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과 알바트로스의 날개 이야기
-영화 ‘킹스 스피치’ 리뷰

[엔터미디어=오동진의 새영화가이드] 오늘(17일) 개봉하는 톰 후퍼 감독의 <킹스 스피치>는 지난 2월 제8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남우주연상, 각본상 등 주요 부문을 휩쓸었다. 아카데미 최고 화제작인 만큼 국내 개봉 과정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아카데미 특수를 기대할 수 있을까,라는 것인데 나탈리 포트만이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던 <블랙 스완>은 개봉 4주를 접어들면서 전국 130만 관객을 끌어 모았다. <킹스 스피치>도 가능성이 있다. 비수기 국내 극장가를 살짝 달아 오르게 했으면 하는 기대감이 쏠리는 건 그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볼 때 작품상과 감독상은 다소 과했다는 느낌을 준다. 남우주연상에는 이견이 없다. 그만큼 주연을 맡았던 콜린 퍼쓰의 연기가 돋보인다. 오히려 남우조연상을 놓친 것이 의아스럽다. 제프리 러쉬의 연기는 콜린 퍼쓰만큼 압도적이었다. 조연상은 <파이터>의 크리스챤 베일에게 돌아갔었다. 작품상, 감독상까지 받을 건 아니었다고 얘기하는 이유는 이 작품이 다분히 소품의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협회 회원들이 이 영화에 대거 상을 몰아준데는, 궁극적으로는 노력하고 고민하는 리더십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지금은 인간적 느낌의 지도자가 절실한 시대다. 우리들 자신처럼 이런저런 이유로 개인적 약점을 지니고 있는 사람에게 친근감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자신의 문제를 극복하고 뭔가를 성취해 내는 과정에 공감을 느끼게 된다. <킹스 스피치>의 조지6세는 바로 그러한 캐릭터를 대변한다.

미국 유부녀 심슨 부인과의 사랑을 선택하느라 왕위를 버린 에드워드 8세(가이 피어스)의 뒤를 이어 다소 어거지로 왕이 된 조지6세, 곧 버티(콜린 퍼쓰)는 성격이 다혈질에다 다소 고집불통인 인물이다. 그만큼 추진력과 과단성에서는 형인 에드워드를 앞서는 면이 있다. 하지만 버티에게는 결정적인 하자가 있는데, 바로 심한 말더듬 증세를 앓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마이크 앞에만 서면 말더듬의 울렁증은 더욱더 심해진다. 그가 부득불 왕이 되지 않으려고 했던 이유는 대중 지도자로서 현격한 결격 사유를 지니고 있음을 스스로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명은 그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왕위 계승의 시기가 임박해지고 있음을 알게 된 버티는 아내 엘리자베스(헬레나 본 햄 카터)가 소개한 언어 치료사 라이오넬 박사(제프리 서쉬)를 만나 자신의 말더듬 증상을 고치려 애쓰기 시작한다. 하지만 때는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또 한번의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이다. 조지 6세는 이제 국민의 힘을 단합하는 연설에 나서야 한다.

영화는 전쟁의 암운과 왕가의 복잡했던 가정사를 앞에 내세우는 척, 주인공 버티의 마음 속 폭풍을 그려내는데 주력한다. 겉으로 보기에 버티는 일국의 지도자의 모습을 유지하려 애쓰지만 한꺼풀 벗겨내면 그저 평범한 인물에 불과할 뿐이다. 아니 어쩌면 오히려 그보다 더 안쓰러운 존재일 수 있다. 남들, 특히 아버지나 형앞에 쉽게 나서지 못하고 말 한마디 하는데 있어서도 전전긍긍한다. 버티는 평생을 카리스마가 넘쳤던 선왕 조지5세에 눌려 살았다. 어린 시절 왼손잡이였지만 왼손을 쓸 때마다 아버지는 그를 혼내고 질책했다. 그의 말더듬 증상이 시작된 것은 억지로 오른손을 썼을 때부터였다. 세련된 멋을 풍기는 형 에드워드8세 앞에서도 버티는 늘 초라한 존재에 불과하다. 어릴 때부터 형은 이름을 부르는 대신 늘 그의 말더듬을 흉내내며 ‘버,버,버..티’라고 놀리기 일쑤였다. 아버지와 형에 대한 콤플렉스는 그를 더욱더 자기 세계 안에 갇히게 만들었다. 왕의 직책을 수행한지 며칠 안돼 늦게까지 집무실에 있던 조지6세는 자신을 걱정하는 아내 엘리자베스 왕비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린다. 그는 자신을 가르키며 나같은 사람이 무슨 왕이냐고 한탄한다.



왕이 되기 전 어느 날엔가 버티는 동화를 들려 달라고 졸라대는 딸 아이 둘의 성화에 직면한다. 아내인 엘리자베스는 걱정스러운 눈길로 아이들을 말린다. 동화를 얘기하면서 또 말을 더듬을 것이 뻔하고 일국의 왕이 될 인물이어서가 아니라 아빠로서의 체면이 구겨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성화에 버티는 띄엄띄엄 얘기를 시작한다. 그런데 이 동화의 얘기가 살짝 마음을 울린다. 알바트로스가 된 펭귄의 이야기다. 남극에서 살던 펭귄이 어찌어찌 집안의 개수구를 통해 들어 와서는 알바트로스로 변해 큰 날개를 펴 아이 둘을 안아준다는 내용이다. 날개가 있지만 날지를 못하는 펭귄.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큰 날개를 지니고 있다는 알바트로스. 아이 둘에게 들려주는 이 이상한 동화는 버티 자신의 얘기다. 지금은 펭귄이지만 언젠가는 알바트로스가 되고 싶어하는 자신의 욕망을 은근슬쩍 드러낸 셈이다. 반대로 알바트로스가 돼야 할 자신이 언제까지나 펭귄에 불과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알바트로스는 조제5세나 에드워드 8세처럼 유창한 말솜씨와 웅변력을 지닌 인물을 상징한다. 펭귄의 짧은 날개의 파닥거림은 자신의 말더듬 증상과 같은 것이다. 알바트로스와 펭귄. 욕망과 불안. 버티의 고민은 그 한가운데에 있다.

언어치료사 라이오넬과 조지6세간의 밀고 당기는 우정의 얘기가 드라마의 상당 부분을 끌고 나간다. 라이오넬이 고치려고 했던 것은 조지6세의 말더듬 증상만이 아니다. 스스로의 내면을 돌아보게 하는 것, 자신 안의 감옥을 깨닫게 하는 것, 그것이 라이오넬 치료의 본질이다. 그가 끝끝내 폐하라는 칭호보다 이름을 부르며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려 했던 것은 그 때문이다. 버티가 갖고 있는 트라우마와 콤플렉스는 단순히 환자와 치료사의 관계에서가 아니라 그의 고독한 고민을 들어주고 함께 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모든 문제의 해법은 어쩌면 큰 것, 곧 거대 담론에서부터가 아니라 미시적인 것, 곧 작은 이야기에서부터 찾아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킹스 스피치>는 내 안의 폭풍과 회오리에 맞서는 사람의 이야기다. 인간이 큰 우주를 개척하는 길은 자기 자신 안의 작은 우주를 먼저 정복하는 것이다. 그건 일국의 왕이나 아니면 일개 평민이나 마찬가지다.


칼럼니스트 오동진 ohdj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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