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가 진정 요리 서바이벌을 부활시키기 위해 필요한 건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요리예능에 진심인 JTBC이 다시 한 번 도전에 나섰다. 2015년부터 본격화된 요리예능 전성시대에 JTBC가 갖는 지분은 꽤나 크다. 2014년부터 2019년까지 5년 여간 방송한 <냉장고를 부탁해>는 스타셰프의 산실, 혹은 요리예능의 본진이라 할 수 있고,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맺은 인력과 노하우를 활용해 요리예능의 전성시대가 지나간 후에도 JTBC는 <쿡킹>, <파머스마켓> 등 요리 서바이벌을 꾸준히 내놓았다. 그러나 찬란했던 시절은 저물었다. 마니아들의 호평은 있었으나 입소문까진 이어지지 못한 티빙의 <더 디저트> 정도를 제외하면 최근 요리 경연 예능은 거의 기획되지 않고 있다.

그런 이때 교촌치킨이란 든든한 손을 잡고 나타난 <셰프들의 치킨 전쟁, 닭, 싸움>에는 나름의 유산과 역사를 가진 JTBC가 새로운 스타셰프의 시대를 열어보려는 야심이 깃들어 있다. 승부수가 다양하다. 우선, 올스타전 같은 기성 스타셰프들의 면면이나, 현역 셰프들이 전문적인 조리법을 동원한 창작요리 대결이란 점에서는 <냉장고를 부탁해>의 반가운 유산을 느낄 수 있다. 우리의 소울푸드이자 K-푸드로 주목받는 치킨 요리를 주제로 삼았다는 점에선 오늘날 요리 예능의 키워드인 K-콘텐츠 소개라는 가치도 품고 있다. 바로 이 부분이 아마도 교촌 치킨이 예능 프로그램에 거액을 투자한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

가장 결정적인 승부수는 새로운 스타셰프의 탄생이다. <닭, 싸움>은 구성 자체가 기성 스타셰프들의 인지도를 활용하는 동시에 그 다음 세대 새로운 스타의 탄생을 기대하는 모양새다.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대중에게 이름이 알려진 셰프들을 대신해 그들의 수제자들이 마치 강호의 여러 문파들이 사부의 명예를 걸고 자웅을 겨루듯 물러설 수 없는 일전을 벌인다는 데 있다. 새로운 인물이 대거 등장하고 스타셰프가 뒤로 물러선 구성은 처음 보는 그림이라 신선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스타셰프의 요리 특징과 맛이 제자의 음식에 배어 있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직장에서 맺어진 사제간의 끈끈한 애정이 하나의 로망이자 스토리로 다가오기도 한다. 따라서 오랜만에 성대하게 펼쳐지는 이번 요리 서바이벌의 성패는, 3회부터 PPL의 본색을 드러낸 교촌치킨의 홍보나 방송을 통해 신메뉴를 개발하는 것보다 명맥이 끊긴 스타셰프의 계보를 이어갈 새로운 스타의 탄생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요리예능의 붐은 백종원, 최현석, 이연복 등 스타셰프의 탄생과 맞물려 있었다. 스타셰프의 시대가 생각보다 빨리 저문 이유 또한 기존의 몇몇 스타셰프의 인지도에 기댄 엇비슷한 요리예능이 너무 많이 겹쳤다는 데 있다. 몇몇 인물들이 너무 많은 방송에 나왔고, 기대할 수 있는 맛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다 맥이 끊기면서 2019년 종영한 JTBC <냉장고를 부탁해> 이후 배출된 스타셰프는 전무하다. <냉부해> 후반기에 새롭게 합류한 셰프들조차 선배들과 달리 방송인(스타)으로 거듭나지 못했다. 지금은 이연복, 이원일 셰프 정도를 제외하고 방송가에 그 많던 스타셰프들은 유튜브나 전문가의 영역으로 돌아갔다.

<닭, 싸움>의 제작진은 요리 서바이벌을 부활시키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것이 기대한 바대로 작동하느냐와는 별개의 문제지만.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주저한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최대한 안전한 길을 택했다. 직접 요리 대결을 벌이는 현역 셰프들, 전문가와 연예인으로 꾸려진 심사위원단, 10인 대중 판정단 등 다양한 층위의 출연진이 있지만 제작진은 이연복을 위시한 스타셰프들의 스튜디오 토크에 대부분의 분량과 시선을 집중한다. 그 결과 요리대결은 제자들이 나서는데 주목을 받는 건 여전히 기성 스타셰프들이다. 사부가 음식에 대한 설명도 도맡고, 신경전도 대신 벌인다. 특히 방송 경력이 월등한 이연복 셰프의 활약이 눈에 띈다. 무대의 정 가운데 자리한 그는 신경전을 유발하는 자극적인 멘트부터, 웃음 포인트까지 만든다. 또한, 여경옥 셰프의 제자인 장도 셰프의 기술에 대해서도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설명을 곁들이고, 평가할 땐 칭찬도 아끼지 않는 등 분위기를 전반적으로 이끌어간다.

사부들은 제자들의 요리 대결에 단 3분간 참여할 수 있는데, 이때 사부들의 역할은 편집과 자막을 통해 무척 크게 부각된다. 따라서 협업의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장치기도 하지만 여러모로 사부들의 대체 불가능한 존재감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정작 대결을 펼치는 제자들의 존재감과 인간적 매력이 또렷하게 드러날 기회가 적은 편이다.

물론, 우등생인 장도 셰프의 플레이팅이 뛰어나다든가, 튀김에 능한 김도우 셰프,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도 저세상 차분함을 보여주는 느림의 미학 이수준 셰프 등 캐릭터를 잡기 위한 장치와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부들이란 프리즘이, 그림자가 워낙 방송 내에서 크다보니 안 그래도 8명이나 되는 수제자의 캐릭터를 하나하나 집중해서 매력을 구축할 틈이 비좁다. 그나마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중식을 제외한 파트는 더욱 더 소외되기 일쑤다. 라운드별 대결에서 탈락한 팀의 경우 사부는 남고 제자만 방송에서 하차한다. 제자와 사부 간의 입지 차가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이다.

집밥 레시피와 조리기법을 알려주던 전통적인 기존 요리 프로그램은 유튜브 콘텐츠들이 등장함에 따라 접근성과 실용성이란 측면에서 힘을 못 쓰고 있고, 레시피, 조리기법 등 실용 정보와 쇼버라이어티를 결합한 볼거리로 승부를 봤던 요리 서바이벌은 비슷한 콘셉트와 비슷비슷한 캐스팅이 반복되면서 신선함이 떨어지면서 점차 사라졌다. 현재 요리예능은 레시피나 스타셰프에 집중하기보단 K-푸드를 소개하는 관찰예능이 대세다.

그런 오늘날 요리 서바이벌이 다시금 대중적 관심을 환기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새로운 맛이 필요하다. 음식이란 소재의 특성까지 고려한다면 다시금 우리를 조리대 앞으로 불러낼 만큼 우리 일상에 변화나 영향을 줄 새로운 문화코드를 소개할 새 인물이 필요하다. <닭, 싸움>은 이를 알고 재료도 알맞게 준비했지만 레시피가 너무 보수적이다. 신선한 인물에 거는 모험 대신 익숙한 인물에 기대는 안정지향성은 대중의 멀어진 관심을 되돌리기에 너무나 익숙한 뻔한 맛을 낼 뿐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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