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남’, 전혜진과 수영의 모녀 케미, 색다른데 사랑스러운 이유

[엔터미디어=정덕현] 어느 날 귀가한 딸은 엄마가 자위를 하는 걸 목격한다. 딸 진희(수영)는 당혹스러운 상황에 어쩔 줄 몰라 하지만, 이 엄마 은미(전혜진)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웃으며 “치킨 시킬까?”하고 묻는다. 지니TV 월화드라마 <남남>은 다소 도발적인 ‘엄마의 자위’ 이야기로 시작한다. 너무 당황한 진희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고, 그 후에 은미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도 난감하다.

사실 이 도발적인 이야기를 하나 넣는 것만으로 <남남>은 19금 청불 등급이다. 물론 앞으로 또 어떤 ‘어른들 이야기’가 어떤 수위로 펼쳐질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굳이 이 자위 이야기를 전면에 있는 그대로 담아 넣은 건, 그것이 이 작품에 갖는 의미가 분명히 있다는 뜻이다. 그건 도대체 뭘까.

흥미로운 건 이 에피소드는 그 후로 별다른 결말이나 해법을 내놓지 않고 그냥 흘러간다는 점이다. 진희는 친구 태경(서예화)을 술집으로 불러내 “너 엄마가 자위하는 거 본 적 있어?”로 연 이야기에 그 당혹감을 표현하긴 하지만, 이외에 특별한 이야기로 이 에피소드가 발전해가지는 않는다. 다만 중년의 엄마가 어딘가 남자들과의 관계를 원하고 있다는 걸 드러내는 정도다.

그런데 이런 전개는 <남남>이 그려내는 이야기를 보다 흥미롭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다. 즉 “그게 뭐 어때서?”라고 드라마가 툭 말해버리고 지나가는 듯한 지점에서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엄마라고 다를까? 게다가 고교시절에 덜컥 아이를 가졌고 남자가 무책임하게 떠나버리자 홀로 아이를 지금껏 키워온 싱글맘이다. 성욕에 갈증을 느끼거나 남자에 관심을 보이는 게 뭐 그리 이상한 일일까.

그래서 이렇게 도발적으로 다가오는 상황을 아무렇지도 않다며 뭉개버리고 지나가는 서사의 전개는 <남남>이 가지고 있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드러낸다. 늘 어떤 것이 ‘정상’으로 상정되고 그래서 그 틀 바깥에 놓은 사람이나 관계를 비정상으로 취급하며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남남>은 뭉개버린다.

은미와 진희가 보여주는 가족의 양태는 그래서 사회가 강요하는 이른바 ‘정상 범주’ 바깥에 놓여 있다. 싱글맘이고 남자들 없이 여성들끼리만 구성된 가족이다. 게다가 이 모녀 관계 역시 우리가 늘 드라마를 통해 봐왔던 그런 천편일률적인 케미를 벗어나 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자매라고 생각할 정도로 나이차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 두 사람의 케미는 실제로도 자매처럼 툭탁거리고 함께 맥주 한 잔을 마시며 앙금을 풀어내는 그런 모습으로 그려진다.

물론 <남남>에는 폭력적인 세상에 대한 서사들이 들어와 있다. 진희가 경찰로서 마주하게 되는 범죄 현장들이 그렇고, 은미가 물리치료사로서 일하는 병원에서 때론 성희롱을 일삼는 이를 만나는 상황이 그렇다. 또 이 모녀가 사는 집에 무단 침입해 속옷을 훔쳐 입는 변태들도 이웃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이 폭력적인 세상 앞에 이 모녀가 보여주는 건 두려워하거나 숨는 게 아니라 싸우는 모습이다.

그래서 이 K모녀라 일컬어지는 이들은 집안에서 만나면 사사건건 부딪치고 싸우는 남남 같지만,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편견 어린 시선이나 폭력 앞에서는 똘똘 뭉쳐 함께 싸워나가는 가족으로 보인다. 늘 부모 밑에서 자란 남녀가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며 가정을 꾸리는 하나의 클리셰가 되어 버린 가족 서사를 보며, 꼭 저런 가족만 있는 건 아니고 그 바깥에 존재하는 다른 형태의 가족들 역시 저마다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분들이라면, <남남>은 한없이 고개가 끄덕여지는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자위 하는 엄마와 그걸 본 딸이 당혹스럽긴 하지만 그게 뭐 큰일은 아니라고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우리는 이 인물들 하나하나가 가진 인간적인 매력을 바라보게 되고 그래서 이들이 더할나위 없이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남남>은 그런 이야기를 펼쳐나가려 하고 있다. ‘정상의 범주’ 바깥에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한 걸음 더 들어가 그게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라고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저들 모두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존재들일 수 있는가를 말하고 있다. 물론 그 정반대에 서 있는 편견과 폭력에는 단호히 맞서가며.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지니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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