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운 감독이 ‘거미집’을 통해 전하는 영화에 대한 헌사

[엔터미디어=정덕현의 그래서 우리는] 추석 연휴가 지났다. 추석이면 ‘대목’이라는 말이 덧붙던 시절도 지나갔다. 올해 추석 극장가는 총 관객 수가 팬데믹 이전과 비교해 반토막으로 줄어들었다는 사실에 침울하다. 지난 3일까지 <천박사 퇴마연구소:설경의 비밀>이 151만 관객을 동원해 연휴기간 1위에 올랐고, <1947 보스톤>이 73만 관객 그리고 <거미집>이 26만 관객에 머물렀다. 올해 여름 블록버스터 시장 역시 류승완 감독의 <밀수>가 500만 관객을 돌파했고,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380만 관객을 넘겼지만 그 성적 역시 예전과 비교하면 반토막이라고 할 수 있다. 수치적으로만 봐도 영화는 위기다.

김지운 감독의 영화 <거미집>은 이런 시기에 나온 영화에 대한 영화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작품은 새로운 결말에 대한 영감이 계속 떠올라 그것만 바꾸면 걸작이 탄생할 거라는 예감을 갖게 된 김열 감독(송강호)이 이틀간의 추가촬영을 하며 벌어지는 소동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김 감독의 이 추가촬영은 결코 만만치 않다. 제작자인 백 회장(장영남)의 반대를 설득해야 하고 모든 게 검열 당하던 1970년대 수정대본 또한 검열 담당자들의 심의와 감시를 받아야 한다. 게다가 촬영이 모두 끝난 걸로 알고 있는 배우들을 다시 불러 모아야 한다. 무엇보다 이런 리스크를 감수하고 추가촬영을 감행하는 김 감독 스스로도 영화가 걸작이 될 거라는 확신을 갖지 못한다.

결국 신성필름의 후계자인 미도(전여빈)를 설득한 김 감독은 백 회장 모르게 추가촬영을 시작하는데 촬영장에 모인 배우들이 저마다 갖고 있는 감정과 불만들이 갈등을 일으키고 여기에 검열 담당자의 등장과 뒤늦게 추가촬영 사실을 알게 된 백 회장까지 더해지면서 촬영장은 뒤죽박죽이 되어 간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끝내 걸작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놓지 않는 김 감독이 끝까지 영화를 찍어내는 이야기다.

<거미집>은 카메라가 돌기 직전까지 “뭐 이런 막장이 있어”라고 투덜대다가도 막상 촬영에 들어가면 혼신을 다하는 배우와 감독 그리고 스텝들이 가진 영화에 대한 열정을 담아낸다. 흥미로운 건 영화 속 내용과 영화 밖의 실제 배우들의 이야기가 기막히게 연결되면서 묘한 긴장감을 통해 영화를 더욱 실감나게 만드는데 일조한다는 점이다.

김 감독이 찍고 있는 영화 ‘거미집’은 불륜과 치정, 복수를 그리는 작품이다. 우리에게 막장드라마로 익숙한 ‘출생의 비밀’ 코드 같은 것들이 들어 있고, 끝내는 서로 죽고 죽이는 치정복수극의 끝장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영화의 주인공들인 유림(정수정)과 호세(오정세)는 실제로도 불륜관계다. 게다가 유림이 아이를 갖게 됐다고 말하면서 호세는 이 호러 공포극을 위해 거미를 싫어하는 유림에게 진짜 거미를 떨어뜨리는 상황을 보며 불끈 화를 낸다. 그러다 ‘애가 떨어질 수 있다’고 걱정하는 것. 하지만 이 이야기는 뒤로 가면 영화 속 내용처럼 실제로도 유림이 가진 아이의 ‘출생의 비밀’이 드러나면서 폭소를 주는 코미디로 변주된다.

흥미로운 건 유림이 영화 촬영에서 하는 연기가 바로 그 자신의 실제와 맞닿아 있어 더 실감난다는 사실이다. 실제로도 거미를 싫어하는 유림에게 진짜 거미를 떨어뜨리자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 그렇고, 마치 사냥감처럼 덫에 걸린 채 피를 흘리던 유림이 덫을 빼내고 복수를 다짐하는 장면이 실감나는 것도 자신이 실제로 하고 있는 불륜과 가진 아이 때문이다. 영화 밖에서 배우 개개인이 가진 상황들이 영화 속으로 들어와 더 깊은 몰입감을 만들어낸다고나 할까.

결국 김 감독의 추가촬영의 끝판은 복수의 끝에 벌어지는 화재의 불길에서 마무리되는데, 그것은 촬영상황을 뛰어넘어 실제 스튜디오를 불길에 빠뜨린다. 그 불은 김감독이 조감독 시절 존경하던 신상호(정우성) 감독을 떠올리게 한다. 불길 속에서도 촬영을 멈추지 않다가 끝내 화재사고로 죽음을 맞이했던 감독. 그 영화에 대한 열정을 김 감독은 자신의 추가촬영 마무리에 벌어진 불길 속에서 똑같이 발휘한다.

김 감독의 걸작을 향한 집념으로 시작했지만, 스스로도 확신을 갖지 못했던 그는 끝내 자신을 믿고 끝까지 밀어붙이라는 신상호 감독의 목소리를 들으며(사실은 자기 내면의 목소리였을 테지만) 추가촬영을 마무리한다. 이것은 마치 현 영화계가 겪고 있는 위기 상황 속에서 영화인들이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불길 같은 현실을 어떻게 뚫고 나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이자 일종의 위로처럼 읽힌다.

결국 영화는 거미가 자신의 실을 뽑아내 지어가는 집에 가까운 게 아닐까. 추가촬영 현장에서 배우들이 저마다 가진 실제 상황들이 영화 속으로 들어와 그 배역에 시너지를 만들고 그것이 서로 겹쳐져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얽히고설켜 끝내 하나로 완성되는 김 감독의 ‘거미집’은, 처음에는 꿈이나 영감이라는 작은 거미가 뽑아낸 실 하나로 시작했지만 끝내는 거미줄로 가득 채워진 작품이 되는 영화의 세계를 보여준다.

앞서도 말했듯 지금 영화는 위기다. 외부적 조건들이 변화하고 그래서 대중성과 상업성이 더더욱 강조되지만 그럴수록 영화의 본질에서는 점점 멀어지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복잡해지는 이해관계 속에서도 그런 현실적 상황조차 영화 속 시너지로 만들어내려는 영화인들의 걸작을 위한 열정은 어쩌면 영화의 본질이 아닐까. 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피를 토하듯 저마다의 실을 제 몸과 영혼에서 뽑아내 거미집 같은 영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이들에 대한 헌사가 바로 <거미집>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영화 ‘거미집’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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