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GV, 영화관의 유일한 존재이유 왜 버리나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나는 대부분의 영화를 언론시사회에서 본다. 이 말은 영화에 맞추어 스스로 극장을 선택할 수 없다는 뜻이다. 보통 이런 종류의 시사회를 하는 곳은 왕십리 CGV나 건대 입구 롯데 시네마다. 왕십리에서 가장 자주하는데, 난 아직도 이 상영관 위치의 장점을 모르겠다. 그래도 지금까지 지겨워하면서도 버텼던 건 그곳 8관이 비교적 괜찮은 상영관이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쁜 극장은 아니다. 아니, 나쁜 극장은 아니었다. 적어도 지난해 가을까지는.

신경 쓰이는 변화가 감지된 것은 지난해 11월 말이었다. 크리스티안 문주의 <신의 소녀들>을 보고 있는데, 상영 조건이 괴상했다. 2.35:1의 와이드 스크린 영화였는데, 이전처럼 위를 마스킹해서 상영하지 않는 대신, 위 아래에 레터박스를 남겨놓은 채 그냥 틀어버렸던 것이다.

무슨 기술적 문제가 있었나, 했다. 하지만 왕십리 시사회 때마다 같은 일이 반복되니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혹시 이 사람들이 시사회만 차별을 하는 걸까? 궁금해서 들어가기 전에 다른 상영관들을 염탐해본다. 이런, 다른 일반 상영관도 마찬가지다. 이제 진짜 걱정이 된 나는 CGV의 다른 상영관에서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 어땠냐고 물어보기 시작한다. 마스킹을 하지 않은 채 그냥 상영하는 CGV 극장에 대한 정보들이 날아오기 시작한다. 지난해 말에 어떤 지침이 내려왔고 그것은 순식간에 전국의 모든 CGV의 운영체제를 바꾸었던 것이다. 오싹하다. 바나나병이 비슷한 유전자들을 가진 바나나들 사이에서 순식간에 전염되는 것을 보는 것 같달까. (에너지가 조금만 더 넘쳤다면 나는 이를 멀티플렉스 체인의 위험성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트위터로 물어봤다. 대답이 없다. 그러다 얼마 전 내가 아닌 다른 사용자가 질문을 해서 대답을 얻은 것이 바로 다음 캡쳐 화면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고민했다. 마스킹 천을 내리는 기계는 모터가 들어가 있으니 고장날 수도 있다는 건 인정한다(지난 10여년 동안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다. 그리고 나는 직업상 1년에 200여편의 영화를 본다. 확률을 계산해보시라.) 이런 사고가 운영에 지장을 줄 정도로 자주 일어나는가? 그리고 만약 기계가 고장나서 마스킹 천을 내리지 못하는 사태가 일어났다고 치자. 그 결과는 어떤가. 바로 지금 CGV에서 상영하는 바로 그 상태가 된다. 다시 말해 아무리 머리를 짜고 이 답변은 천을 내리기 귀찮다는 말밖에 안 된다.

그런데, 천을 내리고 올리고가 그렇게 중요한가?

영화에 따라 다르다. 얼마 전 나는 왕십리에서 더스틴 호프먼의 감독 데뷔작인 <콰르텟>을 보았는데, 불편이 없었다. 하지만 그건 이 영화의 화면이 비교적 밝고 화사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모든 영화가 그런 건 아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링컨>은 최악의 예였다. 스필버그는 이 영화의 시대배경을 살리기 위해 모노톤의 어두운 화면을 택했다. 그러면서도 장중한 분위기를 내기 위해 옆으로 긴 벽화와 같은 구성으로 와이드스크린을 채운다. 어두운 색조와 와이드스크린의 구성은 이 영화에 있어서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CGV의 화면에서는 이 의도가 처참하게 무너져 버린다. 레터박스의 검은색과 화면의 검은색이 서로를 침범해버리는 것이다. 수많은 결정적인 장면에서 영화는 와이드 스크린과 풀 스크린의 어정쩡한 경계선에서 방황한다. 스필버그가 의도한 와이드스크린 영화 화면은 그냥 텔레비전 화면이 되어버린다.

마스킹을 한 상영관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유가 뭘까. 그건 영화 속 검은 색은 절대로 검은 색이 아니기 때문이다. 필름과 디지털의 검정색이 다르긴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터박스의 '검정'은 여전히 회색이다. CGV 상영관에서 당연히 둘은 섞인다. 하지만 제대로 마스킹된 상영관에서는 아무리 화면이 어둡다고 해도 주변에서 프레임을 정돈해주는 진짜 검은색 천이 프레임을 잡아준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놓치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와이드스크린에서 중요한 것은 정보의 양이 아니다. 물론 텔레비전 화면에 맞추기 위해 양옆을 잘라낸 화면은 중요한 영상정보를 날리기도 한다. 하지만 텔레비전을 잊고 영화 자체를 보자.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보의 양이 아니라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구성이다. 다시 말해 제대로 영화를 상영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그 구성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영화 화면의 경계선을 명확하게 보여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드러난 레터박스는 이 일을 절반 정도만 대충 할 뿐이다.



이는 이제 디지털 시대니까 레터박스를 보여줘도 되겠지, 정도의 마인드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어떤 영화는 문제지만, 어떤 영화는 괜찮으니까 이 정도면 넘어가겠지, 정도로는 더욱 더 곤란하다. 영화관은 당연히 '상영될 모든 영화들'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 상태로는 CGV에서 앞으로 상영할 수많은 호러 영화, 흑백 영화들은 재난을 맞는다.

가장 좋은 해결책은 원래대로 돌려놓는 것이다. 10여년 넘게 해온 일이고 다른 체인점에서는 계속하고 있는 일인데, 뭐가 그렇게 불편한가.

그래도 귀찮아서 마스킹을 안 하겠다! 몇 초 동안 모터 돌리는 것 때문에 날아가는 인건비와 전기료와 사고가 날 수 있는 몇 천만 분의 1의 위험을 피하고 싶다! 그렇다면 다음 대안이 있다.

마스킹을 내린 채 그냥 두는 것이다.

이건 생각만큼 괴상한 아이디어는 아니다. 우선 기초적인 것부터 생각해보자. 요새 멀티플렉스 상영관의 화면 비율은 벽 양쪽을 거의 덮는 월 투 월 구조로, 대부분 1.85:1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2.35:1의 와이드스크린 영화가 상영될 때 위의 천을 가리는 것이다.

그런데 요새 멀티플렉스에서 하는 영화들 중 와이드스크린 영화가 아닌 작품이 몇이나 되나? 거의 없다! 아마 요새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이 전부일 것이다. 그것도 무비 콜라주관이 있는 곳이나 그렇다. 최근 개봉된 영화들 중 1.85:1인 영화들은 <레 미제라블>, <어벤저스> 정도다. 아이맥스 때문에 할리우드 대작이 이 비율을 택하는 경우가 종종 있긴 한데, 여전히 와이드스크린이 대세이다. 그리고 이건 한국영화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상영관이 와이드스크린 관이어야 정상이다. 이건 마스킹을 내려놓고 방치하면 해결된다. 교차상영을 한다고 해도 그 영화들은 십중팔구 와이드스크린 영화일 테니, 굳이 마스킹을 올릴 이유는 없다. 심지어 탑 + 바텀 마스팅을 해서 화면을 중앙에 놓을 수도 있다. 이는 영구적인 변형이 아니기 때문에 곧 개봉될 <피치 퍼펙트>같은 1.85:1 영화가 나오면 원래대로 돌리면 된다. 몇 초면 끝내는 작업이고 굳이 상영 시작하자마자 할 필요도 없다. 영사사고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순식간에 정상으로 돌아간다. 특히 광고가 그렇다. 이런 식의 1.85:1의 상영관은 좀 괴상한 구석이 있다. 일반 광고는 스크린 전체를 써가면서 호사스럽게 튼다. 그런데 정작 본영화가 상영되면 화면이 픽 줄어들어버린다. 천이라도 내려주면 차이는 곧 잊히겠지만 CGV처럼 레터박스를 드러내는 경우라면 화면이 줄어들었다는 사실은 결코 잊을 수가 없다. 하지만 마스킹을 내린 채 와이드스크린관처럼 다룬다면 광고는 양쪽에 사이드바가 하나씩 있는 상태에서 상영되고 본 영화는 풀스크린으로 틀어주는 것처럼 보인다. 주객전도 되었던 상황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물론 나는 여전히 원래대로 돌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본다. 하지만 정 귀찮다면 이 방법도 있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건 레터박스의 노출은 답이 아니다. 영화관의 목표는 주어진 소스를 최상의 조건에서 상영하는 것이다. 귀찮아서 적당히 타협점을 세워놓고 관객들에게 맞추라고 강요하는 것은 답이 아니다. 그 관객들 대부분이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거나 생각없이 넘긴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관객들은 영화 사운드를 모노로 틀어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5.1 채널을 포기하고 모노로 사운드를 트는 것이 옳은 일일까? 한 번 생각을 해보시라. 영화관은 텔레비전이나 노트북 화면이 주지 못하는 더 완벽하고 거대한 무언가를 주어야 하는 곳이 아닌가? 왜 그 유일한 존재이유를 스스로 버리려 하는 것일까? 이건 직업적 자존심의 문제가 아닌가?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CGV,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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