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고를 빚어내는 ‘응답’ 제작진의 신기한 솜씨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초반 강공이 통했다. 지난주 첫 방영된 <응답하라 1994>의 반응이 매우 뜨겁다. 평균 시청률 2.6%, 최고 시청률은 3.8%을 기록하며 1~2회 평균 1%대 시청률을 기록했던 지난 시리즈보다 수치 상 두 배 이상 껑충 뛰었다. 90년대의 추억들을 청춘들의 이야기에 엷게 펴 발라 기대 밖의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던 전작 <응답하라 1997>의 인기를 단숨에 뛰어넘은 것이 수치상으로도 드러났다. 전작의 성공이 다져놓은 기대감에다가 ‘농구’라는 특정한 대상으로 그 시절을 구체화하면서 추억의 감도를 높인 마케팅이 통한 것이다.

그런데 <응답하라 1994>는 단지 복고가 아니다. 20년 전 이야기이지만 누군가는 10년 전 자신이 겪었던 기억과 오버랩되고, 누군가에겐 현재진행형의 우리의 이야기와 오버랩되는 청춘물이다. 다시 말해 이 드라마의 묘미는 시대의 고증이 아니라 그 속에 담겨 있는 감성과 정에 있다. 서울은 척박하고 두려운 현실이자, 개척해나가야 할 미래다. 사투리를 쓰는 지역 촌놈의 상경은 청춘, 자립, 성장을 뜻한다. ‘신촌 하숙’은 새로운 가족의 탄생 공간이다.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하숙집에 모여든 것은 미국 시트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커뮤니티 설정이다. 청춘물을 위한 정서적, 물리적 설정이 모두 다 갖춰진 것이다.

각 지역에서 부푼 꿈을 품고 올라온 ‘촌놈’의 두근거림과 낯선 정글에 첫 발을 내딛을 때의 두려움과 같은 미묘한 공기를 <응답하라> 제작진은 예의 신기한 솜씨로 잡아낸다. 지금은 지명이 사천으로 바뀐 삼천포 장국영(김성균)의 험난한 상경기가 대표적인 일화다. 서울역에서 신촌행 기차를 기다리고, 남의 정액권 티켓을 뽑아가며 악마의 손을 내미는 택시 기사 에피소드는 경험의 유무와 별개로 웃기면서도 애잔한 마음이 전해진다. 그리고 온갖 어려움과 하숙집 룸메이트에 대한 불만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걱정하실 어머니께 아무 일 없이 잘 지낸다고 안부 전화를 하는 것을 보면서 웃음 그 다음의 감정을 마주하게 한다. 지금은 모자라 보이지만 다 성장한 것이다. 추억이 주는 위안과 힐링의 감동이 시대적 고증과 웃음이란 당의정으로 포장되어 있는 시트콤인 셈이다.



쓰레기, 고지식한 삼천포, 넉살좋은 해태, 왈가닥 나정, 순박한 빙그레 등등 각각의 캐릭터가 무엇을 말하는지 확실하다. 거기에 홍석천, 나영석PD 등이 카메오 출연하고, 성동일이 삼천포를 가족에게 소개하며 “나이가 스무살이셔 진짜로”라고 말하는 장면이나 서태지 혹은 이상민인 줄 알고 보디가드가 있는 검은 그랜저에 뛰어들어 파파라치 샷을 찍어 인화해보니 그 주인공은 연희동의 황태자 전두환이었더라는 에피소드 등은 드라마 전반을 잘 녹아들어 있는 시트콤적인 코믹 요소다.

물론, 90년대를 다루는 시대적 배경이 방아쇠 역할을 했다는 것이 별개 아니라는 뜻이 아니다. 로드쇼, 럭키금성, 뉴키즈 온더 블록, <마지막 승부>, 게임팩과 만화책, 대우 봉 세탁기, 한메타자교실, 플로피디스크에서부터 서태지와 연대 농구부, 장혜진의 ‘1994년 어느 늦은 밤’까지 추억을 끄집어 낼 요소들을 끊임없이 소환해 그때 그 시절의 흔적을 잡아 그 시절의 추억을 펼쳐보였다. 깨알 같은 유머나 대사에서도 당시의 시대상을 드러내려고 노력했다. 쓰레기(정우)와 성나정(고아라)이 농구대잔치에서 연대가 우승할지 기아가 우승할지를 두고 다투는 것이나 송태섭 머리를 한 해태(손호준)가 얼굴을 다 가린 윤진(도희)의 헤어스타일을 보고 ‘정대만이냐며, 농구가 계속 하고 싶냐’고 물어보는 것 등이 그렇다.

하지만 <응답하라 1994>의 복고는 단지 시대적 향수를 나열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잊고 지냈던 기억들을 소환하는 데 있다. 친남매처럼 지내는 쓰레기와 성나정이 티격태격한 후 쓰레기가 다급하게 나정을 급한 일이 있다고 간청해서 부른 다음 방에 불을 꺼달라고 하는 장난은 굳이 1994년이 아니더라도 형제가 있다면 누구나 겪어봤음직한 에피소드다.



그래서 그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추억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세대에게는 나름 시대극의 재미를 입힌 청춘물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1994년은 지금보다 풍족하고 고민 없는 시대다. 여러 현실의 무게감을 덜어낼 수 있고 청춘을 낭만으로 풀어내기에 딱 적당한 시절이었다. 한 하숙집에 모인 다섯 남자와 두 여자, 이 청춘남녀가 하나의 공간에서 서로 얽히고설키는 청춘의 한 때를 그리기에 최적의 시절이었다는 뜻이다.

이제 2회다. 몇몇 등장인물의 캐릭터 소개와 신촌 하숙의 분위기를 설명하는 데 집중을 했다. 아직 이들이 어떻게 어울리게 되고, 그 속에서 갈등을 비롯한 여러 관계를 맺으며 어우러질지는 앞으로 본격적으로 펼쳐질 것이다. 그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는 것은 1994년으로 여행을 보내주기 때문만은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지낼지가 보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응답하라 1994>가 반가운 것은 단지 그 시대를 향유하는 것만이 아니라 맥이 끊긴 청춘물의 감성과 분위기, 그 풋풋한 공기를 제대로 담아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지 복고의 감성만으로 흥행열풍을 해석하는 것은 이 드라마의 완성도를 간과하는 것이다. 꼭 단지 그 시절을 향유했느냐 마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 드라마는 웃음 속에 우리가 잊고 지냈던 감성과 정을 불어넣었다. 이것이 ‘응답하라’ 시리즈가 잘나가는 드라마이자 웰메이드 청춘 시트콤으로 남아주길 기대하는 이유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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