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들도 흥행은 어려워? 극장 찾는 관객이 바뀌고 있다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사실 칸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작품이라고 무조건 흥행이 보장되던 시대는 지난 지 오래다. 아니 과거에는 영화제 수상작은 ‘재미없다’는 통념까지도 있던 시절이 있었다. 실제로 예술성과 작품성을 주로 보는 칸 영화제의 경우에는 보편적인 대중성을 가졌다기보다는 호불호가 취향에 따라 분명히 나뉠 수 있는 실험적이고 독특한 작품들이 수상을 하곤 한다. 당연히 극장에서의 흥행과는 거리가 있을 수 있다.

이번에 칸 영화제에서 송강호와 박찬욱이 각각 남우주연상과 감독상을 받은 <브로커>와 <헤어질 결심>이 극장에서는 그만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다. 각각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박찬욱 감독 같은 세계적인 거장이 연출했고 충분히 작품성이 있다고 해서 흥행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

물론 예외도 있다. 봉준호 감독 같은 경우가 그렇다. 봉준호 감독은 칸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던 <괴물>이나 상을 수상한 <기생충> 같은 작품들이 모두 흥행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이건 봉준호 감독의 작품 성향과 관련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즉 봉준호 감독은 예술성 있는 연출이지만 그냥 봐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을 선호한다. 대중적인 장르도 익숙하게 운용하고 그 안에서 색다른 이야기를 풀어내는 경향이 있어 좀 더 보편적인 공감대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박찬욱 감독의 작품 세계는 조금 다르다. 낯설게 하기에 가까운 새로운 연출이나 시각, 관점 등이 들어가 신선한 충격을 안긴다. 하지만 그 신선한 충격이 대중들에게 익숙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다소 낯설게 다가오는 경향이 있다. 영화의 예술적 성취는 높지만 대중적 어법을 굳이 따라가려 애쓰지 않는다. 아마 감독 본인도 알고 있을 게다. <헤어질 결심>이 굉장히 대중적인 영화는 아니라는 것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국내에도 팬덤이 있을 정도로 확실한 자기 세계를 갖고 있지만 이번 <브로커>는 다국적 작품으로서 그 이질적인 정서의 소통과 결합이 다소간의 불협화음을 낸 면이 있다. 충분히 감동적인 서사일 수 있었지만, 때론 너무 절제되고 때론 너무 감정 과잉으로 흐르면서 관객들을 설득시키지 못했다.

영화제 수상이 흥행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전제와 함께, 최근 코로나19를 겪으며 달라진 관객들의 성향도 이러한 흥행 저조의 원인으로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OTT를 경험하며 관객들은 굳이 극장까지 가서 표를 사 봐야 할 영화와 집에서 OTT로 봐도 될 영화를 부지불식간에 가르게 됐다. 보다 체험적이고 분명한 쾌감이나 즐거움을 주는 작품이어야 극장을 찾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범죄도시2>나 <탑건: 매버릭>이 흥행에 성공한 건 이 작품들이 왜 극장에서 꼭 봐야 하는가 하는 이유를 납득시켰기 때문이다. <범죄도시2>가 액션 블록버스터로서 코로나19로 답답했던 관객들을 시원시원한 액션으로 충분한 만족감을 주었다면, <탑건: 매버릭>은 마치 전투기 시뮬레이션을 하는 듯한 실감 영상과 음향으로 극장에서 봐야 더 재밌을 수밖에 없는 작품의 묘미를 선사했다.

그러니 영화제에서 수상한 <브로커>나 <헤어질 결심>이 흥행이 저조하다고 이상하게 볼 일이 아니다. 이미 코로나19 이전부터 극장은 늘 관객들이 왜 그 곳까지 와서 영화를 봐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를 각종 블록버스터를 통해 설명한 바 있고, 코로나19 상황에서 OTT를 겪으며 이런 생각들은 더욱 강화되었을 뿐이다.

코로나19로 부진의 늪에 빠졌던 극장들이 가격을 올린 것도 영향을 미쳤다. 극장을 가는 일은 이제, 평일 1만4천원으로 두 사람이 함께 영화를 보고 팝콘을 먹으면 4만원 가까이 써야 하는 이벤트가 되었다. 이런 가격이면 OTT를 몇 달 이용할 수 있는 금액이다. 이러한 부담을 넘어서 극장을 찾아봐야 그만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 아니라면 관객들이 굳이 극장을 찾을 이유가 있을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영화 <헤어질 결심><브로커><탑건: 매버릭>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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