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리의 밝은 에너지는 ‘일당백집사’에 어떤 힘을 만들까
‘일당백집사’, 이혜리가 보는 죽음과 이준영이 대리하는 삶의 조화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이 근처에 괜찮은 중국집 있나요?” 손님은 택시 운전기사에게 그렇게 묻는다. 그러자 기사는 죄송하다는 듯이 말한다. “아이고 이거 어쩌나. 그거 제가 잘 모르거든요. 제가 짜장면을 안 먹어서...” 그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화이고,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그런 대화다. 하지만 MBC 수목드라마 <일당백집사>는 이 짧은 일상 이면에 담겨져 있는 거대한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뒤늦게 밝혀지지만 손님은 그 기사의 아들이다. 그 기사는 일을 하러 가면서 아들은 이복형에게 맡겼다. 하지만 그 형은 아들을 버렸다. 그러면서 그 아들에게 너를 버린 건 자신이 아니라 아버지라고 말했다. 아들은 아버지를 증오했다. 자신이 받은 상처와 고통을 아버지도 느끼며 살아야 한다 생각했다. 아버지를 본 마지막 날 택시 안에서 아들은 아버지가 자신을 그토록 찾아 헤맸다는 걸 알고 눈물 흘렸지만 끝내 자신이 아들이라 밝히지 않고 내려버렸다. 그리고 그 길에 택시는 사고가 났고 아버지는 죽었다.

<일당백집사>는 죽은 이와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백동주(이혜리)가 주인공이다. 장례지도사로 일하면서 고인의 몸에 손이 닿자 그와 소통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거부하려 해도 거부할 수 없는 능력 때문에 결국 고인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기로 마음먹었다. 죽은 택시기사에게서 그 아픈 사연을 들은 동주는 아들을 찾는다는 플래카드를 내걸었고 그 때 마침 김집사(이준영)가 나타났다.

동주는 김집사가 바로 그 아들이라 오해했지만 실제 아들은 따로 있었다. 결국 백동주가 고인의 마지막 부탁을 듣고 아들을 불러냈고, 그 아들을 만나게 된 김집사는 그에게 짜장면을 사준다. 택시기사가 짜장면을 먹지 않는 이유는 싫어서가 아니라 돌아와 짜장면을 사주겠다는 그 약속을 아들을 만나 지키려는 것 때문이었다. 결국 그 일을 김집사가 대신 해주게 된 것이다.

<일당백집사>는 죽음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다. 당연히 무겁고 슬픈 이야기가 에피소드로 들어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죽음을 다루면서도 아주 일상적이고 사소한 삶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택시기사 이야기에 담겨져 있는 ‘짜장면’ 에피소드가 그것이다. 누군가에는 별 것도 아닌 짜장면이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큰 의미를 가진 것이 되는 스토리. 죽음의 이야기는 이렇게 자잘해서 소중함을 잘 느끼지 못했던 일상의 소재들로 풀어진다. 그래서 묵직한 휴먼스토리가 담겨 있지만 너무 무겁게 침잠하지 않는 밝은 에너지가 이 작품에서는 느껴진다.

백동주는 바로 이 작품이 가진 삶과 죽음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색깔을 캐릭터에 부여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가 태어난 날 엄마가 죽었다. 그래서 생일날 백동주는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며 엄마를 부르며 미안하다고 말한다. “엄마... 엄마 죄송합니다. 나 때문에 죽으셔서 죄송합니다.” 그런 아이의 마음을 화장실 문 밖에서 듣던 아버지는 얼마나 마음이 미어졌을까. 그 아버지는 딸의 생일마다 미역국을 끓여주고 케이크를 사다줬지만 딸은 그걸 먹지 않는다. 아마도 엄마에 대한 부채감 때문이었을 게다.

그런데 이 백동주라는 인물은 이러한 죽음에 얽힌 어두움이 드리워져 있지만 동시에 더할 나위 없는 삶의 에너지를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드라마는 삶과 죽음, 가벼움과 무거움, 웃음과 슬픔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다. 이것은 백동주와 이제 함께 일하게 되는 김집사 사이의 관계에서도 느껴지는 균형이다. 백동주가 죽음을 보는 삶이라면, 김집사는 누군가의 일상을 대리해주는 삶이다. 그래서 둘이 엮어지면 누군가의 죽음을 지극히 일상적인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관전 포인트가 만들어진다.

<일당백집사>의 진중함에 밝은 에너지가 더해져서 만들어지는 휴먼드라마의 훈훈함은 이렇게 잘 구현된 캐릭터들과 그들의 조합 덕분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주인공 백동주 역할을 맡은 이혜리가 새롭게 보인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응답하라 1988>의 덕선의 아우라가 그 잔상으로 남아있는 배우라 어떤 면에서는 그것이 족쇄가 되어버린 배우다. 그래서 어찌 보면 <일당백집사>가 갖고 있는 죽음을 보고 고인과 소통하는 스토리와 이혜리가 어울리지 않는 캐스팅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일당백집사>에서 이혜리의 밝은 에너지는 이 작품이 가진 무거움을 훈훈함 정도로 끌어올려주는 힘이 있다.

물론 이건 이혜리가 배우로서 자신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도 괜찮은 선택이라고 보인다. 늘 밝기만한 이미지는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내야 할 배우로서는 한계점을 만드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일당백집사>의 밝은 에너지와 더불어 어딘가 드리워진 그늘이 있는 백동주는 그런 점에서 이혜리가 풀어내기 괜찮으면서도 자신의 연기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어줄 것으로 보인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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