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내 시간을 주고, 내 마음을 주고, 내 슬픔을 준다는 게 나한테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어서 오래 망설였지만, 나보다는 내 눈이 당신의 눈을 보고 있고, 나보단 내 마음이 당신을 닮고 있고, 좀 더 버팅겨 보려고 했는데 더 이상은 무리에요, 나도. 꽤 자주 생각합니다, 한 팀장을. 시시때때로 시시각각, 호시탐탐, 늘 생각합니다, 요즘 내가 당신을. 한 팀장, 내 여자 합시다. 친구 때려치우고 남자, 여자로 만나 봅시다, 우리.“

-MBC <반짝반짝 빛나는> 中 송승준(김석훈)의 프로포즈

[엔터미디어=정석희의 그 장면 그 대사] 뜨뜻미지근한 행보를 보이던 송승준이 드디어 한정원(김현주)에게 사랑 고백을 했다. 그것도 흐드러지게 핀 밤 벚꽃 아래서, 마치 칠팔십 년대 영화에 나올 법한 고백이다. 순간 그 유명한 MBC <다모>의 한 장면, “아프냐? 나도 아프다.”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렇다. ‘송편’(송승준 편집장)의 고백은 요즘 스타일은 결코 아니다. 그래서 다들 남자 주인공이 조선시대에서 온 양 답답하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하기야 한동안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SBS <시크릿 가든>의 김사장(현빈)과 비교하면 영 다른 시대 인물처럼 느껴지는 건 사실이지 않나. 하지만 그 흔해빠진 ‘사랑’의 ‘사’자 한번 안 들어간 고백이지만, 오래오래 뜸들이다 못해 진이 빠지게 만든 고백이지만 이 보다 더 진심이 느껴지는 고백은 없지 싶다. 신림동 어머니(고두심) 집 하숙생이자 미혼부인 강대범(강동호)을 두고 “아이 아빠가 좋은 것이냐. 아이가 좋은 것이냐"며 다그치는 송편에게 아이 아빠를 질투하는 당신이 좋아지려고 한다며 먼저 속내를 표현했던 정원으로서는 오랜 기다림 끝의 단비 같은 고백일 게다.

보는 이의 입장에서 송편의 고백이 한층 심도 있게 다가왔던 건 바로 앞서 황금란(이유리)과의 대화 때문이기도 하다. 내 말은 못 믿으면서 왜 걔 말은 믿느냐는 금란이의 물음에 “금란 씨보다 한 팀장을 잘 아니까요. 내가 봐온 한 팀장은 남의 것을 욕심내는 사람이 아닙니다. 남의 것을 욕심냈다 하더라도 금세 잘못했다고 사과할 사람입니다. 투명한 사람이에요. 정직한 사람입니다.“라고 답해 금란이를 함묵케 했으니까. 이 정도면 평생 정원이의 한 편이 되어줄 게 분명하지 않은가. 이후 금란이가 어떤 계략을 꾸민다 한들, 송편의 어머니(김지영)가 아무리 금란이를 며느릿감으로 밀어붙인다 한들 송편은 아마 태산처럼 요지부동일 게다.




보다 더 믿음이 가는 부분은 정원이에게 마음이 기울기 시작한 시점이 사장 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다음이라는 점. 금란과 정원이 뒤바뀐 출생의 비밀을 알자마자 바로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꾼 찌질이 윤승재(정태우)와 너무나 비교가 된다. 만나자마자 서로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계산기부터 두드리고 본다는 요즘 결혼풍속도와도 일변되는 부분이다. 금전적으로야 사채 시장 큰손인 어머니가 뒤를 받쳐줄 터, 일개 출판사 정도는 안중에도 없으리라 보는 이도 있겠다. 그러나 돈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돈을 마다할까? 보나 안 보나 이미 돈의 노예인 송편의 어머니는 금란이가 출판사 사장의 친딸이기에 더 마음에 들어 할 게 분명하지 않나. 그러나 조선시대 도도한 선비 같은 우리의 송편은 물질 따위에 좌지우지되는 이가 아닌 것이다.

길러준 부모를 떠나 낳아준 부모가 있는 신림동 집으로 갈 마음을 먹은 정원이의 손을 넌지시 잡으며 당신 슬픔은 이제 당신 것만은 아니라는, 어제 밤부터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느라 안절부절 못하면서 참았다는 송편의 한 마디 한 마디가 훈훈하게 가슴에 와 닿았다. 하루아침에 청천벽력 같은 사건을 맞아 혼란스럽지만 송편이라는 천하에 둘도 없는 든든한 편이 곁에 있는 것 하나만으로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정원이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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