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업계의 감정 폭발, 옥주현과 제작사의 대응이 불편한 이유

[엔터미디어=정덕현의 이슈공감] 뮤지컬업계가 며칠째 시끌시끌하다. 뮤지컬 <엘리자벳> 캐스팅을 두고 벌어진 논란이 그 진원지다. 지난 13일 공개된 <엘리자벳> 10주년 기념 공연에 옥주현과 이지혜가 주인공으로 더블 캐스팅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지난 시즌 출연자였던 배우 김소현이 빠지고 이지혜가 캐스팅된 것이 옥주현과의 친분 때문이라는 의혹이 일었고, 배우 김호영이 SNS에 “아사리판은 옛말이다. 지금은 옥장판”이라고 저격글을 올리자, 옥주현이 “사실 관계없이 주둥이와 손가락을 놀린 자는 혼나야 한다”며 김호영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고소에 김호영 측도 맞고소를 예고했고, 여기에 뮤지컬 1세대인 배우 남경주, 최정원, 음악감독 박칼린의 입장문이 발표되고 이를 동조하는 동료 배우들의 지지선언이 이어지면서 옥주현과 김호영 사이의 공방전은 뮤지컬계의 고질적인 문제를 끄집어냈다. 표면적으로는 김호영과 옥주현의 진실게임 같은 공방전으로 보이지만, 실상 뮤지컬업계의 반응은 터질 게 터졌다는 쪽이다. 이른바 ‘스타캐스팅’이 망치는 현 뮤지컬업계의 현실이 그간 꾹꾹 눌려져 오다 드디어 폭발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옥주현은 캐스팅만으로도 흥행이 보증되는 뮤지컬 스타로 급부상한 인물이다. 걸그룹 핑클의 메인보컬로 활약하다 2005년부터 뮤지컬 배우로 전향했고, 연기력에 압도적인 가창력을 바탕으로 만만찮은 팬덤을 갖게 된 뮤지컬 배우가 됐다. 한때 아이돌 출신의 뮤지컬 입성에 부정적인 시선이 있던 시절이 있었지만, 옥주현은 그런 선입견을 깨고 ‘흥행 보증수표’로까지 불리게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 됐다.

게다가 지난 20년 간 한국의 뮤지컬 시장이 40배 가까운 규모로 급성장했고(현재는 약 연 4천억 원 규모다), 그 과정에서도 옥주현 같은 스타캐스팅은 산업적으로 뮤지컬을 키우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옥주현 이외에도 김준수, 박효신 등등 뮤지컬업계는 많은 스타들을 전면에 내세워 팬덤들을 끌어모았다. 뮤지컬 팬덤들은 심지어 N차 관람을 할 정도의 구매력으로 시장을 짧은 기간에 급성장시키는 동력이 됐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이번 캐스팅 논란을 자초한 EMK뮤지컬컴퍼니 같은 대형 제작사가 스타캐스팅을 위해 아이돌, 가수 등을 적극 등용했고, 그 과정에서 무리한 선택들로 논란을 일으키는 일도 벌어졌다. <모차르트!> 보이콧 사태가 벌어졌던 엠씨 더 맥스 이수의 주인공 캐스팅 사건이 대표적이다. 미성년자 성매매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던 이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했다는 사실에 대중들이 반발했고 결국 이수는 하차했다.

이번에 벌어진 이른바 ‘옥장판’ 사건은 이러한 스타캐스팅의 문제가 단지 마케팅의 차원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업계 사람들에게는 ‘인맥 캐스팅’ 같은 부작용으로 표출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흥행보증 수표가 된 스타라면 사실 제작사에서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인물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캐스팅에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위치로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물론 정반대로 제작사 역시 막대한 힘을 갖고 있는 만큼 그만한 책임의식이나 소명 없이 흥행만을 바라보게 된다면 ‘정도’가 아닌 선택들도 언제든 할 수 있다.

이를 테면 늘상 문제로 지목되었던 몇몇 스타에게만 쏠려있는 고액 개런티 문제나 이번에 불거진 인맥 캐스팅, 심지어 소속 연예인 끼워 넣기 같은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고 이것이 뮤지컬시장이 수치적으로는 40배 규모로 성장했어도 언제든 터질 뇌관으로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옥주현과 김호영 혹은 옥주현과 뮤지컬 선배들 그리고 그에 지지의사를 밝힌 후배들의 대결구도로 보거나, ‘집단 따돌림’ 혹은 ‘편 가르기’로 보는 시선은 이 사태 해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스타캐스팅 시스템이 가진 폐해들이고 그런 시스템을 누가 방조 혹은 동조하고 누가 오용했는가 하는 점이다.

파장이 확산되자 옥주현은 SNS를 통해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된 것에 책임을 느끼고 있고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사과하며 “소송과 관련하여 발생한 소란들은 제가 바로잡도록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옥주현은 “저는 뮤지컬 <엘리자벳> 10주년 공연 캐스팅에 어떠한 관여도 하지 않았다”며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아울러 “캐스팅과 관련한 모든 의혹에 대해 공연 제작사에서 사실관계를 명명백백히 밝혀주길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아직 전말이 드러나지 않아서 옥주현이 실제로 캐스팅에 힘을 발휘했는지는 알 수 없다. 또 현장에서 불거져 나오는 스텝들이 전하는 갖가지 ‘갑질 의혹’들도 그 진위를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이번 <엘리자벳> 캐스팅 과정에 있어서 이런 잡음들이 도처에서 터져 나온다는 건 어떤 식으로든 그 책임이 옥주현 당사자에게 일정 부분 있다는 걸 부정하긴 어렵다. 또한 스타의 힘이 막강해져 캐스팅에까지도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됐다고 해도, 캐스팅은 1세대 뮤지컬 배우들이 내놓은 발표문에도 들어있듯이 결국 “제작사의 고유권한”이다. 제작사가 막으려 한다면 막을 수 있다는 이야기고 따라서 그 책임도 제작사에 있다는 뜻이다.

스타캐스팅, 인맥캐스팅 같은 문제들은 결국 그 피해가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돌아가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작품을 보며 웃고 울었던 관객들에게 이런 어두운 뒷이야기들이 주는 실망감은 그 무엇으로도 보상하기 힘든 일이다. 따라서 관객들을 위해서라도 이런 캐스팅 과정에서 잡음이 나온 당사자들이나 제작사는 분명한 입장과 해명 나아가 필요하다면 사과와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노력에 대한 의지까지 전해야 한다. 지금 같은 상황은 그간 뮤지컬에 아낌없는 사랑과 박수를 쳐준 관객들에 대한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EMK뮤지컬컴퍼니, 프레인글로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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