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태웅에게는 있고, 양준혁에게는 없는 것

[서병기의 트렌드] ‘1박2일’의 엄태웅과 ‘남자의 자격’의 양준혁은 예능감이 뛰어난 사람들은 아니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리얼 버라이어티에 각각 합류한 두 사람에 대한 시청자의 반응은 모두 좋게 나타나고 있다. 두 사람만을 비교할 때는 양준혁의 예능감이 엄태웅보다 훨씬 더 좋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엄태웅에 대한 반응이 양준혁보다 훨씬 더 빨리, 더 강하게 나타났다.
 
예능이지만 사람의 인생과 삶이 은연중 드러나는 리얼 버라이어티는 기대를 배반했을 때 효과가 크게 나타난다. 특히 새로운 캐릭터는 ‘반전’을 지니고 있어야 잘 먹힌다. 잘 할 것 같은데 적응을 잘 못하거나, 잘 못할 줄 알았는데 잘 하는 경우다. 엄태웅은 전자다. 검정색 수트가 잘 어울리는 엄포스는 뭔가 한방이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을 주었다. 하지만 보기보다는 ‘허당’이었다. 이승기는 엄태웅을 무당(無당)이라고 했다. 축구와 족구는 아예 되지가 않을 정도의 ‘개발’이었다.

잘 할 줄 알았는데 계속 너무 못하면 시청자의 반응이 좋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꼼수 안부리고 성실하고 열심히 한다. 이 점이 김종민과의 차이점이다. 김종민은 잘 못하는데 열심히 하지도 않아 욕을 많이 먹었었다.
 
혼자 강원도 양양을 열심히 찾아가고, 울릉도의 해안도로를 무섭게 뛰며, 남해 금산의 보리암에서 108배를 해내는 엄태웅은 리더는 못돼도 팀의 보조는 잘 맞춰준다. ‘무섭당’과 ‘바보당’의 대결에서 무섭당은 은지원이 모든 걸 조종한다. 엄태웅은 이를 잘 따라간다. 엄태웅은 포스를 갖춘 스타지만 첫날부터 멤버들에게 집을 습격당해 속옷 차림에 떡진 머리 등 망가진 모습을 보여부며 애초에 벽을 없앴다.

나영석 PD는 엄태웅의 캐릭터가 빨리 잡혀진 배경에 대해 “기본적으로 선한 품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 이런 것이 자연스럽게 표출된다는 점이 좋은 반응을 얻게 한 것 같다”면서 “사전 인터뷰를 통해 엄태웅이 발재간이 없다는 점을 미리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점이 언젠가는 코믹한 방송으로 드러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다. 축구와 족구 게임을 하다보니 이 점이 의외로 빨리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반면 양준혁은 기대한 대로 너무 잘한다. 이게 문제다. 하프 마라톤 몰카를 의심없이 완주하고, 서해 무인도에 뒤늦게 합류하고도 대단한 야생 적응력을 보여주었다. 늦게 가면서도 ‘김태원 형님’을 걱정하고 섬에 도착하고서도 잠도 안자고 집을 짓고 계란을 요리했다. ‘양신’ 양준혁에게도 반전 내지 배반의 이미지가 있기는 하다. 막무가내 스타일일 것 같은데 생각보다 섬세하고 꼼꼼하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아직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

‘남자의 자격’은 김성민이 빠진후 OB(이경규 김국진 김태원)와 YB(이윤석 이정진 윤형빈)의 관계 자체가 없어져버렸다. OB와 YB간에 갈등이건 배신이건 거래든 무슨 관계가 형성되야 활력이 살아날 수 있다. 양준혁은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대주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지난 8일부터는 ‘밉상’ ‘진상’ ‘하극상’ ‘천방지축’ 캐릭터인 전현무가 하차한 이정진 자리에 새로 투입돼 판을 휘저을 태세다. 양준혁이 뒤에서 느긋하게 캐릭터를 만들고 멤버들과의 관계를 형성할 시간과 여유가 없다.
 
더구나 ‘남자의 자격’과 ‘1박2일’은 MBC ‘나는 가수다’의 쓰나미에 치고 달아나도 모자랄 판이다. 나영석 PD는 “리얼 버라이어티는 계속 새로운 목표를 세워야 하고 그 동력이 꺼지지 않게 해주는 게 포인트다”라고 말한다.
 
‘1박2일’의 엄태웅, ‘남자의 자격’의 양준혁이 앞으로 이 기대에 얼마만큼 부응해줄 수 있을까?

 
칼럼니스트 서병기 < 헤럴드경제 기자 > wp@heraldm.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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