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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도토리를 떨구는 자는 누구인가
기사입력 :[ 2013-08-20 17:33 ]


[엔터미디어=백우진의 잡학시대] 동네 뒷동산에 참나무류가 제법 많다. 요즘 출근하는 아침 길에는 땅에 떨어진, 도토리가 달린 가지가 자주 눈에 띈다. 거센 바람에 꺾인 게 아니다. 절단면을 보면 누군가가 세밀한 줄톱으로 잘라낸 것 같다. 누가 왜 이렇게 한 걸까? 도토리거위벌레라는, 길이가 1cm도 안 되는 조그만 벌레가 한 짓이라고 한다. 도토리거위벌레다. 도토리가위벌레가 아니다. 주둥이가 거위 목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 이름을 얻었다. 땅에 떨어진 도토리 속에는 도토리거위벌레가 낳은 알이 들어 있다.

나무에 열린 도토리 속에 알을 낳는 데에서 일을 마치지 않고, 힘들게 가지를 잘라서 땅에 떨어뜨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땅에 떨어진 도토리는 가지 끝에 달린 도토리에 비해 다람쥐 같은 동물이 쉽게 먹을 수 있다. 그렇다면 가지 자르기는 쓸데없는 헛수고가 아닐까?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는 2011년 8월 한 일간지에 기고한 글에서 타닌 성분과 관련이 있는지 가설을 몇 가지 소개했다. 떫은 맛을 내는 타닌을 애벌레가 더 적게 먹거나 많이 먹도록 하기 위해 도토리를 여물기 전에 떨어뜨리지 않을까 하는 가설이다. 이 가설은 여기서는 건너뛰기로 한다.

최 교수는 다른 글에서 더 많은 가설을 소개한다. 인성소통협회가 게재한 ‘도토리거위벌레의 모성’(http://cafe.naver.com/humansed/705)이라는 글에서 그는 “인터넷에는 흥미롭지만 아직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은 설익은 가설들이 돌아다닌다”며 그중 가장 그럴 듯한 것 중의 하나가 “도토리가 너무 단단해지면 애벌레가 파먹기 어려워지므로 비교적 부드러운 상태로 유지할 목적으로 가지를 절단할 것이라는 가설”이라고 전한다.

최 교수가 검토하는 또 다른 가설은 밤바구미와의 경쟁을 피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설명이다. 밤바구미는 도토리거위벌레보다 조금 늦게 등장해 도토리나 밤에 알을 낳는다. 도토리거위벌레가 알을 낳은 도토리를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그냥 둔다고 하자. 밤바구미 가운데 덤벙대는 암놈이 있어 그 도토리에 또 알을 낳는다면 두 애벌레가 “그 작은 도토리의 살을 나눠 먹어야 하는 상황이 연출될 것”이라고 최 교수는 설명한다.

바로 수수께끼 풀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배경이 되는 기초사항 몇 가지를 살펴보자. 도토리는 도토리나무에서 열리지 않는다. 도토리는 상수리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 등 참나무류의 열매를 통칭하는 이름이다. 도토리는 도토리거위벌레와 밤바구미는 물론, 다람쥐 어치 멧돼지 곰 등 들짐승과 날짐승이 가을에 배 불리고 겨울을 나는 식량이다. 겨울에 대비해 다람쥐와 어치는 도토리를 땅 속에 저장해두고, 멧돼지와 곰은 몸에 지방 형태로 저장해둔다.

도토리는 사람한테도 가을의 별미를 제공한다. 우리는 도토리로 묵을 해 먹고, 유럽 사람들은 주로 돼지한테 먹인 뒤 돼지고기를 통해 섭취한다. 돼지는 도토리를 좋아한다. 스페인 요리 중 하몽은 돼지 뒷다리를 소금에 절여 건조한 요리인데, 고급 하몽은 야생에서 방목된, 도토리를 먹고 자란 돼지에서 나온다. 도토리라는 이름도 돼지와 관련이 있는데, 여기서는 이쪽으로는 빠지지 않기로 한다.

밤바구미는 도토리거위벌레와 사촌지간쯤 된다. ‘밤바구미’라고 하지 않고 ‘도토리바구미’라고 부르는데, 어느 쪽이 정확한지는 모르겠고, 여기서는 그냥 ‘밤바구미’라는 이름을 쓰기로 한다. 사람이 분류하는 생물 계통의 줄기는 문강목과속종으로 나뉘는데, 도토리거위벌레와 바구미는 별도의 과로 구분되지만, 둘은 ‘바구미상과’에 속한다. ‘상과’는 ‘상’보다 상위의 ‘목’ 아래 그룹을 가리킨다. 바구미상과에는 바구미 소바구미 왕바구미 창주둥이바구미 등의 과와 함께 거위벌레 주둥이거위벌레 등의 과가 포함된다. 쌀에 생기는 딱정벌레가 바구미다.

도토리거위벌레의 주둥이는 다용도다. 송곳도 되고 톱도 된다. 알을 낳을 구멍을 뚫고 가지를 자른다. 밤바구미는 주둥이를 구멍을 뚫는 데에만 쓴다. 밤바구미는 알만 낳고 가지를 자르지는 않는다. 주둥이에 관한 한 밤바구미가 도토리거위벌레에 밀리는 듯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밤바구미 주둥이는 도토리거위벌레보다 길다.

도토리거위벌레와 밤바구미는 산란 행태에 차이가 있지만, 둘 다 도토리가 여물기 전에 알을 낳는다. 도토리거위벌레가 밤바구미보다 선수를 치지만, 그 시기도 도토리가 익기 전이다. 두 곤충은 또 모두 알을 도토리에서 가지와 가까운 부분, 모자에 감싸인 껍데기 속에 알을 낳는다.

산란 시기와 장소가 비슷하다. 산란 장소에 대해 파브르는 곤충기에서 “모자 부분은 (가지에서) 수액이 들어와 말랑말랑해 갓 부화한 애벌레가 먹을 수 있고 소화가 잘 된다”고 풀이했다. 파브르는 “그 위는 떡잎인데 딱딱하고 도토리가 여물면서 더 단단해진다”고 덧붙였다. 밤바구미 유충 얘기인데, 도토리거위벌레 유충도 수분이 많고 부드러운 그 부분이 먹기 편할 것이다. 물론 도토리거위벌레는 가지를 잘라내기 때문에 그 부분에 수분이 계속 공급되지는 않는다.



산란 시기도 도토리가 여무는 정도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20여년 동안 곤충을 연구해온 한영식 씨는 “덜 익은 도토리는 물렁물렁해서 도토리거위벌레 유충한테는 좋다”고 설명한다. 도토리는 익으면서 단단해지고, 전분이 많아진다.

도토리의 말랑말랑한 부위를 애벌레에게 먹이는 게 좋다면, 밤바구미는 도토리거위벌레에 비해 한 수 밀리는 게 아닌가? 밤바구미는 가지를 잘라내지 않아, 밤바구미 유충은 도토리거위벌레 유충에 비해 점점 단단해지는 도토리를 먹어야 하니까? 밤바구미 유충이 꼭 불리한 것만은 아니지 싶다. 밤바구미 어미는 긴 주둥이로 도토리 속에 긴 구멍을 뚫어놓는데, 그럼으로써 갓 부화한 애벌레에게 좋은 먹을거리를 제공한다고 파브르는 분석했다. 구멍을 길게 뚫으면서 구멍 벽에 도토리 부스러기를 잔뜩 남겨둔다는 것이다. 한편 밤바구미 유충이 파먹은 벌레는 때 이르게 갈색이 돼 땅에 떨어진다고 한다.

파브르와 한영식 씨의 관찰과 분석은 도토리거위벌레의 가지 자르기가 갓 부화한 유충이 먹기 좋은 상태로 도토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는 가설을 지지한다. 이 가설은 실험을 통해 확인 가능하다. 도토리거위벌레가 산란을 마친 직후 그 도토리가 달린 가지에 보호망을 씌워 그 벌레가 가지를 자르지 못하도록 한 뒤 그 도토리의 유충이 정상적으로 자라는지 살펴보는 실험이면 된다. 이 실험은 전문 연구가의 몫으로 남겨둔다.

곤충연구가 한영식 씨는 “덜 익은 도토리는 전분이 부족해 야생동물은 좀처럼 먹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우리는 도토리거위벌레가 가지를 자르는 행동이 애벌레를 도토리째로 잡아먹히게 하는 위험에 처하게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덜어주는 답에 이른다. 도토리거위벌레가 알을 낳은 도토리를 땅에 떨어뜨리더라도, 다람쥐는 설익은 그 도토리에는 입맛을 다시지 않는 것이다.

최재천 교수가 내놓은 밤바구미와의 경쟁 피하기 전략은 관찰과 부합하나? 가지를 자르면 유충에게 먹기 좋은 도토리를 제공할 뿐더러 밤바구미가 같은 도토리에 알을 낳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효과도 있다.

이 가설은 그러나 관찰되는 현상과 딱 들어맞지는 않는다. 자연계에는 본능에 따라 멍청하게 행동하는 동물이 없지 않지만, 밤바구미는 적어도 알을 낳을 때에는 주도면밀하다. 밤바구미는 구멍을 뚫기 전 도토리를 매우 꼼꼼히 살펴본다고 파브르는 기록했다. 밤바구미는 다른 밤바구미가 뚫은 구멍은 물론, 도토리거위벌레가 산란한 뒤 미처 자르지 못한 도토리의 구멍도 알아챌 것이다. 도토리거위벌레가 밤바구미의 실수를 염려해 가지를 자른다면, 그건 기우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이제 잠정적인 결론을 내리면, 도토리거위벌레와 밤바구미의 산란 전략은 유충의 초기 먹이로 수분이 많고 먹기 편한 도토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밤바구미는 가지에 매달린 도토리에 긴 주둥이로 구멍을 깊이 파서 이 문제를 해결했고, 깊게 굴착하지 못하는 도토리거위벌레는 가지를 잘라내는 해법을 찾았다.

파브르는 곤충기에서 도토리 수확기의 정경을 이렇게 전한다. 어느 날 마을에서 그 마을 소유 도토리를 수확한다는 북을 치면, 그 마을에서는 온 집안 식구가 동원된다. 아버지는 장대로 가지를 치고, 어머니는 손이 닿는 도토리를 딴다. 아이들은 땅에 떨어진 걸 줍는다. 들쥐 어치 바구미, 그밖에 많은 동물의 기쁨거리가 된 다음에는 이 수확에서 비계가 얼마나 생길까를 계산하는 삶의 기쁨이 따른다.

많은 도토리가 구멍이 뚫려 파먹힌 것을 보고 벌레를 향해 욕설을 퍼붓는 사람들에게 파브르는 이렇게 말한다. “만일 도토리 수확을 한 줄에 꿰어놓은 소시지로밖에 보지 않는다면, 우리의 이기주의 성향이 바로 난처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네. 떡갈나무는 누구든 제 열매를 이용하라고 청했네.”

파브르의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참나무 열매는 기존 생태의 균형을 크게 깨지 않는 선에서 분배돼야 한다. 그런데 지구 온난화로 도토리거위벌레 개체수가 급증했다고 한다. 도토리거위벌레 유충은 땅 속에서 겨울을 나는데 겨울 날씨가 따뜻해지자 살아남아 성충이 되는 개체수가 늘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야생동물의 식량이 줄었다고 한다. 지방을 축적하지 못한 곰이 겨울잠을 깊이 자지 못하고, 멧돼지가 먹이를 찾아 산에서 내려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한다. 자연의 원리인 균형과 조화가 깨지면 어떤 형태로든 크고 작은 사달이 발생하게 마련이다.

파먹힌 도토리를 놓고 벌레를 욕하지 말라는 파브르의 충고도 옳다. 많은 도토리가 벌레 몫이 되는 건 도토리거위벌레와 밤바구미의 탐욕 탓이 아니다. 이들 벌레가 많아지도록 한 지구온난화를 일으킨 인간이 책임을 지고 해결해야 한다.

칼럼니스트 백우진 <안티이코노믹스><글은 논리다> 저자 smitten@naver.com

[사진=에코홀씨]
[자료]
장 앙리 파브르 저, 김진일 옮김, 파브르곤충기7, 현암사, 2010
한영식, 작물을 사랑한 곤충, 들녘,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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