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정희 연기 정말 죽여주던데!”
- 영화 <연가시> 허술함을 살린 문정희의 연기력

[엔터미디어=배국남의 눈] 영화는 대표적인 경험재다. 즉 사용(관람)해봐야 품질을 알 수 있는 상품이다. 경험재이기에 초래될 수 있는 수요 불안정을 극복하기위해 영화 제작자들은 일정정도 묻지마 팬을 확보한 스타 연기자나 감독을 기용하거나 기자와 비평가에 의한 좋은 평가확보를 위해 노력 하며 관객의 입소문 활성화를 꾀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동원한다.

그렇지만 대중매체의 보도나 비평가의 찬사 그리고 관객의 호의적인 평가나 입소문, 연기자와 감독의 면면을 살펴보고 기대하고 갔다가도 실망한 영화들이 적지 않다. 반면 기대를 하지 않고 봤다가 만족하며 돌아오는 영화도 있다.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슴에 남는 것은 있다. 바로 최근 개봉된 영화 <연가시>다. 전문가나 기자들이 주로 참여한 시사회가 아닌 영화가 개봉된 뒤 일반 관객들과 함께 영화를 보는 재미중 하나는 영화를 관람하는 소비자, 관객의 반응을 가감 없이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다.

적지 않은 관객들이 영화 <연가시>가 끝난 뒤 보인 공통적인 반응은 “김명민은 워낙 연기를 잘하니까 그러려니 했는데 문정희, 정말 저 정도 배우였어…참 연기 잘 한다”였다.

변종 연가시 감염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처참하게 죽어가는 상황 속에서 아내와 아이들이 감염돼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가족을 살리려는 눈물겨운 가장의 사투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추악한 인간의 탐욕과 음모를 두 축으로 하는 <연가시>는 재난극, 스릴러, 가족극, 사회극 등 다양한 장르적 요소를 혼합한 짬뽕식 드라마다.

하지만 다양한 장르적 요소가 한 작품에 자연스럽게 융화되는 것이 아닌 따로 노는 그래서 짜임새가 크게 떨어진다. 또한 스토리는 빈약하고 너무 뻔한 문제의 정답처럼 도식적 구성은 관객의 긴장감과 몰입감을 감소시켰다. 변종 바이러스로 인한 공포는 긴장을 극단으로 몰고 가 개연성 높은 필연의 반전이나 서스펜스로 촉발되는 것이 아닌 1회용 흉물스러운 외형이라는 단순한 장치에 의해 촉발시키는 유치함도 영화 전반에 드러난다.

뿐만 아니다. 변종 바이러스를 유포한 세력, 제약회사 업자들의 동기와 행태는 스테레오타입식의 예상 가능한 그러면서도 개연성이 크게 떨어지는 것을 비롯해 사건, 인물, 네러티브, 편집 등이 빈틈과 허술함으로 가득하다. 교조적 메시지나 주제 주입에 급급하며 감정 과잉이 군데군데 드러나는 흔히 보는 가족신파 영화가 <연가시>다. 일부 매체들에서 ‘한국형 재난영화 치고는 괜찮으며 30억 제작비로 시각적 효과는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안쓰러운 찬사가 참 무색할 정도다.



그나마 허술한 영화 <연가시>의 빈틈을 메우며 관객들에게 영화에 몰입하게 하고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네러티브를 자연스럽게 수용하게 만든 것 그리고 관객의 정서에 감정의 파장을 일으킨 것은 주연 김명민과 문정희의 사람냄새 나는 일상성 짙은 연기 같지 않은 연기력의 힘이었다. 간혹 감정의 과잉과 과장은 보이지만 두 연기자의 연기와 조화는 허접하다는 비난까지 받은 <연가시>에 관객의 눈길을 유도하는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특히 관객들이 기대를 크게 하지 않았던 문정희의 연기는 영화의 허술한 구성이나 낮은 완성도를 보완해주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2012년 대한민국의 부조리하고 불공정한 사회에 대한 반감과 안성기라는 걸출한 연기자의 연기력이 허술한 <부러진 화살>을 살렸다면 가족 해체와 파괴의 가속화로 인해 실종돼가는 가족애에 대한 복원의 욕망, 1%의 탐욕에 대한 공분 등과 함께 문정희의 연기가 허접한 <연가시>에 관객의 발길을 향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흔히 이웃에서 볼 수 있는 남편과 자식을 위하는 평범한 주부였다가 치상률 100%의 변종 연가시에 감염돼 아이들과 사투를 벌이는 경순역을 맡은 문정희는 남편역으로 나온 김명민과 함께 사람냄새 나는 생활의 연기와 치료제가 부재한 기생충에 감염돼 죽음을 기다리는 절체절명의 극단적 상황의 연기를 자연스럽게 소화했다.

음식을 꾸역꾸역 너무 많이 먹다가 남편한테 타박을 받는 도중 “끄윽”트림을 하는 너무나 일상적인 주부의 모습에서 감염자 수용소에서 한 여성에게 “맘 독하게 먹어요. 엄마가 그러면 애는 어떡해요”라고 처연하게 말하는 극단적 상황에서 터져 나오는 모성애의 연기까지 <연가시>에서 문정희 연기의 동선은 가장 짧았지만 연기의 진폭은 가장 컸다.



한 작품에서 한 배우의 연기의 스펙트럼이 클 때에는 어느 한쪽이 부자연스럽거나 극과 극의 연기를 전환할 때 튀는 경우가 많은데 문정희는 극과 극의 연기를 그리고 극에서 극으로의 전환을 자연스럽게 표출해냈다. <연가시>에서 문정희는 수년 동안 주말 드라마 <사랑을 믿어요> 등 수많은 작품에서 차곡 차곡 쌓은 생활 연기의 내공의 진수를 펼쳐냈을 뿐만 아니라 연극, 뮤지컬,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연기의 마당에서 확장시킨 진폭 큰 연기를 자연스럽게 보여줘 관객의 가슴을 움직인 것이다.

연가시에 감염돼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는 절망의 상황에서 남편과 전화를 하며 한 “밥은?”이라는 두음절의 문정희의 대사 연기는 <연가시>의 백미로 꼽히는 장면일 정도로 연기의 압권이었고 영화의 허술함 조차 잊게 하며 관객들의 가슴에 감정의 파장을 일으킨 결정적인 신이었다.

문정희는 <연가시>에서 캐릭터 창출력에서부터 캐릭터 몰입도, 연기의 진정성까지 연기본좌 김명민에 결코 밀리지 않는 뛰어난 연기력을 보였다. 1998년 연극 <의형제>를 통해 연기자로 데뷔한 연기 14년차의 서른여섯의 문정희는 그동안 그녀의 탄탄한 연기력에 비해 대중과 전문가의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한 연기자 중 한사람이다. 문정희라는 연기자의 대중적 존재감 역시 크지 않았다. 이는 대중에게 강렬한 존재감을 심어줄 자극적 캐릭터나 작품이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사적 영역에서의 스캔들 등이 없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이제 <연가시>를 통해 그녀의 연기자적 존재감도 연기력도 인정받고 있다. 영화를 존재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관객에게 말이다. “문정희 연기 정말 죽여주던데!” 상영관을 빠져나오는 한 남자 관객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대중문화전문기자 배국남 knbae@entermedia.co.kr


[사진=영화 <연가시>, SBS]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