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놉’,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의 공포

[엔터미디어=정덕현의 그래서 우리는] 역시 ‘조동필’ 감독이라는 한국식 지칭이 허명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작품이다. 우리 관객들이 <겟아웃>과 <어스>로 각별한 애정을 갖게 된 조던 필 감독의 새 영화 <놉> 이야기다. <놉(NOPE)>은 사전적으로는 ‘아니오’라는 뜻이지만, 갖가지 추측들이 더해져 ‘Not of Planet Earth(지구의 것이 아니다)’라고도 해석되고 있다.

이런 해석이 나온 건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그것’ 때문이다. UFO의 사전적 의미 그대로 ‘미확인 비행물체’가 구름 속에서 떠다니고 그것이 지상을 내려다보며 생명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끔찍한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이 영화의 공포가 특이한 건 주로 폐쇄적인 공간에서 그려지곤 하던 공포가 광활한 공간에서 펼쳐진다는 점이다. 그 공간은 마치 서부극 시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스펙터클을 갖고 있다.

헤이우드 목장의 OJ(다니엘 칼루야)는 아버지로부터 말 조련을 배워 말 등장이 필요한 영화에 참여하는 사업을 해왔다. 그런데 어느 날 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진 조각들 중 동전에 맞아 아버지가 사망하자 그 목장을 이어받는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삶의 활력을 잃어버린 OJ를 여동생 에메랄드(케케 팔머)가 돕지만 갈수록 사업이 기울어지면서, 서부시대를 재연한 테마파크를 운영하는 이웃 주프(스티븐 연)에게 말들을 팔아 근근이 생계를 이어간다.

그런데 주프는 과거 <고디가 왔다>라는 잘 나가던 시트콤의 아역배우 출신이다. 침팬지 고디가 등장하는 그 시트콤은 어느 날 광분한 고디가 출연자들을 마구 살해하는 비극적인 사건을 겪고 이 장면은 방송을 타고 노출된다. 당시 주프는 그 곳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로, 자신이 어떤 상황들 속에서도(특히 동물들 앞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행운아로 착각한다.

영화는 OJ와 에메랄드가 결국 하늘 위에 떠 있는 ‘그것’의 존재를 알게 된 후, 그걸 카메라에 담아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하겠다는 욕망을 드러내면서 본격적인 공포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모든 걸 빨아들이고 죽음으로 이끄는 그것을 카메라에 증거로 담아내려는 남매와 그들의 예측을 뒤집고 엄청난 실체를 드러내는 그것이 만들어내는 피의 공포가 팽팽한 스릴러와 액션 그리고 조던 필 감독 특유의 코믹한 유머까지 더해져 펼쳐진다.

결국 그것과의 대결을 벌이는 것이 <놉>의 주된 이야기지만, 그 단순해 보이는 서사에 조던 필 감독은 다양한 의미들을 담아 놨다. 가장 눈에 띠는 건 영화 산업에서 소비되는 말처럼, 동물(혹은 자연)을 인간이 과연 통제할 수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한 질문이다. 영화를 찍을 때 눈을 바라보면 본능적으로 뒷발을 차며 공격하는 말처럼, 통제 됐다 싶은 동물은 언제든 태세를 바꿔 인간을 공격할 수 있다. 즉 영화산업이라는 시스템이 말을 통제해 산업적으로 활용하려 하지만, 결국은 통제될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내는 비극을 영화는 에둘러 보여준다. <고디가 왔다>의 비극이 영화 시작부터 강조되는 이유다.

하지만 이 작품이 가진 더 큰 흥미로움은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이 주는 공포를 통해 스펙터클이 심지어 비극적인 광경 또한 산업화하는 현재를 에둘러 꼬집는 대목이다 그것에 의해 엄청난 비극이 벌어지지만 남매의 관심은 그 비극을 막기 보다는 이걸 카메라에 담아 오프라 윈프리 쇼에 나가는데 맞춰져 있다. 하지만 그들의 이런 욕망은 자신들이 그것을 보고 카메라에 담으려는 것처럼, 그것이 자신들을 또한 내려다보고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광활한 서부극의 향수를 자극하는 공간의 스펙터클은 인간의 시선으로 보면 너무나 시원스럽게 펼쳐진 풍광으로 다가오지만, 하늘 위의 그것이 그들을 내려다보며 언제든 집어삼킬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공포가 된다. 즉 스펙터클은 보는 관찰자의 입장과 그 대상이 되는 입장 사이에 엄청난 괴리와 차이가 있다는 걸 이 역전된 관점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는 그래서 영화산업은 물론이고 스펙터클을 산업화하는 영상(시트콤이든 뉴스든 심지어 유튜브든)이 가진 폭력성에 대한 비판으로도 읽힌다.

스펙터클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고 있어서 <놉>은 확실히 대형 스크린에 최적화 돼 있다. 조던 필 감독이 아이맥스 촬영을 한 연출의 의도는 영화관에서 봐야 제대로 읽혀진다. 관객은 처음에 그 스펙터클을 시원하게 바라보다가 그것이 점점 공포로 바뀌어가는 걸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네 사회가 가진 스펙터클의 폭력성을 마주하게 된다. 늘 우리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즐기며 심지어 통제할 수 있을 거라 여겼던 믿음이 여지없이 깨져나가는 공포.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거대한 카메라 렌즈 같은 그것이 주는 살벌하면서도 짜릿한 공포는 왜 이 작품을 영화관에서 봐야 되는가를 설명해준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영화 <놉>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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