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 게임’, 이 가상의 게임이 은유한 계급 폭력의 세상

[엔터미디어=정덕현] “그래도 그때 같이 놀자고 말 못해서 미안해. 너무 쉽게 잊어버려서 미안해. 진짜 진짜 너무너무 미안해.”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피라미드 게임>에서 명자은(류다인)은 백하린(장다아)에게 끝까지 사과한다. 백하린이 만든 피라미드 게임에서 F가 되어 집단적인 폭력을 당하면서도 명자은이 그걸 감수하려 했던 건, 어린 시절 자신이 실수로 내뱉었던 한 마디로 백하린이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됐기 때문이다.

그 후로 명자은은 계속 백하린에 대한 미안한 감정을 지우지 않고 있었고, 온몸으로 사과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학교폭력을 당했던 피해자라는 사실 때문에 백하린은 다른 선택을 했다. 거기서 벗어나려 하기 보다는 자신이 당한 만큼 누군가를 당하게 하기 위해 피라미드 게임을 만들어 가해자가 된 것. 한 때의 잘못을 인정하고 끝없이 사과하는 명자은과, 가해자의 길을 선택한 백하린은 그렇게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피라미드 게임>은 가해자가 사실 피해자였다고 변명하는 백하린의 이야기에도 성수지(김지연)의 목소리를 빌어 단호한 선을 긋는다. “별 미친 년을 다 보네. 명자은 얘 남 탓하는 거 지금 나만 역겨워? 합리화 오지고 책임 전가하는 꼴 존나 극혐이고 자기 연민 토 나와.” 그러면서 백하린이 한 말들이 앞뒤가 맞지 않는 자기 연민이라는 걸 꼬집는다. “얘가 널 만나자마자 무릎 꿇었으면 니가 그 게임을 안 했어?” 실제로 백하린은 명자은 이전에 이미 조우리(주보영)에게도 똑같이 학폭 가해를 하고 있었다.

결국 백하린은 저 스스로 판 함정에 빠져버린 꼴이 됐다. 학폭 가해자라는 게 밝혀지면서 그를 양녀로 입양했던 백연그룹은 파양을 통해 그와 손절했다. 무연고자 처리된 백하린은 그렇게 홀로 병원에서 눈을 떴다. “걔는 다시 만난 널 원망했다고 했지만 너 같은 방관자들로 성을 쌓아서 게임을 만들었어. 결국 가해자가 하는 변명이잖아. 그리고 그게 백하린이 받을 벌이야. 무관심과 방관. 그 속에 갇혔으니까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고 찾지 않는. 눈 뜨는 순간부터 백하린한테는 거기가 바로 지옥일 거야.” 성수지의 말대로 백하린은 무관심과 방관의 지옥에 갇혔다. 피해자들이 당했던 것처럼.

<피라미드 게임>은 백연여고 2학년 5반에서 이러한 계급을 나누는 게임이라는 가상의 설정을 가져와 우리 사회의 계급 폭력을 고발한다. 그 안의 백하린을 꼭짓점으로 세운 계급은 그 부모들이 가진 부와 권력에 따라 좌우되고, 심지어 그 힘은 선생님들도 어쩔 수 없을 정도로 시스템화되어 있다. 학생들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이를 방관하는 것으로 사적 치부를 일삼는 선생들이나, 자기 자식들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이익이라면 누군가 폭력을 당해도 눈하나 깜짝 하지 않는 학부모들이 사실상 이 계급 폭력의 진짜 동력이 되었다. 그들은 모두 방관자들이었다.

<피라미드 게임>을 끝장낸 건 전학생 성수지와 그와 뜻을 함께 하게 되는 친구들 그리고 이들을 돕는 몇몇 뜻있는 어른들의 연대였다. 이들은 더 이상 방관하지 않기로 했고 그래서 자신들이 방관했던 잘못을 인정하고 서로의 적이 아닌 ‘친구’로서 서로를 믿기 시작하면서 이 엇나간 게임을 끝낼 수 있게 됐다. 결국 학교폭력이든, 그것으로 상징되는 우리 사회의 계급폭력이든 그걸 바꿔 더 이상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이를 방관하지 않는 것이라고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10부작짜리 드라마이고, 2학년 5반이라는 한 공간에서 거의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피라미드 게임>은 이 프레임 바깥에 있는 한국 사회의 숨은 폭력들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드라마였다. 무엇보다 극의 중심을 잡아준 김지연과 장다아의 팽팽한 연기 대결은 물론이고, 신인들의 개성들이 앙상블을 이룬 작품이기도 하다. 대단히 화려하진 않지만 선명한 메시지를 강렬하게 던져 놓은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티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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