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제 부부같은 천호진.조민수의 공통 분모
- 천호진의 아니마, 조민수의 아니무스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한 드라마에 오래도록 혹은 여러 드라마에서 자주 부부로 출연하는 배우들은 실제로도 부부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전원일기>로 긴긴 세월 함께한 최불암 김혜자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최근에는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부부로 출연했던 장용 윤여정이 그러하다. 두 사람은 90년대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내가 사는 이유>에서 오랜 친구로 출연 했는데, 그래서인지 최불암 김혜자가 전통적인 부부상의 모습이라면 장용 윤여정은 친구 같은 부부의 분위기가 있다.

천호진과 조민수 역시 자주 커플로 출연했다. 둘은 영화 <청 블루 스케치>에서 젊은 연인이었고, 이후 농촌드라마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에서 8년 동안 젊은 부부로 출연했다. 오랜 시간이 흘러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란 드라마에서 둘은 다시 만나 연인이 되었다. 젊은 시절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뒤늦게 다시 사랑을 발견해 가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상당히 절절해서 오히려 주연이었던 고수와 한예슬이 보여주었던 사랑 이야기의 분위기가 시시해 보일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에게서 오랜 연인, 혹은 부부의 분위기가 풍기는 것은 아니다. 두 배우는 오히려 다른 배우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독특한 분위기를 공유한다. 그것도 서로의 아니마와 아니무스로.

어딘지 복싱선수 같은 인상의 천호진은 대표적인 남성적인 배우다. 얼굴색은 늘 그을린 빛깔이고 턱은 각졌으며 냉정한 표정을 지으면 야비한 분위기가 감돈다. 화를 내면 사납게 보이는 한 마리 짐승의 으스스한 분위기가 감돈다. 하지만 그가 다른 장년의 배우들과 변별되는 점은 바로 눈이다. 그의 눈은 어딘지 블루하다. 차가움에서부터 우울함 혹은 부드러움까지의 섬세한 분위기가 하나의 다양한 색조를 지닌 블루 안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붉은 립스틱이 어울리는 조민수는 여성스러움을 잃지 않는 배우다. 클로즈업으로 얼굴을 잡으면 그녀의 큰 눈에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다. 무표정하게 빤히 상대를 바라보고 있어도 금방 사랑에 빠진 여인의 분위기가 감돈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화려하고 여성스러운 붉은 빛깔의 매력을 잃지 않는 배우가 바로 그녀다. 하지만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를 본 관객들은 안다. 그녀가 칼을 들었을 때, 혹은 복수에 불타는 눈으로 무언가를 바라볼 때, 그 사랑스러움이 얼마나 냉정하고 잔인하게 변하는지를.



이처럼 푸른 빛깔의 천호진과 붉은 빛깔의 조민수는 지극히 남성적이고 여성적인 이미지이지만 그 내부에 한쪽은 부드러움을 한쪽은 단단한 느낌을 감추고 있다. 그리고 숨겨둔 히든카드를 보이듯 그것이 필요한 순간에 적절하게 연기로 보여준다. 두 사람은 그걸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천호진의 히든카드는 섬세한 아니마 조민수, 조민수의 히든카드는 강한 아니무스 천호진.

천호진 만큼 슬프게 우는 장년의 남자배우를 볼 수 있을까? 그는 최근에 나약한 아버지라는 역할을 많이 맡고 있다. 그는 남자가 무너지는 순간의 눈물을 최적으로 표현할 줄 안다. 남자가 슬퍼 보이는 것이 그리 쉬운 건 아니다. 대개 남자가 우는 순간이란 비참해 보이거나 혹은 구질구질하거나 우스꽝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호진은 그 순간의 장면이 슬퍼보이도록 더 나아가 아름다워 보일 수 있게 만드는 능력을 지녔다. 물론 대부분의 드라마나 영화에서 천호진이 우는 장면이 아름답게까지 여겨지지는 않는다. 그건 천호진의 문제가 아니다. 천호진이 맡을 수 있는 배역의 한계에서 오는 문제에 속한다.

천호진은 사실 나약한 아버지 역할로 소비되기엔 다소 아까운 배우다. 강한 얼굴과 대비되어 드러나는 그의 섬세한 눈빛과 표정은 최적의 역할을 만나면 훨씬 더 빛날 것 같기 때문이다. 게다가 웃을 때면 얼굴엔 주름이 짙게 패고 머리는 희끗희끗하지만 아직 멋진 남자 분위기를 잃지 않은 외모 역시 매력적이다.



그가 평소 자신이 맡던 역할이 아닌 박수무당 만신을 맡아 열연했던 <구미호-여우누이뎐>을 떠올려 보자. 어느 누가 그렇게 빤한 역할을 우스꽝스럽지 않은 독특한 인물로 만들 수 있는가를.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개성적인 역할이 겨우 만신이란 사실은 많이 안타깝다.

반면 김기덕 감독의 작품 <피에타>는 배우 조민수를 위한 영화임에 틀림없다. 그 동안 그녀는 멜로물의 인물로 많이 등장했다. 그것도 자주는 아니고 간간이 사람들이 그녀를 잊을만한 순간에 브라운관에 얼굴을 비추면서 말이다. 그 안에서 그녀는 멜로물의 주인공이지만 어딘지 강해 보이는 분위기를 풍겼다. <불꽃>에서의 역할이 그러했고 <피아노>나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에서도 그러했다. 하지만 멜로물에서 그 강한 분위기는 언제나 살짝 드러났다 감춰질 수밖에 없었다.

영화 <피에타>에서 조민수는 자신이 연기할 수 있는 장을 만난 느낌이다. 어미를 잃은 슬픔에서부터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여인의 모습을 거쳐 아들을 위해 복수하는 냉정한 모습까지. 그녀는 부드러움과 강함, 열정과 냉정 사이를 오가면서 이 영화를 쥐고 흔든다. 그것도 억척스러운 연기나 강한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사소한 움직임과 표정, 눈빛의 변화로 그것을 모두 표현한다. 특히 강도에게 복수를 다짐하는 그녀의 냉정한 눈빛은 바로 그녀 내면의 아니무스 천호진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 순간은 섬뜩하면서도 아름답다.

하지만 언젠가 <피에타> 같은 강렬한 분위기의 영화에서 관객들은 진짜 천호진을 한번쯤은 만나봐야 하지 않을까?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청 블루 스케치>, <피에타>, <이웃사람>]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