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팝스타’ 최대수혜자는 오디션 참가자 아닌 보아

[엔터미디어=이문원의 쇼비지니스] SBS ‘일요일이 좋다-서바이벌 오디션 K팝스타’가 시청률 폭증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12월4일 9.3%(AGB닐슨) 시청률로 시작해 지난 15일 7회에선 12.5%까지 치솟는 기염을 토했다. 이로써 ‘K팝스타’는 경쟁 프로그램 MBC ‘우리들의 일밤-서바이벌 나는 가수다’(8.9%)를 제치고 절대강자 KBS2 ‘해피선데이-1박2일’(21.2%)에 이어 동시간대 2위를 차지하게 됐다. 22일 8회 시청률은 설 명절 여파로 다소 하락했지만 여전히 ‘나가수’를 앞섰다. 물론 향후 시청률 추가상승 요인들도 즐비하다. 지상파 3사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 최후발주자로선 괄목할 성공인 셈이다.

이 같은 성공은 당연히 그 수혜자들을 낳는다. 현재 주목받고 있는 오디션 참가자들은 어쩌면 ‘슈퍼스타K2’ 최종 4인방 이상의 주목을 받아낼 수도 있다. 예선 통과자 연령대가 여타 프로그램들보다 5~10세가량 낮은 탓이다. 이른바 ‘실제 미래 산업동력’이자 ‘신동’이란 점에서 더 큰 화제를 모을 소지가 크다.

그런데 여러 측면에서, ‘K팝스타’의 최대수혜자는 어쩌면 오디션 참가자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견이다. 국내 3대 대중음악기획사를 대표해 심사위원석에 앉은 이들 중 이미 톡톡히 수혜를 입고 있는 인물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바로 SM엔터테인먼트를 대표해 심사를 맡고 있는 가수 보아다.

◆ ‘한물 간’ 아이콘으로 평가받던 보아

‘K팝스타’ 출연 직전의 보아를 생각해보자. 한국대중 시선에서 그녀는 사실상 ‘한물 간’ 아이콘에 가까웠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애초 보아는 일본에서의 성과를 통해 국내위상을 만들어온 아이콘이다. 일본진출을 선언한 2001년 이후부터 줄곧 그랬다. 그런데 2007년 이후, 일본 데뷔로부터 6년여가 경과한 시점부터 일본에서 보아의 인기는 눈에 띄게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2008년 NHK 홍백가합전 초대까지 끊기면서 부턴 더더욱 그랬다.

물론 한국에서도 이 같은 분위기는 충분히 감지됐고, 동시에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보아=일본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서도 곧 ‘전성기를 지난’ 아이콘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한물갔다는 평가가 횡행했다. 사대주의형 마케팅의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보아라고 이런 상황에 그저 넋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변신을 시도하고, 자기 위치를 새롭게 설정하려 부단히 노력했다. 커리어 최악의 시기였던 2007~2009년 이후 보아는 일본 7집 앨범 ‘데스티니’와 한국 6집 앨범 ‘허리케인 비너스’를 거의 동시에 내놓았다. 이때부터 보아는 ‘다음 단계’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일단 보아는 이 시점부터 앨범의 프로듀싱에도 참여하기 시작했다. 물론 단순히 프로듀싱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보아의 자작곡들은 은근히 퀄리티가 높았고 나름 캐치하기도 했다. ‘괜찮은 재능’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다 장르 소화력이 이전에 비해 훨씬 원숙해졌고, 전반적인 음악적 태도가 프로페셔널해졌다. SM엔터테인먼트 특유의 ‘잡탕 전략’ 하에서도 그 다양한 장르의 곡들을 모두 수준급 이상 퀄리티로 이끌어냈다.

그러나 문제는 이를 받아들일 대중이었다. 한국은 광적으로 트렌드의 속도가 빠르고, 또 한 번 지나간 트렌드는 다시 돌아보질 않는 문화 환경이다. 일본에서의 위상하락으로 ‘지나간’ 트렌드 취급을 받게 된 보아로선, 노선수정이건 뭐건 간에 이미 대중적 편견을 깨기 힘든 지점에 이르러있었다.

그렇게 아무리 발버둥 쳐도 계속 대중적으로 도외시당하며 시간만 흘러가다보니 보아는 불과 20대 중반의 나이에 ‘한물 간’ 아이콘의 대명사처럼 여겨지게 됐다. 현역으로 맹활약 중인 2NE1의 박봄, 산다라박보다도 2살 어린 인물로서 꽤나 당혹스런 처지였다. 그게 바로 2011년 12월4일, ‘K팝스타’ 첫방 이전까지의 보아다.



◆ ‘K팝스타’ 출연이 보아에게 마련해준 전환점들

그럼 ‘K팝스타’는 보아에게 어떤 전환점을 마련해준 걸까. 크게 두 가지 차원이다. 먼저 보아를 대중에 친숙한 캐릭터로 만들어줬다. 보아는 국내 대중적기반이 매우 허약한 아이콘이다. 전성기 동안 커리어 전반을 일본에 할애했으니 당연한 결과다. 지금 대중문화 주 소비층인 10~20대는 보아에 대해 잘 모른다. 그저 ‘한국대중음악역사의 한 페이지’ 정도로만 인식할 뿐 그 이상은 아니다.

특히 2005년 ‘걸스 온 탑’부터 2010년 ‘허리케인 비너스’ 사이 5년 동안 보아는 아예 한국에선 앨범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 남자로 치면 군대를 3번 연속 다녀온 만큼의 공백인데, 이런 식이면 있던 팬들도 도망가는 게 당연하다.

‘K팝스타’는 이렇듯 대중으로부터 멀리 떨어져버린 보아를 다시 대중 앞으로 불러들였다. 보아에 생소한 10대는 물론 10대 시절 보아 정도만 기억하고 있는 20~30대까지, 대중은 거의 처음으로 보아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됐다. 텍스트 기사나 무대에서만 보던 이미지와 달리, 그녀가 생각보다 유쾌하고 너그러우며 유머러스한 인물임을 알게 됐다.

거기다 ‘K팝스타’는 여타 오디션 프로그램들보다 심사위원들 간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런 식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이 매주, 4개월 간 대중에 노출되고 나면, 이후 보아에 대한 대중적 친근감은 꽤 큰 폭으로 상승할 수밖에 없다. 이미지를 바꾸는 차원이 아니라 아예 아무 것도 없던 캔버스에 이미지를 처음 그리는 상황에 가까우므로 그 효과는 예상보다 훨씬 뛰어날 수 있다.

이 같은 친근감 형성을 바탕으로, ‘K팝스타’는 보아의 가수로서 위상확립에도 혁혁한 도움을 주고 있다. 언급했듯, 한국에선 트렌드가 한 번 지나갔다 싶으면 다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백지영처럼 ‘드라마’가 존재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역행을 가능케 하는 장치가 하나 존재하긴 한다. 같은 인물이더라도 이전과 전혀 다른 위치에서 소비하게끔 유도하는 것이다. 물론 그 달라진 위치는 이전보다 상승단계로 설정돼야 효과적이다. 청춘스타로서 꾸준히 인기쇠락의 길을 걷다 영화 ‘친구’를 기점으로 카리스마적 연기파 배우 위치로 갈아타 제2의 전성기를 누린 장동건이 한 예다.

보아는 ‘K팝스타’에서 YG엔터테인먼트와 JYP엔터테인먼트 수장인 양현석, 박진영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위치에 앉았다. 그럼 자연스럽게 그 정도 거물급, 즉 실제 산업을 움직이는 주축 중 하나로 인식돼버린다. 그렇게 한물 간 아이콘에서 산업 중심부에 앉아 결정권을 행사하는 ‘K팝 권력’으로 인식이 이동되는 순간, 보아의 위치는 가수라는 측면에서도 크게 변모할 수밖에 없다. 한물 간 아이콘이 아니라, 한 ‘급’이 더해진 아이콘이 된다. 나아가 ‘가수 이상의 가수’ 이미지로 인식될 수도 있다.



◆ 지금 한국대중음악계는 ‘춤을 추는 악기’를 필요로 한다

그럼 ‘K팝스타’ 이후 보아는 어떤 상황을 맞게 될까. 상당히 긍정적인 예상이 가능해진다. 보아는 그 흔한 집단패널 토크쇼에조차 나가본 적이 없는 아이콘이다. 이제야 개인성을 막 팔기 시작한 아이콘이란 얘기다. 오랜 커리어에도 그 정도로 이미지 소진이 적었으니, 향후 의외로 신선한 캐릭터로서 다가올 수 있다.

당연히 음악활동 측면에서도 호기를 맞이할 수 있다. 아직 위치설정이 제대로 돼있지 않았던 2010년 상황엔, 간만에 국내활동을 재개해도 ‘일본에서 인기 떨어졌으니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식 인식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그러니 꽤나 완성도 높은 앨범에 ‘게임’ 같은 수작 싱글을 쥐고서도 제대로 어필할 수 없었다.

그러나 ‘K팝 권력’으로 인식되고 난 다음부턴 상황이 달라진다. 퇴물이 아닌 거물로 인식되고 나면, 음악활동 자체에 무게감이 실리고 주목도도 자연스럽게 상승한다. 또한 아직 이효리, 손담비 등이 건재하던 2010년과 달리 소녀 이미지를 고수하는 아이유 이외 여성솔로가수 시장이 텅텅 비어있는 현 시점, 실험적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실력파 팝 뮤지션의 재림은 생각보다 파괴력이 셀 수 있다.

물론 거기서 더 나아가는 예상도 해볼 수 있다. 보아가 혈혈단신으로 뛰어들어 일본시장을 개척하던 21세기 초반과 달리, 지금은 일본대중과 미디어가 한국대중문화계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시점이다. 보아가 향후 한국에서 새로운 이미지와 위상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얻게 되면, 이를 바탕으로 보아의 일본 활동도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 있다. 마침 일본에선 보아와 동일 콘셉트인 아무로 나미에의 재기 약발이 다시 떨어져가는 시점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기회가 좋다.

지난 ‘K팝스타’ 7회에서 보아는 오디션 참가자 백아연에 대해 “자기 목소리를 악기처럼 쓴다”며 호평한 바 있다. 그런데 이 같은 표현은 어딘지 낯설지가 않다. 2006년 초 일본 후지TV 음악프로그램 ‘보쿠라노온가쿠2’에서 보아는 친우 마츠우라 아야로부터 “보아는 아이돌인가 아티스트인가?”라는 질문을 받고는 “어느 쪽이건 상관없다. 나는 그저 나 자신을 악기라고 생각한다”라고 답한 바 있다.

당시 보아는 아티스트와 아이돌 사이 애매한 지점에 놓여있다고 평가됐다. 지금 아이유가 겪고 있는 딜레마와 유사하다. 그러나 이후 보아는 진화했고, ‘춤을 추는 악기’라는 차원에서 아티스트의 경지에까지 도달했다. 다만 대중이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런 장벽이 깨져가고 있는 지금, 마침 한국대중음악산업은 바로 그 ‘춤을 추는 악기’를 필요로 하고 있다. 화제성을 점차 상실해가는 시장에 충격을 주고 활력을 불어넣을 실력파 여성 댄스뮤지션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보아는 올해 가장 신작 앨범과 그 활동이 요구되는 가수로 평가될 수 있다. 물론 그만큼 기대도 된다. 건투를 빈다.


칼럼니스트 이문원 fletch@empas.com


[사진=SBS, 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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