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적자>, 스타만능주의에 경종을 울리다

[엔터미디어=배국남의 눈] 그랬다. 그리 주목하지 않았다. 5월17일 서울 롯데호텔에선 한류스타 송승헌과 김재중 등이 참여한 MBC 주말극 <닥터진> 제작발표회가 열렸다. 물론 수많은 국내외 기자와 PD등 취재진이 몰렸다. 그리고 5월23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파티오나인에 열린 SBS 주말극 <신사의 품격> 제작발표회에는 <파리의 연인> <프라하의 연인> <시크릿 가든> 등 히트 드라마의 스타 작가와 연출자인 김은숙과 신우철 PD, 그리고 12년 만에 드라마에 복귀한 톱스타 장동건과 김하늘 김수로 김민종 이종혁 등이 참석했다. 역시 수많은 국내외 취재진의 열띤 취재가 이어졌다.

그리고 5월24일 서울 목동 SBS 13층 홀에서 또 하나의 드라마 제작발표회가 진행됐다. <닥터진>이나 <신사의 품격> 제작발표회와 비교해 취재진 규모나 취재 열기는 현저하게 떨어졌다. 바로 손현주 김상중 김성렬 류승수 고준희 등이 참석한 SBS 월화 드라마 <추적자 THE CHASER> 제작발표회다.

드라마 시청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제작발표회의 취재진 참석 규모와 열기에서부터 처진 <추적자>는 <닥터진> <신사의 품격>처럼 스타 연기자나 한류 스타는 없었다. 물론 김은숙 작가나 신우철 PD처럼 박경수 작가와 조남국 PD는 다수의 묻지마 팬을 보유한 대중성은 확보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방송 전 <추적자>에 대한 대중매체와 대중의 관심은 스타들이 출연하는 다른 드라마들에 비해 크지 않은 게 사실이었다. 시청자 역시 장동건 김하늘의 <신사의 품격>이나 송승헌 김재중 박민영의 <닥터진>, 공유와 이민정, 수지의 <빅>만큼 <추적자>를 주목하지 않았다.

<추적자> 출연자까지도 이 부분을 절감하고 있었다. 제작발표회장에서 주연 손현주는 “지금까지 월화수목을 젊은 배우(스타)들이 시간을 메꿨다면 이번에는 30~60대까지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진정성 있는 드라마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추적자>의 장점은 연기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쉽게 가는 사람이 없다는 것에서 굉장히 만족스럽다. 거의 목숨 걸고 촬영에 임한다. 1,2회 정도만 봐주시면 편안하고 깊숙이, 천천히 시청자들에게 다가가겠다. 시청률이란 것이 그렇지 않나. <적도의 남자>도 그랬듯이 뒷심을 발휘하겠다. 일단 1,2회만 봐달라”고 당부했다.

<추적자>를 이끌고 있는 또 한 주역 김상중 역시 “요즘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는 배우들은 매우 젊다. 연륜 있는 배우들이 이끌어가는 드라마가 없는 것 같다. 드라마의 다양성을 위해서 나이가 있는 배우들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추적자>는 생기 있고 발랄한 면은 없을 것이다. 김치는 숙성된 묵은 지가 제 맛이듯 <추적자>는 묵은 지 같은 드라마다”며 손현주와 같은 맥락의 말을 했다. <추적자> 제작발표회에서 손현주 김상중, 두사람 모두 스타 부재의 <추적자>에 대한 부분을 적시하며 시청자의 관심을 부탁할 정도였다.



방송채널 급증과 드라마 제작사의 난립, 그리고 한류로 인해 드라마 제작이 봇물을 이루면서 스타 지상주의가 만연하기 시작했다. KBS, MBC, SBS 등 방송사의 편성을 받거나 제작투자를 위해 절대적으로(?) 유리한 스타 연기자와 스타 작가를 드라마의 주연과 필진으로 기용하는 현상이 심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스타 연기자뿐만 아니라 아이돌 등 한류스타 가수들 역시 드라마에 앞 다퉈 기용했다.

하지만 묻지마 스타 캐스팅으로 대변되는 스타 지상주의의 폐해는 실로 컸다. 한정된 스타를 여러 제작사가 캐스팅하려다보니 스타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뛰었고 일부 스타는 회당 1억원이 넘는 상상을 초월한 드라마 출연료를 챙기기 시작했다. 엄청난 스타의 몸값은 한정된 제작비의 가장 압박요인으로 떠올랐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스타의 몸값으로 인해 의상이나 세트 등을 허술하게 할 수 밖에 없고 출연 연기자 수를 줄이는 결과로 나타나 드라마 완성도는 추락을 거듭했다.

뿐만 아니라 특정스타에 의존하는 드라마가 급증하면서 새로운 실험이나 독창성 등이 담보된 다양한 드라마가 고사위기에 처하며 한국 드라마의 획일성이 가속화됐다. 또한 대사 연기조차 안 되는 발 연기 수준의 연기력 부재를 드러내는데도 한류스타나 아이돌 스타라는 이유만으로 드라마의 주연으로 기용하는 현상이 급증하면서 드라마의 질은 현저하게 떨어져 시청자의 외면을 자초했다.



스타만능주의가 기승을 부릴수록 뛰어난 연기력을 가진 중견 연기자들은 설자리를 잃었다. 급기야 스타 지상주의에 젖어 완성도나 독창성, 작품성이 부족한 진부하고 획일적인 드라마를 양산하면서 국내 시청자 뿐만 아니라 해외 시청자들에게 외면을 받아 드라마 한류마저 침체에 빠졌다.

이처럼 스타 지상주의의 폐해가 막대한데도 여전히 우리 방송가에는 스타 만능주의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아이돌 스타나 한류스타, 톱스타 연기자 한명 없고 스타 작가가 아닌 이름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가가 집필한 <추적자>는 매우 의외적인(?)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제작발표회 마저 낮은 관심 속에 열린 <추적자>는 첫 회가 방송된 직후부터 대단한 이변(?)을 연출했다.

사랑한 고교생 딸을 뺑소니 사고로 잃은 소시민의 한사람인 전직 강력계 형사가 딸의 죽음의 진실을 은폐하기위해 막강한 권력과 엄청난 돈을 동원하는 거대한 정치권력과 자본권력과 맞서 진실을 파헤치는 처절하면서도 외로운 싸움을 벌이는 <추적자>는 드라마의 성공의 3요소인 극본, 연출, 연기가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전문가와 시청자의 입에서 공통적으로 한국 드라마를 한 차원 높인 작품이라는 극찬을 일상의 언어로 이끌어냈다.



시청자이 매시간 몰입할 수 밖에 없는 군더더기 없는 플롯의 전개, 한국 드라마의 지평을 확대한 독창적이며 완성도 높은 내러티브, 시청자의 예상을 불허하면서도 모두가 공감할 수밖에 없는 긴장성과 개연성을 내장한 사건, 단선적인 평면적 해석을 거부하는 다면적 성격의 캐릭터, 2012년의 한국사회의 현실성에 밀착한 리얼리티 높은 스토리, 간결하면서도 명쾌하지만 많은 의미를 드러내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누구나 수긍할 수밖에 없는 대사 등 <추적자>의 승패를 좌우할 수 있는 박경수 작가의 극본은 한국 드라마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남국 PD의 연출은 어떠한가. 연기자의 눈 뿐만 아니라 주름에서까지 인간의 탐욕과 욕망, 그리고 분노 등 캐릭터의 감정을 극대화시키는 클로즈업 구사 등 사건과 캐릭터의 감정변화를 오롯이 잘 담아내는 카메라 워크, 사건과 스토리, 인물의 내밀한 감정 등을 드러내는 최적의 은유, 상징, 직설의 구사, 긴장과 몰입을 극적으로 극대화시키는 사건과 반전의 속도감 등 근래보기 드문 정교하면서도 완성도 높은 연출력으로 <추적자>의 작품성을 높이고 있다.

그렇다면 시청자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며 드라마 반응의 진원지가 되는 연기자들의 연기력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뛰어난 연기력이 촉발시킬 수 있는 감동과 전율 그리고 몰입의 모든 것을 <추적자>의 연기자들이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주연에서 단역에 이르기까지 모든 연기자들이 빼어난 연기력과 연기의 앙상블을 보여주고 있다.



거대 정치 권력과 자본권력에 맞서 외로운 싸움을 벌이는 전직 형사역을 맡은 손현주는 그가 아니면 <추적자>가 불가능했을 정도로 대사에서부터 표정, 액션 연기에 이르기까지 진정성 있는 연기로 수많은 시청자에게 감동을 매회 선사하고 있다.

대권에 도전하는 강동윤역을 맡은 김상중은 특유의 카리스마와 다면적 감정을 드러내는 세밀한 연기로 인간의 탐욕과 욕망 그리고 그 이면을 기가 막히게 잘 표출시켜 시청자로 하여금 강동윤이라는 인물에 분노하며 치를 떨지만 부정할 수 없는 인물로 살아 움직이게 만들고 있다.

연기의 거장이라는 박근형은 모든 사람의 생각 그 이상의 욕망과 잔인함, 간교함을 눈빛 하나의 변화, 주름의 미동으로 드러내는 시청자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빼어난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과 연기 호흡을 맞추는 김성령 박효주 고준희 류승수 강신일 등 조연 연기자에서부터 건달역을 하는 조재윤에 이르기까지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진정성 있는 연기와 연기 앙상블로 <추적자>의 완성도를 높이며 시청자의 반응을 고조시키고 있다.

스타가 없어 제작발표회 마저 관심이 낮았던 <추적자>는 방송이 되면서 완성도 높은 극본, 정교한 연출, 그리고 빼어난 연기력으로 스타 주연의 드라마를 압도하고 있다. 더 나아가 한국 방송계를 지배하는 스타만능주의를 저격하고 있다.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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