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의 대중문화 파토스] 나는 가끔 한국 사회에 직접 개입을 한다. 학자는 분석을 하는 거라는 고전적인 입장이 있기도 하지만, 너무 그렇게 뒷짐만 지고 있으면 재미 없어서 “이래라 저래라”, 참견질 하면서 가끔 개입하기도 한다. 인생의 신조가 재밌는 일만 하고, 웃기는 일만 한다는 거라서 너무 심각하게 보이는 건 싫지만, 어쨌든 정색을 하면서 정부한테도 대놓고 이래라 저래라 한다. 현정부를 만나고 보니, “하지마라”가 너무 많아져서 나도 좀 지겹다. 그러나 사람이 맨날 반대만 하고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이렇게 좀 해보자”라는 얘기를 주로 많이 하는 분야가 문화 분야였던 것 같다.

지금 와서 뒤돌아보면 문화 영역에서 가장 보람 있던 순간이 영화 <부당거래>가 흥행에 성공했던 순간이 아닐까 싶다. 이 얘기는 영화 <짝패>가 개봉되던 2006년으로 올라간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딱 이거다 싶었다. 그리고 이렇게 좋은 영화가 한국에도 있고, 이런 감독이 우리에게도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물론 내가 보고 재밌었다는 것과 사람들의 시선이 늘 일치하는 건 아니다. 영화의 흥행 성적은 별로였고, 나도 별다른 글은 안 쓰고 그렇게 <짝패>는 극장에서 내려졌다.

내가 <짝패>의 진가를 알게 된 것은 <짝패> DVD에 들어가 있는 류승완 감독의 코멘터리를 보고 나서이다. 한국 영화상 가장 성공했고 충실한 코멘터리가 바로 이 <짝패> 코멘터리라고 할 수 있는데, 당시에 나는 <88만원 세대>에 대한 구상은 어느 정도 끝냈고, 다음 책들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한참 고민하고 있었는데, 결국 이 <짝패> 코멘터리가 시리즈 4권인 <괴물의 탄생>의 모티브가 되었다.

“뭐, 회장 죽은 거 아니쟎아, 니들이나 내들이나 그 때 그 때 봐가면서 하는 거 아냐?”

서울에서 내려온 조폭을 동네 조폭 필호가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명패로 머리를 내려쳐 죽이면서 했던 대사이다. 동네 깡패, 서울 깡패, 그리고 영화 상에서 드러나지 않는 서울 본사, 그 구도가 류승완이 우리에게 보여준 <짝패>의 세계이다. 그래 나도, 그 본사의 얘기를 좀 해보자, 그렇게 해서 <괴물의 탄생>이라는 책의 모티브가 처음 나오게 되었다.

서로 죽이고 죽으면서도 정작 누구 때문에 이 사단이 벌어졌는지, 진짜 나쁜 놈은 누구인지 결국 모르게 된다는 류승완 감독의 얘기는 너무 가슴 아팠다. 그러나 그게 현실이고 또한 진실인 것 같다. 그 얘기를 영화 코멘터리에서 보면서, 진짜 바로 이거다 싶었다.



영화를 분류하는 방식이 몇 가지가 있다. 정부가 하는 영화 관객 실태조사에 의하면 한국 관객들 중 남성은 액션 영화를 가장 좋아하고, 여성들은 드라마를 좋아한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이건 조사원이 물어볼 때 하는 대답이고, 재밌는 영화를 좋아한다는 게 답인 것 같다. 대답은 이렇게 했지만, 실제 영화에서 성별 조사 같은 것을 참조해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어쨌든 한국의 남성들은 어떤 영화를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액션 장르라고 대답하지만, 그렇다고 그 얘기 진짜로 믿고 액션 영화를 만들고 그걸 액션 영화라고 소개하면 류승완 감독의 <짝패>처럼 개박살 난다. 그래도 <짝패>는 뒤늦게라도 띄워서 재평가를 받을 수 있게 된 대표적인 영화인데, 나도 그렇게 재평가 시도도 못해본 액션 영화들도 좀 있다. 대표적인 게 박성균 감독의 <김관장 vs 김관장 vs 김관장>이다. 내가 한국 영화사를 쓰면 아마 대표적인 장르 영화로 한 자리 집어넣을 것 같은데, 하여간 실패했다. 영화는 그렇게 못봐 줄 정도로 재미없지는 않고, 나름대로는 잔재미도 있다. 그리고 영화사적 의미도 있는데, 사람들이 엄청 싫어하는 특징이 있다. 대학에서 학생들한테 이거 보고 오라는 숙제를 낼려고 했었는데, 원성이 너무 자자할 것 같아서 결구 포기했다. 제목만 보고도 예술 영화 보고 싶어하는 학생들은 “그거 보기 싫어요”, 이렇게 대답한다. 제목이 문제인가?

헐리우드 영화 중에는 재개발 영화 정도로 분류할 수 있는 영화들이 일종의 계보를 형성한다. 산드라 블록과 휴 그랜트가 나왔던 로맨스 코메디 정도로만 소개된 <투 윅스 노티스>가 대표적으로 시민운동하는 산드라 블록과 재개발 회사 사장인 휴 그랜트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재개발 상황을 그리고 있다. 좀 더 올라가면 한 때 만인의 우상이었던 피비 게이츠가 나왔던 <그램린 2>가 뉴욕의 고층 빌딩이 아니라 에코 타운을 건설해야 한다는 모티브로, 뉴욕 재개발로 숨어 있던 그램린이 다시 세상에 나오는 얘기를 그리고 있다. 좀 더 스케일을 키우면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라는, 이번에는 아예 지구 자체가 은하 고속도로를 만들기 위해서 철거되는 얘기들이 나온다.

한국보다 먼저 토건경제를 경험한 일본은 동경 신도시 사건을 그린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을 비롯해서 지브리 스튜디오의 에니메이션 작품 전체가 재개발 반대라는 모티브들을 일정하게 공유하고 있다. 대표작으로 꼽는 <이웃집 토토로> 역시 도심에서 별로 떨어지지 않은 근교 농업을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가 이걸 만들게 한 모티브였다.

한국에서도 재개발 혹은 탈토건 영화라고 할 것들이 좀 있는데, 대부분 흥행성적은 좋지 않다. 하지원이 나왔던 <1번가의 기적>은 달동네의 용산 버전 정도로 볼 수 있다. 약간 오래된 얘기를 다루기도 했지만 지강헌이 청송에서 탈출해서 전두환 만나러 가겠다고 한 사건을 그린 <홀리데이>도 기본적으로는 88올림픽과 철거민에 관한 얘기이다. <김관장 vs 김관장 vs 김관장>은 노무현 시대의 균형발전의 폐해를 그렸고, 역시 같은 연장선에서 주상복합 만든다고 ‘개지랄’ 떨다가 결국 사람은 해결 못하고 자연이 해결해준다는 영화 <해운대> 역시 기본적으로는 재개발 영화이다. “너, 사람들 밀어내고 고층 빌딩 짓자고 했지, 죽어버려”, 이런 감독의 시선은 참 매서웠다.



<해운대>는 한국의 재개발 영화 중에서는 가장 성공한 영화였는데, 동시에 가장 잔인한 영화이기도 했다. 부산의 재개발업자와 지방 토호는 물론 그냥 사업차 내려왔던 사람들 그리고 일반 관광객까지 다 죽여버린다. 사실 토건경제를 운용하면 결국 다 망한다는 얘기를 이렇게까지 대놓고 직접적으로 한 영화는 한국 영화에는 일찍이 없었다. 웃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이 영화를 주상복합 분양의 모티브로 건설사들이 활용했다는 점이다. 영화 <1번가의 기적>은 많은 한국의 재개발 영화들이 그런 것처럼 갑자기 ‘따뜻한 시선’을 들이댄다. 재개발업자들은 밉지만, 철거된 그들은 다른 데 가서 결국 행복했다, 그렇게 하지원의 권투 시합 승리로 마감을 한다. <김관장 vs 김관장 vs 김관장>은 동네 사범들이 힘을 합쳐서 결국 싸워 이겼다는 가장 적극적인 메시지를 가지고 있지만, 당시에 한국 관객들은 이딴 얘기는 너무 불편해서 감당하지 못한 것 같다. 영화 <짝패>는, 동네 개판 되고, 고등학교 절친들끼리 서로 칼로 찔러서 ‘죽거나 나쁘거나, 그렇게 되었다. 그러나 해운대는 “다 죽어버려, 하지원 빼고”, 정말 무서웠다. 그러나 이 메시지를 천만 가까운 관객들이 보는 걸 보면서, 이제 한국의 토건도 극복될 떼가 된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전국에서 부동산 거품이 가장 높았던 곳이 해운대의 주상복합 아파트였는데, 실제로 영화 <해운대>가 개봉되고 얼마 되지 않아 부산지역으로 몰렸던 부동산 자본들이 송도로 몰려가면서 철수해버렸고, 작년 여름에는 해운대의 부동산 버블이 언제 터지나, 사람들이 시계만 보고 있었다.

영화 <해운대>를 보면서, 아, 저렇게 높은 주상복합 아파트들이 쓰나미 오면 위험하겠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게 정상일 것 같은데, 해운대에 관광객들이 몰리니, 저기에 투기하면 돈 좀 되겠구나, 하던 그런 사람들이 제 정신인가 싶었다. 어쨌든 그로부터 딱 1년, 진짜로 한국의 버블 공황이 부산의 저축은행의 뱅크런으로부터 시작했으니, 정말 오묘하기는 하다.

비운의 영화 <짝패>는 사실 액션신도 별로 없는데, 한국 최고의 무술감독 정두홍이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그냥 액션 영화로 분류되었고, 마침 앞에 개봉된 <킬빌>과 비교되며, <킬빌>보다는 못하다는 저주를 받았다. 서울 본사 얘기는 꺼내보지도 못해서 <해운대> 보다는 약하다는 비교를 할 수는 있겠지만, 이런 영화들은 기본적으로는 재개발 영화이고, 탈토건 영화들이다.

어쨌든 내가 류승완 감독을 만나서 그런 얘기를 해주었던 당시, 그는 <다찌마와 리>까지 흥행에 실패해고, 모터로라나 한국도로공사 홍보 영화를 찍고 있었고, 사무실 직원들을 유지할 수 없어서 아내와 근근이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짝패>의 명대사, “강한 놈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놈이 강한 것이다”, 진짜 그랬다.

사실 직접 만났던 것은 아닐지 몰라도 류승완 감독과 정두홍 감독과 우리 모두는 대부분 한 자리에 있었던 경험이 적이 있다. 촛불집회 때, 제 각각 집회에 참여한 이유는 다를지 몰라도, 그 때 우리는 다 그 자리에 있지 않았나? 정두홍 무술감독은 민주당도 아니고, 좌파도 아니라고 하는데, 이명박은 좀 아니라는 아주 묘하지만 매력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건네 들었다. 이회창 지지하면서 이명박 반대하는 독특한 입장의 사람들을 촛불 집회에서 가끔 만난 경험이 있기는 하다.



영화 <부당거래>는 <짝패>의 연장선에서 이제 지역의 재개발 현장을 벗어나 서울 본사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그 첫 얘기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침 ‘떡검’과 ‘스폰서 검사’ 얘기를 만나면서 영화는 대성공을 거두었는데, 경찰대를 나오지 못한 ‘짜바리’는 길에서 동료들에게 맞아 죽고, 든든한 빽 둔 검사 나리는 “사내가 이런 일로 기가 죽어서 되겠나, 어깨 펴!”, 이렇게 장인이 등을 두드려주는 상황에서 영화는 종료한다.

언젠가 류승완 감독이 서울 본사에서 어떤 놈들이 4인방을 내려 보내고 사장들을 내려보냈는지, 진짜 본사 얘기를 하는 날을 살아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마 이번 정권 끝나고, 좋은 시절 오면 그가 <청와대> 혹은 <이명박> 정도의 제목 아니면 <쥐들의 전성시대>, 이런 영화를 한 편 만들어서 진짜 본사 얘기를 할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산다. 그렇게 좋은 감독이 이 시대에 있고, 그가 만든 영화를 같이 보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그게 내가 가지고 있는 삶의 희망 중의 하나이다.

영화 <짝패>가 액션 영화가 아니라 재개발 영화였다는 사실이 뒤늦게라도 알려지면서 결국 그가 용기를 내서 <부당거래>까지 갔던 게, 가만히 돌이켜보면 정말 잘 된 일이다. 그리고 <다모>의 연기 잘 하는 여배우에서 <1번가의 기적>에서 <해운대>까지, 정말 사회성 짙은 영화에 용기 있게 나서 주었던 배우 하지원이 드라마 <시크릿 가든>으로 또 한 번 정상에 오르게 된 사건, 그리하여 한국 문화에서 탈토건의 선봉장들이 결국은 해피엔딩이 되었더라, 이게 내가 느끼는 보람들이다.

영화 <짝패>가 상영될 때에는 토건경제가 문제라는 사람들은 국민의 10%나 될까 말까 했는데, <해운대>를 거치면서 50%까지는 온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제대로 해석되지 못하고 묻혀버린 가슴 아픈 명작으로 강풀 원작 고소영 주연의 <아파트>라는 영화가 있다. 만약 내가 영화를 만드는 일이 있다면, 나는 <은평 뉴타운>이라는 영화를 만들게 될 것 같다. 전두환 시절에도 감옥도 안 가고, 실형도 안 받았던 내가 유일하게 벌금형을 받았던 때가 이명박 서울 시장 때 은평 뉴타운 반대하면서 뉴타운 싸움했을 때였다. 부산에서 시작된 공황이 마지막으로 옮겨 붙을 최종 목적지가 바로 은평 뉴타운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한국의 재개발 영화는,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 했다.


칼럼니스트 우석훈 <2.1연구소 소장> honortomeadows@entermedia.co.kr


[사진 = 영화 ‘짝패’ ‘김관장vs김관장vs김관장’ ‘해운대’ ‘부당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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