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 이젠 아날로그 세대의 전유물이 아니다

[엔터미디어=노준영의 오드아이] 디지털 문화가 보편화 되면서 가장 먼저 설 자리를 잃은 물품 중 하나는 바로 LP였다. LP를 들을 수 있는 턴테이블이 골동품으로 취급되며 LP 생산량이 서서히 줄기 시작했고, 휴대성을 강조하는 경향에서 덩치 큰 LP는 CD와 다른 매체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졌다. 결국 LP는 CD와 MP3 음원 시장에 밀려 침체기를 맞았고, 생산 시설도 가동이 중단되며 새로운 세대들은 LP라는 매체를 잘 알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느덧 아날로그 문화의 상징이 되어버렸던 LP, 그런데 요즘 LP가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흥미로운 건 단순한 복고 코드, 혹은 아날로그 문화의 상징으로 살아나는 게 아니라는 점에 있다.

사실 아날로그 문화의 산물이지만 젊은 아티스트들이 많은 관심을 보여 왔다. ‘장기하와 얼굴들’, ‘2AM’, ‘브라운 아이드 소울’ 등이 LP를 발매한바 있고, 그룹 ‘빅뱅’의 멤버인 ‘지드래곤’도 LP대열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최근에는 가왕 조용필도 19번째 앨범을 LP로 발매해 많은 지지를 받았다. 다만 앞선 아티스트들과 약간 다른 점은 한정판 발매 방식에서 벗어나 CD처럼 계속 찍어낸다는 생각으로 발매할 것이라 밝혔다는 점이다.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많은 수단 중 하나일 뿐 수집가를 위한 이벤트는 아니라는 것이다. 팬층을 겨냥한 전략적 선택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지점이다.

이 뿐만 아니라 영화 <건축학 개론>을 통해 향수를 자극한 전람회의 1집도 LP로 재발매될 계획이다. 음반의 대중적인 인지도를 고려해 초도 생산 물량을 꽤 높은 수치로 잡았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얼마 전 열린 ‘서울레코드페어’에는 젊은 세대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작년에 비해 매출도 늘었고, 방문객도 크게 늘었다. LP의 부활이라는 말이 가볍게 들리지 않는 이유다.

음악에 관해 궁금한 지점이 다를 수 있었다. 누군가는 CD나 고음질 파일이 내는 소리가 궁금할 수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LP가 내는 소리를 궁금해 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음악의 취향도 그렇다. 누군가는 최신 아이돌 음악이 듣고 싶을 수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예전 가요계의 추억어린 음악들을 턴테이블을 통해 듣고 싶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의 가요계는 이런 경향을 충실히 반영하지 못했다. 대세가 생기면 그게 곧 대중들의 의견처럼 받아들여졌고, 기획 방향은 철저히 이 대세에 맞춰졌다. 주 소비층이 원하는 음악만을 만들어 내는데 급급했고, 소위 말하는 대세인 디지털 음원 시장에 최적화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결국 이 과정에서 원하는 게 다를 수 있는 사람들의 의견은 묵살되고 말았다.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이 사람들의 요구가 반영되지 못한 것이다. LP가 그랬다. 수입 LP를 구매해 턴테이블을 통해 듣거나, 혹은 중고 LP를 통해 가요를 듣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최근 경향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 우리가 말하는 대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도르노는 대중음악을 이야기하며 세속적인 가치가 추구되며 표준화되는 수단이라고 정의했다. 최근 경향이 그랬다. 하지만 LP의 부활은 이런 표준화된 현실 속에서 개별 자아의 요구를 찾아내는 의미 있는 발견이라고 볼 수 있다.

빠르게 돌아가는 시대에 대한 성찰도 발견할 수 있다. 디지털 음원 시장은 정말 빠르게 돌아간다. 꾸준히 실시간 차트 1위를 지키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꾸준히 청취자의 MP3나 핸드폰의 한 구석을 지키는 일도 쉽지 않다. 맘에 들지 않거나 지겨워지면 삭제하면 그만이다. 특별히 소장한다는 개념도 불분명해 저장해 두는 게 소장의 느낌이다. 뭔가 가시적인 결과를 찾아보기 어려운 패턴이다.

그러다 보니 음악이 가볍게 느껴진 게 사실이고,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던 음악은 어느 순간 소비의 한 부분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LP는 의미가 조금 다르다. 과거 정말 좋아하는 음반을 사며 느낄 수 있었던 소장의 기쁨을 만날 수 있다. 좀 더 기계 느낌이 나는 디지털 음원보다 사람 내음이 난다. 늘 사람보다 문명이 앞서야만 했던 시대적인 현실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인다. LP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음악에서 사람을 찾아내는 건 우연찮은 일이 아니다.

젊은 세대들에게도 LP는 남다른 수단이다. 직접적으로 LP를 경험하고 들지 못한 세대들에게는 또 하나의 새로운 매체일 수 있다. LP로 음악을 듣는 것 자체가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며, 음악을 듣는 새로운 방법이자 문화로 다가갈 가능성이 높다. 음악을 다양한 방법을 통해 접할 수 있다는 건 어느 세대에게나 좋은 일이다. LP 문화가 살아나며 음악을 향유할 수 있는 수단 하나가 늘어난다면 좀 더 많은 의견들이 공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음악은 결국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디지털 시대가 도래 한다 해도 좀 더 사람 냄새가 나길 바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LP의 부활이 이런 변화를 이끌 수 있길 바란다. 음악으로 소통의 의미를 구현하던 아티스트들의 생각들이 하나하나 모여 다시금 따뜻한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시대가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LP가 이런 변화를 이끄는 원동력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칼럼니스트 노준영 nohy@naver.com

[사진=조용필뮤직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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