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사의 품격>, 이런 처자 한 명만 더 있었어도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장동건을 비롯한 중년 F4의 등장으로 기대감을 품게 했던 SBS <신사의 품격>이 더 없이 화려한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초반에 좀처럼 재미를 주지 못한 이유가 뭘까? 보는 이에 따라 이런저런 이유가 다르겠지만 나에게는 우선 여주인공 서이수(김하늘)가 흥미롭지가 않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을 밟는, 쥐고 있는 패가 다 보이는 타입이기 때문인데 실수를 밥 먹듯이 해대는가하면 그에 따른 자책이 이어질 때, 특히나 “어떻게, 어떻게!” 하며 머리를 짓찢는다거나 침대에 누워 발을 버둥거리며 괴로워하다가 얼마 안 있어 괜찮다며 스스로를 위로할 때마다 그와 엇비슷한 다른 드라마 여주인공들이 오버랩 되지 뭔가. MBC <개인의 취향>의 박개인(손예진)이며 SBS <여인의 향기>의 이연재(김선아) 등 서이수와 닮은 캐릭터를 손으로 꼽기 시작하면 이내 열 손가락을 후딱 넘기고 만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 한 가지, 마음이 여리고 착해서 남들에게는 싫은 소리 한 마디 못하면서도 유독 눈이 번쩍 띄게 잘난 남자 주인공에게만은 마주칠 때마다 땍땍거리는 어이없는 설정. 무슨 놈의 오해와 우연은 또 그리도 많은지 ‘도대체 말이 돼?’하며 헛웃음을 웃게 만드는 사건들이 부지기수가 아닌가.

게다가 주말에 보는 서이수만으로도 버거울 지경인데 월화에는 KBS2 <빅>의 여주인공 길다란(이민정)이 기다리고 있다. 기간제이긴 하지만 교사라는 직업도 서이수와 같아서 ‘넌 학생, 난 선생’을 부르짖는 스타일인데다가 남자 주인공과 끊임없이 툭탁거리면서도 인연의 끈은 놓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둘은 닮았다. 왜 로맨틱 코미디의 여주인공들은 늘 이리도 비슷비슷한지.

그런데 다행히 <신사의 품격>에도 정이 가는 캐릭터가 하나 생겼다. 임태산(김수로)의 동생이자 오빠의 친구 최윤(김민종)을 짝사랑하는 임메아리(윤진이)가 바로 그 주인공. 마치 스타에게 애정을 쏟는 소녀 팬처럼, 총각 선생님을 흠모하는 여학생처럼 풋풋하면서도 저돌적인 메아리의 사랑 방식은 보는 이를 미소 짓게 만든다. 최윤의 볼에 햇살이 와 닿듯 기습 뽀뽀를 하는 장면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태산이 가장 믿는 친구라는 최윤이라 해도 그와 같은 귀엽고 순수한 유혹에 어떻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으리.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건 웃을 일이 아니다. 메아리는 꽃 같은 스물네 살의 처자, 그에 비해 최윤은 마흔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사별까지 한 처지가 아닌가. 아무리 품행 단정하고 인물 멀끔한 변호사라 해도 메아리 부모에게는 결코 반가운 사윗감일리 없다. 친구로서는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나 오빠로서는 결사반대를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인 태산에게는 또 얼마나 고민스러운 일일는지. “홍세라(윤세아)랑 열 번을 헤어졌어도 담배 생각은 안 났는데.” 태산의 대사가 가슴에 와 닿고 “걱정마. 니가 걱정하는 일 없을 거야. 내가 얼마나 죽어라 노력하고 있는데. 이런지 좀 됐다.” 최윤의 대사 또한 절절하다.

사랑이 이루어지든 말든 귀추가 크게 궁금하지 않은 성인 남녀들 사이에 풋풋한 처자가 하나가 등장하자 다양한 색깔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콜린(이종현)이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청년이 나타나면서 이야기는 한층 더 풍성해졌다.

F4와 함께 찍은 엄마 김은희(박주미)의 옛 사진 한 장을 들고 한국에 온 콜린은 아빠를 찾겠다는 일념 하나로 정보를 얻고자 메아리와 만나는데, 메아리도 콜린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최윤 또한 콜린이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콜린, 그의 아빠는 누구일까? 정말 F4 중 한명일까? 지난 날 F4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는 모두의 첫사랑 콜린의 엄마는 어떤 여자였을까? 어린 나이에 나쁜 남자 포스가 살짝 풍기는 걸 보면 아마도? 춘천행 기차에 함께 올라 ‘느낌’을 불러준 적이 있다는 최윤이 혹시? 궁금증이 무럭무럭 일어난다. 비로소 이 드라마가 재미있어졌다. 덩달아 F4도 멋있어지기 시작했다. 핸드폰이며 자동차, 노트북 같은 고가의 상품을 더 이상 망가뜨리지나 않으면 좋으련만.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freechal.com
그림 정덕주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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