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비싼 돈으로 차린 대형 꽁트극, 하지만 봐야할 이유가 불문명하다(‘닭강정’)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닭강정>에 대해 호불호를 언급하는 건, 우리나라 사람들이 역시나 점잖다는 방증이다. 지표로 보나, 실제 리뷰로 보나 호와 불호가 갈리는 게 아니라 평가는 사실 이미 한 쪽으로 모아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시리즈에 대해 우회적으로 평가하거나 판단하길 유보하는 것은, 자신의 취향과 견해만으로 평가하지 않고,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B급’, ‘병맛’이란 문화코드에 대한 존중과 이해다.

그런 점에서 <닭강정>은, 코미디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거대자본, 톱스타, 흥행감독이 하나의 사단을 이뤄 만든 이 팝하고, 낯설고, 도발적인, B급 감성, 병맛 드라마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느냐는 것이다. 혹자들은 원작을 즐기지 못한다거나, B급 감성이나 병맛에 이해도가 없다면 이 드라마 또한 제대로 볼 수 없다고 하는데, 이런 핸디캡은 대중문화 콘텐츠로서 실격에 해당한다. 이 세상에 공부하고 봐야 하는 콘텐츠, 코미디는 이미 재미가 있을 수 없다.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앞서 정리해야 할 합의는, B급이나 병맛이 평가나 논의를 차단하는 방화벽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런 시도, 다양성만으로 점수를 주는 시대 또한 지났다. 심지어 <닭강정>은 이병헌 사단이 발표한 4번째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 B급 문화가 거론될 때 조건반사적으로 주성치를 소환하는 것도 이제는 무리다. 그는 1990년대 대표적인 홍콩스타로, 2000년대 초가 전성기의 막바지였다. 그 사이 너무나 많은 문화적 변혁이 있었고, 코미디도 발전 및 변화를 했다. 무엇보다 그의 영화가 말이 안 되는 B급 감성으로 점철되었다고 해도, 주성치의 정수는 그의 캐릭터가 가진 돈키호테 같은 순수한 매력과 당시 찬란했던 홍콩영화계의 취향과 문법을 그만의 취향으로 비튼 탁월한 감에 기인한다.

이처럼 키치한 매력은 기획된 틈새에 있는 법이다. B급은 말 그대로 즉 기성, 주류의 취향과 문법에 반하는 대안으로써 신선함과 색다른 자극을 추구한다. B급, 병맛은 태생적으로 전복적인 성격을 갖고 있기에 특별한, 독특한 정서, 정신이 깔려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병맛은 보여지는 것과 달리 꽤나 인텔리한 코드다. 알아야 비틀고, 볼 수 있어야 캐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닭강정>은 무엇으로부터 B급인가? 그리고 이런 병맛 감성을 통해 무엇을 담고자 하는가? 이 질문을 던졌을 때 원작이 병맛 웹툰이라는 것 이외의 유의미한 대답을 찾기 어렵다. 연극적인 과장된 연기연출과 대사의 펀치라인, 안재홍과 류승룡이 이미 증명한 바 있는 이병헌 감독식 코미디가 주는 기대치는 분명 있다. 하지만 <닭강정>이란 한 편의 드라마를 끌고 가는 데 그 어떤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은, 정서나 감성, 문화적 맥락 없이 이름값과 스타일을 너무 과신하고 과도하게 내세운 영향이 있다고 판단한다. 말도 안 되는 코미디가 감싸고 있는 황당한 세계관이 신선한 호감으로 다가오지 않는 건 이 때문이다. 어차피 개연성 없음이 <닭강정>의 한 가지 웃음 포인트라고 하지만, 전혀 빌드업이 안 된 채로 마지막 화에서 드러나는 현실주의를 담은 주제의식이 허무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닭강정>은 이병헌 감독이 지금까지 해온 작품 중 그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만담식 대사와 코미디를 극단으로 내세운 콘텐츠다. 대사와 대화를 통해 메시지, 극의 전개, 코미디 모든 걸 해결한다. 대사가 극의 중심을 이루는 대표적인 사례로 우디 앨런의 영화가 있다. 간혹 재미가 없고 사변적이기도 하지만, 매번 적어도 패션과 무드는 남긴다. 그런데 <닭강정>에서는 무엇이 남는 걸까. B급 감성을 내세우지만 그 어떤 문화적 코드도 느껴지지 않는다. 맥락을 비트는 미학, 파격적인 표현이 갖는 신선함이 사라지자, 남은 건 값비싼 돈으로 차려낸 대형 꽁트극이다.

연극톤의 과장된 연기연출과 대사를 통해 변죽을 울리고 피식거리게 만드는 코미디, 비트는 데서 오는 타격감이 있는 코미디는 타이밍과 빈도가 중요하다. 그런데 이런 수줍은 코미디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니까 매력이 상쇄된다. 그 결과 자아도취적인 세계관만 남았다. ‘우리 재밌지 안 그래?’라는 자의식이 높인 문턱은 문 앞에서 서성이는 시청자들을 1화의 김남희가 연기한 겉도는 사무실 직원처럼 만든다.

A급 예산, 제작진, 배우들이 B급 코미디물을 펼치는 이유가 어떤 식으로든 있어야 했다. 예를 들면 피식대학이 ‘메이드인경상도’를 통해 수도권 집중화된 문화를 비틀고, 메이저이자 네임드인 나영석 사단이 스트리밍의 영역으로 넘어간 것처럼 B급이 B급이고 병맛이 되기 위해선 기성, 주류라는 토대와는 다른 대안적 정신과 정서, 신선함을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닭강정>은 정서적, 서사적인 빈자리를 그대로 둔 채 만담의 빈도와 설정의 엉뚱함만 높였다.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해서 매끄러운 전개, 식스센스급 반전이 막 있고 드라마틱한 서사가 펼쳐져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왜 봐야하는지 그 이유에 대한 답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닭강정>에서 스토리라인은 사실상 맥거핀이고 배우들의 코미디연기 합을 끊임없이 펼쳐내는 장대한 예능 꽁트를 위한 도구 그 이상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에 빛을 발하는 스타일의 코미디를 전면에 전시하고 연사로 쏘아대니, 역치가 바로 온다. 인텔리한 코미디가 어려운 것이 마니악한 지지를 얻을 수도 있지만 자칫 한 걸음만 잘못 옮겨도 기분 나쁜 반감을 사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줄 평으로 마무리하자면, 1화만으로 충분히 즐기고 소화할 수 있는 콩트 코미디를 10화분의 드라마로 만들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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