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죄소년>, 예상외의 경험을 보장하는 이유
- 이 공익영화가 제공하는 쏠쏠한 재미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지금부터 나는 강이관의 신작인 <범죄소년>이 정말로 재미있는 영화이니 기회가 되면 다들 가서 보라는 내용의 글을 쓸 생각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이 영화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획한 '공익영화'라는 것을 밝히는 것이 내용에 도움이 될까?

이미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만든 <시선> 시리즈를 따라온 관객들에게 이 말은 그렇게 괴상하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딱딱한 인권 감수성을 자극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옴니버스 영화들을 통해, 한국관객들은 국가기관이 만든 공익영화들도 충분히 재미있거나 감동적일 수도 있다는 신기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이들 모두가 완벽한 걸작들은 아니다. 솔직히 몇몇 작품들의 가치관이나 태도에는 완전히 동의하지도 못하겠다. 하지만 능력있는 감독과 작가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테마를 가지고 진지하게 만든 작품들은 '공익영화'라고해도 여전히 좋은 영화이다. 재미면으로도 마찬가지다. 난 <트랜스포머>를 다시 보느니 <달리는 차은>이나 <이빨 두 개>를 또 보겠다. 책상 앞의 범블비 피겨가 나를 째려보고 있거나 말거나.

이건 그리 신기한 일도 아니다. 영화사를 뒤지다 보면 실용적이거나 공익적인 목적으로 만든 온갖 종류의 흥미로운 걸작들이 여기저기에 숨어 있다. 소비에트 혁명 직후의 소련,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영국과 미국이 그랬다. 도널드 덕 주연의 이 멋들어진 단편을 보라. 펜과 마찬가지로 필름 역시 칼이나 총처럼 무시무시한 무기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면서도 하나의 근사한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예이다.

Donald Duck - In Der Fuhrer's Face [HQ] http://www.youtube.com/watch?v=5LYD0Fzf1LU&sns=tw @youtube 에서

하지만 내가 여기서 더 재미있어하는 부류는 이렇게 주제와 내용이 딱 맞아떨어지는 작품들이 아니다. 공익 영화의 세계는 넓고도 이상한 곳이라, 단순히 선전목적으로 만들어진 영화들에게서 이상한 다양성이 발견되기도 한다.

마이클 파웰과 에머릭 프레스버거의 <침입자들 49th Parallel>과 같은 영화를 보라. 영국정보부에서 지원받아 만든 전쟁 선전 영화인데도,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엉뚱하게도 캐나다 해안에 침몰한 유보트의 승무원들이고 이들이 캐나다 국경을 넘어 미국(당시만 해도 진주만 공습 이전이었다)로 탈출하려는 모험이 영화의 대부분을 이룬다. 솔직히 이 영화는 지금보면 상당히 헛갈린다. 나치를 악당으로 다루는 영화인데도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모험담에 동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괴상한 태도 때문에 이 영화가 당시 목표와 상관없이 재미있는 작품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내가 <침입자들>을 예로 든 것은 <범죄소년>을 보면서 이 영화가 과연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시한 인권 감수성 강화라는 주제를 제대로 따르고 있는지 의심이 갔기 때문이다.

일단 영화의 내용을 보자. 보호관찰 중인 소년 지구는 친구와 함께 절도죄로 체포되어 소년원으로 들어간다. 그 동안 유일한 가족이었던 외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갑자기 세 살 때 그를 떠났던 엄마가 나타난다. 소년원을 나온 그는 엄마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데, 그게 만만치가 않다.

형식상, 영화는 주어진 주제를 그대로 따른다. 영화는 우리가 불량소년이라고 부르는 아이들 중 상당수가 결손가정이나 경제적 빈곤의 희생자라고 말한다. 영화는 이들을 돌보지 못하는 시스템의 무능과 사회의 편견이 이들을 계속 악순환 속에 가둔다는 것도 말한다. 그러니 우리는 이들을 관대하게 보고 이 악순환을 끊을 방법을 모색해보자. 이것이 강이관이 진심을 담아 하려는 이야기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보면 이런 묵직한 주제와는 살짝 어긋나는 다른 것들이 보인다. 가장 먼저 눈에 뜨이는 것은 지구와 엄마 효승의 관계이다. 효승은 지구와 마찬가지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범죄소년' 출신이다. 효승은 이 영화에서 지구를 둘러싼 복잡하고 단단한 악순환의 일부로 존재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보다 사회의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통속적인 생각이 먼저 들 수밖에 없다. "아, 피도둑은 못하는구나!" 실제로 <범죄소년>은 혈통의 운명을 다룬 영화로 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진구의 무책임하고 대책없은 성격이나 태도는 엄마 효승과 판박이인데, 이들은 지구가 아기일 때 이후로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으니, 이건 어쩔 수 없이 유전인 거다!



물론 이렇게 이야기를 풀기 시작하면, 강이관이 진심을 다해 전개한 주제는 심각한 손상을 입는다. 시스템의 문제나 사회의 편견은 물론 나쁘다. 이런 것들이 보완되고 개선되었다면 지구와 효승은 지금보다 훨씬 나은 삶을 살았을 거다. 하지만 이 대책없는 모자가 하는 짓들을 보면, 이들의 체질이나 성격의 문제가 더 크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어느 순간부터 이들의 성격이 주제를 넘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그와 함께 '인권영화'의 주제도 살짝 살짝 금이 간다. 심지어 영화는 여기서부터 아이러니컬한 유머까지 담기 시작하는데, 이를 눈치채신 분들이 계신지 모르겠다.

재미있는 것은 <범죄소년>이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재미있고 더 좋은 영화가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인권감수성 향상을 위해 노력하기만 하는 영화를 만들었어도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어느 순간부터 그를 넘어서 그 이상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 '그 이상'이 '혈통의 힘'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도 일부일 수는 있겠지만 전부는 아니니까.

<범죄소년>을 이루는 것은 그렇게 대놓고 몇 가지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는 주제들의 다발이 아니라 그 이상인 삶 자체이다. 강이관이 이를 온전히 통제했건, 통제하지 못했건, 그건 중요하지 않다. 이미 영화는 그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 이야기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리뷰나 줄거리 요약을 읽는 대신 직접 영화를 보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한 번 시도해보시라. 예상외의 경험을 하고 나올 것임을 보장한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범죄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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