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년 전 손석희와 현재 오상진, 소름끼치는 데자뷰
- 누가 손석희·오상진을 투사로 만들었나

[엔터미디어=배국남의 직격탄] “누가 이 연민의 정을 불러 일으킬만한 선한 인상의 미남 청년을 투사로 만들었는가. 타락한 세상에서 숨죽이고 조용히 혹은 적당히 살았더라면 세속의 인기와 일상의 안일함 속에 두 다리 뻗고 살 수 있었을 텐데…”(1992년 10월 7일 MBC노조의 파업투쟁속보)

1992년 공정방송을 요구하며 벌이던 MBC 파업 때 노조 쟁의대책위원으로 활동하다 구속돼 수인번호 3461번을 단 푸른 수의를 입은 손석희 MBC 아나운서(현재 성신여대교수)의 모습은 당시 많은 이들에게 의미 있는 충격을 줬습니다. 요즘 20년 전의 푸른 수의의 손석희 아나운서 모습이 다시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20년 전 파업 요구사항이었던 공정방송을 또 다시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고 있는 MBC, KBS, YTN 등 방송사들의 도미노 파업을 목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파업기간 사측의 프리랜서 앵커채용에 항의해 검정정장을 입은 MBC 아나운서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나는 언론인이다. 방송인 이전에 언론인이다. 나 같은 별 볼일 없는 사람이 <일밤>과 <위탄>과 대형콘서트를 진행할 수 있었던 건, 선배들이 헌신해온 아나운서라는 네 글자 덕분이다. 그리고 난 내가 받았던 분에 넘치는 대접에 상응하는 언론인의 의무를 다 할 것이다”라는 MBC 오상진 아나운서의 트위터 글을 읽으면서 다시 20년 전 공정방송을 외치다 구속돼 푸른 수의 차림을 한 손석희 아나운서를 생각하게 됩니다.

정확히 20년 전, 1992년에 제가 몸 담았던 한국일보를 비롯한 신문사와 MBC, KBS 등 방송사들이 편집권 독립과 공정방송을 요구하며 파업을 펼쳤습니다. MBC는 50여일에 달하는 장기파업을 하면서 노조집행부가 구속되는 상황까지 벌어졌지요. 정권이 네 차례 바뀌는 20년의 세월이 흐른 2012년 다시 MBC, KBS, YTN 등 방송사들이 파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어떤 이는 ‘소름끼치는 언론사 파업 데자뷰’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특히 MBC의 경우,1992년 최장기 파업 기록 52일을 넘어선지 이미 오래입니다. MBC노조는 지난 1월 30일 보도의 공정성을 무너뜨리고 제작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김재철 사장 퇴진과 공정방송 요구를 내걸고 파업에 돌입했지요. 그 여파로 전국민의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무한도전>은 10주째 결방되고 <뉴스데스크>의 배현진 앵커 모습은 보이지 않는 등 파행방송이 되고 있습니다.





방송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권력과 자본에 대한 비판과 견제, 감시 그리고 공정방송, 양심과 표현의 자유에 따른 자율 제작이라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방송의 소명일 것입니다. 이것은 방송의 진짜 주인인 국민들이 방송사와 방송인에 부여한 거역할 수 없는 명령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방송인이 이러한 소명을 수행하지 못했을 때 더 이상 방송인으로서 존재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현재 방송사들의 파업은 공정방송 등 방송의 소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자성에서 촉발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영방송과 자율제작을 가로막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권력의 부당한 간섭에서부터 방송, 특히 공영방송의 인사에서부터 제작에 이르기까지 완전한 독립을 보장하는 법과 제도의 미비, 그리고 자신의 이해를 위해 공정방송과 자율제작을 가로막는 행위를 서슴치 않는 일부 방송인의 존재 등이 바로 방송의 공정성과 자율성을 훼손하고 방송인의 소명을 수행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공정방송을 요구하며 20년 전 파업에 돌입했던 방송인들이 2012년 또 다시 공정방송이라는 똑같은 요구사항을 내걸고 다시 파업에 돌입했습니다. 이는 그동안 공정방송과 자율제작을 가로막는 문제와 요인들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파업을 계기로 방송계에서부터 정치권에 이르기까지 공정방송과 자율제작을 완전히 보장할 수 있는 권력으로부터의 방송의 독립을 보장하는 방안을 시급하게 강구해야할 것입니다.

그리고 공정방송과 자율제작을 가로 막는 권력과 세력, 사람은 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역사와 국민이 기억한다는 것을 명심해야할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20년 전 공정방송을 요구하다 푸른 수의를 입어야만했던 손석희 아나운서 모습과 함께 그 반대편의 모습을 기억한 것처럼 말입니다.


대중문화전문기자 배국남 knbae@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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