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응답> 신원호 PD “시즌2 만든다면 1994년으로”[대담2]
- 신원호 PD “폼 잡지 말자가 모토”

[엔터미디어=TV남녀공감백서] “저는 결말이 그렇게 궁금할 일인가 싶습니다. 하지만 이게 단막극 형태이다 보니 ‘과연?’은 다음 주 채널을 고정시키는 힘이거든요. ‘그러려니’하고 끝나면 재미없잖아요.”-신원호 PD
예능과 드라마의 경계에서, 자신만의 스타일로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 가고 있는 신원호 PD를 정석희, 정덕현 칼럼니스트가 만났다.
(대담- 정석희, 정덕현 칼럼니스트, 신원호 PD 정리-최정은)

(1편에서 계속)

정덕현: 대본 작업 전, 사전 조사 기간은 어느 정도였나요?

신원호: 작년 9월 쯤 드라마 하자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정석희: 공이 많이 들어 가 보여 한 2-3년 준비한 줄 알았습니다.

신원호: 그럴 리가요. 예능은 어제 회의 하고 오늘 촬영 들어가는데요. 우리 입장에서는 굉장히 오래 걸린 겁니다. 초안은 ‘박순이 가족’이라고 가족 시트콤이었는데, 정극 드라마로 가야 되겠다 생각해서 또래 얘기로 방향을 바꾼 것이 10월, 첫 대본이 11월 말에 나왔습니다. 회의실이 그 시절 자료들로 도배되어 있었어요. 인터넷을 뒤지고, 없는 자료는 국회 도서관을 뒤져가며 작업했습니다.

정석희: 저는 애매한 세대거든요. 하지만 우리 애가 학교 간 사이 다마고치 밥을 주기도 했고, DDR을 함께 하기도 했고, 아이가 워크맨을 사달라고 졸랐다거나, 그런 것들이 새록새록 기억납니다. 그니까 그 시절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연령층이 처음에 예상하셨던 것보다 훨씬 넓은 거죠. 특히 마음에 드는 점은 학원물의 대부분은 폭력을 쓰는 학교 짱이 멋지게 나오잖아요.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는 그런 만화에 나올 법한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겁니다. 싸워봤자 여자 아이들끼리 머리채 잡는 정도? 폭력을 쓰는 남자가 인기 있는 캐릭터인데 그 부분에 대한 유혹은 없었나요?

신원호: 액션 신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 부분에 대한 유혹은 없었습니다.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를 굉장히 좋아하는 데요, 제일 좋아하는 코드가 소꿉친구 코드입니다. 어려서부터 친구로 자라온 남녀가 어느 날 갑자기 이성으로 느껴지는 데서 오는 아련함 같은, 그런 만화적인 느낌을 살리고 싶었습니다.

정덕현: 자신만의 연출 스타일이 있나요?

신원호: 무조건 대본이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같이 밤을 새워 작업하고 대본을 충실히 살릴 수 있는 연출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찍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예능을 해서인지 일단 찍고 편집을 하며 커트를 이어 붙이는 것이 퍼즐을 맞추듯 재미있습니다.

정석희: 대본의 흐름이 처음 의도대로 가고 있는지요? 중간에 바뀐 것은 없나 해서요. 흔히 시쳇말로 간을 봐가며 바꾸잖아요?

신원호: 각 화마다 회의를 하지만 결론은 비워 놓고 시작했습니다. 원래 예능은 반만 만들고 반응을 봐 가면서 수정을 하는데 이것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 했습니다. 드라마도 방법론은 다른데 비슷한 느낌이 있어요. 편성이 밀리다보니 어쩌다 전작제처럼 되어 버렸는데 어떤 캐릭터가 어떻게 소구될지는 모르지만 봐 가면서 결정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은 결론을 다 냈습니다.

정덕현: 예능과 드라마의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신원호 PD는 농담을 계속 던지면서 어느 순간 짠해지는 그런 장면들을 아주 잘 포착하시더군요.

정석희: 가슴을 울리는 장면들이 많습니다. 사람에 따라 감정 이입이 되는 부분들이 서로 다를 것 같아요. 서인국이 “예쁘잖아. 예쁘다, 내 눈엔.” 하는 장면에서 저는 가슴이 툭 내려앉더라고요. 그리고 계속 여기저기서 ‘예쁘다, 예쁘다’ 하는 장면이 이어지는데, 언젠가는 내 남편도 그랬었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이 뭉클했어요. 그리고 인피니트의 호야가 맡은 준희 캐릭터도 어떻게 보면 참 위험한 캐릭터잖아요? 앞으로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 있는 캐릭터고요. 그런데 전혀 거슬리지 않고 애틋하게, 오히려 호감을 불러일으키게 잘 잡았더라고요.



신원호: 윤제와 준희. 제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라인이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 드라마가 하드웨어적으로는 복고, 학창시절 얘기지만 내부적으로는 서로 좋아하는 이야기들로 꽉 짜여 있습니다. 저는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 얘기가 정말 재미있어요. 준희가 윤제를 좋아하는 것도 그저 그 일환일 뿐이에요.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겁니다. 아빠와 엄마가 좋아하고, 엄마가 딸을 좋아하고, 소꿉친구를 짝사랑하고, 죽은 여자 친구의 동생을 좋아하고, 뭐 이런 여러 좋아하는 이야기들 중에 가슴 아픈 이야기도 하고 싶었는데 제일 가슴 아픈 게 뭘까 하다 준희 이야기를 넣은 겁니다. 위험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건 거창한 가치판단의 이야기가 아닌 그냥 사랑 이야기, 절대로 그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호야에게 고마운 게, 이런 이야기를 했을 때 전혀 토를 달지 않더군요. 예쁘게 나갈 거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는데 정말 걱정도 안하더라고요.

정석희: 보통 드라마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알게 되면 누가 발설하고 소문내고 일을 꼬이게 하는 데 채팅 창을 통해 툭 던지듯 말하고 아무렇지 않게 반응하는 게 좋더군요. 쓸데없는 갈등이 없어서 좋아요.

신원호: 우리의 모토가 폼 잡지 말자입니다. 그게 사투리와도 맞고요. 극적이지 않아 보이는 그런 느낌을 좋아합니다.

정덕현: 그게 제작진의 성향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암에 관한 에피소드도 좋던데요. 눈물을 강요하지 않는데 가슴이 찡하더군요.

신원호: 암 에피소드를 더 독하게 다룰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팀 작가들의 주변에 암 환자들이 하나씩은 다들 있더군요. 이제는 암이 일상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것 또한 일상처럼 툭, 큰일인데 크게 안 지나갔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으로 만들었습니다.

정덕현: 대중문화를 큰 소재로 다룬 것은 ‘빠순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인가요?

신원호: 70,80 년대 복고를 봐도 대중문화 자체가 삶과 달라붙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싫어도 어쩔 수 없는, 나도 알고 너도 아는 게 대중문화라는 생각입니다.

정덕현: <응답하라 1997>의 성공 포인트에는 대중문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제 아내도 그 때의 감성을 가지고 있어서 드라마를 보며 ‘콜라독립815’를 재미있어 하더군요. 암 걸린 사람들이 드라마를 보며 위로를 받듯이 힘든 아이들을 위로 하는 것도 대중문화밖에 없더라고요. 그냥 복고가 아닌, 그런 내용들이 많은 공감이 되었습니다.

정석희: 드라마를 보다 보면 친해지고 싶은 캐릭터가 있는데 이일화씨가 그렇더군요. 여장부 같기도 하고, ‘사라다’, 샐러드가 아니고 사라다입니다. 그 사라다를 한 ‘다라’씩 하는 새로운 스타일의 엄마여서 보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신원호: 그런 엄마들 많지 않나요? 우리 머릿속에서 나온 캐릭터만으로는 복잡한 상황이 되었을 때 문제가 생길 것 같아서 되도록 주변에 있는, 잘 아는 캐릭터를 빌려와 썼습니다. 시원이 엄마 캐릭터는 이우정 작가의 어머니를 따 와 조금 변형 시킨 것이고 성제도 우리 PD 중에 따 왔습니다. 그 친구 어찌나 말이 많은지 몰라요. 학찬이 역할은 우리 주변에 진짜 학찬이가 있는데 아예 이름까지 따 온 겁니다. 작가랑 일하면서 눈도 못 마주치는...하하.

정덕현: 드라마를 계속 만들 생각인가요? 시즌2도 생각해 봤을 것 같은데요.

신원호: 아직 시즌2는 생각해보지 않았는데요, 1994년으로 가서 다른 인물들의 다른 이야기를 하면 재미있겠다는 말은 했습니다. 저와 이우정 작가가 94학번이거든요. 우리가 진짜로 잘 할 수 있는 이야기가 그 때인 것 같기는 한데 이번 드라마의 반응이 남달라서 재탕의 느낌이 날까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정석희: 출연자들이 제작진에게 진짜 고마워해야 할 것 같아요. 하나 같이 잘 된 것 같아서 말이죠.



정덕현: 예능 출신의 드라마 작가들은 연기자들의 캐릭터를 잘 살리는 특징이 있죠. 우리가 잘 아는 홍자매도 그렇고 요즘 잘 나가는 ‘넝쿨째 굴러온 당신’을 쓴 박지은 작가도 예능 출신이죠.

정석희: 24번 등 번호를 단 손진영 씨가 나중에 윤제 아버지 양준혁 씨가 되는 거죠? 그 부분도 더 알고 싶더라고요. 너무 금방 끝났잖아요. 엄마 아빠의 학창시절 사랑 이야기도 예쁘더군요. 그래서 추억을 공유할 대상이 더 넓어진 것 같기도 하고요.

신원호: 원래는 어른 캐스팅으로 그냥 가려다가 그랬다가는 ‘추억의 책가방’처럼 코미디가 될 것 같아서 수정 한 겁니다. 하하.

정덕현: 다시 예능을 하라고 하면 할 수 있을까요?

신원호: 저는 시키면 합니다. 그런데 요즘의 예능은 정말 막막해요. 어렵습니다.

정덕현: 요즘 예능은 기존의 틀에서 생각하면 어려울 것 같아요. 완전히 새로운 틀을 생각해야 돼죠.

신원호: 지금 하는 것들도 예능의 일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제는 장르는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에요. 버라이어티만이 예능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긴 호흡의 드라마는 아직 안 해 봤지만 저는 러브 스토리 하나로는 드라마를 찍기 힘들 것 같습니다. 예능은 일 분 일 초를 채워갑니다. 채널을 고정 시키는 예능의 힘으로 드라마 또한 꽉 짜인 느낌으로 끌고 가고 싶습니다. 퍼즐을 하나하나 맞춰가듯이 잠깐 숨겼다가 뒤에 보여 주면 재미있을 텐데 하는 생각으로 무식하게 만들고는 있습니다. 에피소드를 죽 나열하고 일단 찍은 후, 여기저기 바꿔가며 편집해서 실 같이 엉키게 만들고 마지막에 드러내는 거죠. 브레인스토밍을 하듯 일 하고 있습니다.

정덕현: 확실히 보통의 드라마는 하나의 흐름을 타고 죽 흘러가기 마련인데 이 드라마는 여러 소재들을 하나하나 쌓아나가는 느낌이 있습니다.

정석희: 제작진이 손발이 맞고 생각이 같다는 게 좋군요. 출연자 컨트롤에도 무리가 없고요.

신원호: 그거 하난 좋아요. 출연자들이 다들 착하고 재미있어 합니다. 친해져야 케미가 산다고 서로 친해지라 했더니 이제는 너무 친해져서 시끄러울 정도입니다. 하하.



정석희: 박지윤 씨도 연기를 잘하던 데요.

신원호: 반전 캐릭터가 필요해서 아나운서로서의 반듯한 이미지를 가진 박지윤 씨에게 연락 했는데 기대했던 것 이상 잘하더라고요. 욕 하는 신이라 껄끄러워 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세게 나와 당황할 정도였습니다. 고정하면 안 되겠냐고 하던 걸요.

정덕현: 그 많은 카메오들은 예능 PD이었기에 가능한 것인가요?

신원호: 친한 배우들도 있긴 하지만 배우들은 카메오 출연에 소극적입니다. 우리 드라마에 한 번 나오면 다른 드라마에도 나가줘야 하니 불편한 거죠. 그래서 ‘남자의 자격’ 식구들이 더 고맙습니다. 이윤석씨는 먼저 전화해 나 언제 나갈까? 하더군요. 지금 나오면 안 되는 사람조차 나오고 싶어 하는 게, 지금껏 이상하게 살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고마웠습니다. 정주리 씨나 김태원 씨는 부탁하기 민망한 역할이었는데도 기꺼이 와줬어요. 정주리 씨를 제가 참 예뻐하거든요. 못생긴 여자 역할이라 미안했는데 더 할 것 없냐고 하더라고요. 신동엽 씨도 고맙고요.

정석희: 다들 궁금해 하는 부분이 있는데요, 모두가 만족할 결말인가요?

신원호: 저는 결말이 그렇게 궁금할 일인가 싶습니다. 저는 정말 서인국이 장동건도 아니고 정은지가 김하늘도 아닌데 사람들이 서인국과 정은지가 결혼을 할지 안 할지 이렇게까지 궁금해 할 줄 몰랐어요. 단지 시청자들을 궁금하게 만드는 것은 예능인의 버릇이라고 할까요? 이게 단막극 형태이다 보니 ‘과연?’은 다음 주 채널을 고정시키는 힘이거든요. ‘그러려니’하고 끝나면 재미없잖아요. 15년 동안 러브라인 말고도 그 아이들이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결혼 커플이 있다고 했는데 본의 아니게 낚시하는 걸로 보였더라고요. 이게 이렇게 강력한 코드일 줄 알았으면 다른 걸로 했을 텐데요. 시원이와 윤제가 알콩달콩 예쁘게 사랑하는 것 보면서 조금만 관심을 가졌으면 했는데 오히려 부담스럽습니다.

정덕현: 그게 낚시에요. 그런데 낚시도 필요하긴 해요. 하하.

epilogue
조용하게 툭.툭. 품고 있는 생각을 전하는 신원호 PD. 쿨하다.
‘윤제와 시원이는 행복하게 잘 살게 되나요?’가 목구멍 까지 올라 왔지만 참았다. 쿨하게.


대담 : 정덕현 칼럼니스트, 정석희 칼럼니스트
정리 : 최정은 기자
사진 : tvN, 엔터미디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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