숙은 예능에서 이 캐릭터를 그대로 끌어들이지 않았다. 이것은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다. 2014년 JTBC <님과 함께>에서 임현식과 가상부부 롤로 등장했을 때도 MBC <한지붕 세가족>의 순돌이 엄마의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오지 않았다. 임현식과 아웅다웅하면서 함께 늙어가는 동료 배우로서의 우정 같은 케미를 유쾌하게 보여줬다.

뭐랄까, 그간의 예능에서 박원숙은 이랬다. 모든 것에 달관했으면서도, 그런 티를 내지 않는 편안하고 소탈하고 유쾌한 성격을 드러낸다. 그러면서도 은근히 밉지 않은 재치가 있다.

박원숙의 이런 면은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에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런 편안함 속에서 박원숙은 베테랑 코믹 배우답게 심심한 플롯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끌고 가는 방법을 알고 있다. 밉지 않은 악역 배우 출신답게 적당히 빌런의 역할을 하기도 하고, 또 맏언니의 역할을 한다. 그러면서도 함께 등장하는 친구들이 묻히지 않게 적절한 수준에서 치고 빠지는 능력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최근 방송에서 새 친구가 오는 상황에서 “나는 천사처럼 대할 거다.”라는 김청의 말에 “위선적으로 하지 말고 하던 대로 하라.”고 밉지 않게 쏘아주는 말투 같은 것이 그렇다. 또 박원숙은 이훈과 이경진의 출연 회차에서 보듯, 출연자들의 마음에 담긴 이야기를 끌어내는 진행자로의 편안한 모습도 이제는 능숙하게 보여준다.

2020년대에 박원숙은 <박원숙의 같이삽시다>를 통해 코믹악역 베테랑 배우에서 장년 여성 예능의 편안한 얼굴로 자리매김하기에 충분하다. 생각해 보면 배우와 예능, 두 개의 영역에서 이렇게 다른 캐릭터로 사랑받는 스타도 생각보다 많지는 않다. 어쩌면 지금 시대에는 박원숙이 유일무이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KBS, JTBC,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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