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에릭사티’ 음악감독 신경미

[엔터미디어=공연전문기자 정다훈] 19세기는 괴짜이자 고독한 광대로, 21세기는 천재예술가로 기억하는 음악가 에릭 사티는 생계를 위해 최초의 예술 캬바레 검은고양이(Chat Noir)에서 피아노 연주를 했던 인물. 평생 가난과 고독, 냉대 속에서 살아야 했던 처절한 삶과 한 편으로는 끝까지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펼치며 세상에 맞섰던 그는 바그너로 대표되는 후기 낭만주의의 엄숙주의를 비꼬듯 ‘음악은 긴장하지 말고 딴 짓도 하면서 가볍게 즐기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시몬스 침대 광고, 드라마 <주군의 태양>, <시크릿가든>, 영화 <내 여자 친구를 소개합니다> 등의 BGM으로 유명한 사티의 음악들은 화려하거나 웅장하게 그 예술성을 과시하기보다는, 그저 있는 그대로 마치 항상 있던 가구처럼 편안하면서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잔잔한 멜로디 위에 커피향이 풍겨 나올 것 같은 나른한 분위기 이면에는 형식 파괴, 악기와 소음의 결합, 극단적인 반복과 미니멀한 구조 등은 전위예술의 선구자라 불리는 면면이 녹아있다.

연극과 뮤지컬의 경계에서 자유롭게 클래식한 감성을 선사할 음악극 <에릭사티>(작가 김민정 연출 박혜선)가 11월 22일부터 12월 1일까지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오른다. 현재의 인물인 패기 넘치는 20대 젊은 영화감독 ‘태한’(김태한)이 시간여행을 통해 19세기의 사티(박호산)를 만나 자신이 갈망하는 예술적 진정성을 찾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2011년 안산문화재단이 기획·제작해 초연됐던 작품으로 2013년 업그레이드 된 모습으로 관객들을 만난다.

초연에서 볼 수 없었던 그림자 놀이, 자이언트 퍼펫, 마임, 발레 등 다채로운 칼라와 사티의 실험정신을 엿 볼 수 있는 이미지들이 선사된다. 또한, 1917년 프랑스 파리 샤틀레극장에서 초연되었던 19세기 최고문제작 발레극<파라드> (작/장 꼭도, 작곡/에릭 사티, 연출/세르게이 디아길레프, 무대/파블로 피카소)를 오마쥬 해 근대예술의 변천사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에릭사티> 신경미 음악감독을 만나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다.



■ “미니멀한 사티의 음악세계에 집중했다.”

-세트가 다 갖춰지지 않은 연습실 공연만 봤는데도 초연 때와는 분위기가 확실히 달라진 것 같았다. 한 마디로 말하면 아늑한 느낌을 주는 공연이었다.
“아. 그런 느낌을 받으셨다니 좋네요. 저 역시 그런 의도가 있었고요. 정면에서 쾅쾅 때리는 음악이 아닌 미니멀한 사티의 음악세계가 더 잘 드러나도록 신경 썼어요.”

-실내악 느낌을 강조한 건가
“초연이 뮤지컬스러운 화려한 느낌이었다면, 이번엔 좀 더 실내악 느낌, 미니멀리즘을 강조했어요. 19세기 프랑스 분위기를 내기 위해 악기편성을 바이올린, 콘트라베이스, 클라리넷, 피아노 2대, 아코디언 그리고 타악으로 배치했어요. 사티의 음악이 그저 있는 그대로 마치 항상 있던 가구처럼 편안한 가구 음악이라는 설명도 있는데, 좀 더 사티의 기본 성향에 집중 한 거죠. 이전엔 건반을 사용했다면 이번엔 어코스틱 피아노를 사용해 좀 더 어코스틱해지는 느낌을 줄 것 같아요. 그런데 아직은 극장에 올리기 전이라 잘 모르겠어요. ‘쿵짝 쿵짝’ 그 느낌이 아니라 ‘아늑한 느낌’을 주면서도 극적인 느낌을 내야 하는 숙제가 남아 있어요. 다 살롱 음악을 보여줄 순 없어서요. “

-대본상으로도 2011년 공연과 달라졌다고 하던데
“(원은영 홍보팀장이 대답했다)60% 이상 수정 됐어요. 2011년도 초연 공연이 미니멀한 무대와 옴니버스로 펼쳐진 무대였다면, 2013년 공연은 발레극 <파라드>를 만드는 과정, 수잔과 사티의 관계성에 집중했어요. 스토리라인을 강화시켜 관객들이 좀 더 쉽게 극을 따라갈 수 있도록 한 거죠. 이 과정에서 초연 땐 주요 배역 외에는 특정 조역 없이 멀티로 앙상블 역을 맡았다면, 이번에는 장콕도, 피카소, 디아길레프등 조연들의 캐릭터가 분명해지며 극의 스토리가 풍성해졌어요.

초연의 리뷰와 리서치를 보면 2011년도 공연이 마니아들이 선호할 만한 공연이었다면, 재연은 에릭사티의 감성은 그대로 가져가되 대중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접근하는 의견이 반영됐어요. 제작자와 크리에이티브 팀들의 자기 복제가 아닌 자기 반성의 과정을 거친 겁니다. 또 이번 리허설 공연을 지켜 본 몇몇 기자들과 관계자분들이 ‘재연은 ‘에릭사티’를 돌아보는 의미 외 에도 공연으로서 재미도 함께 잡았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에릭사티인 박호산 배우는 그대로이지만, 반 이상의 배우진이 달라진 것 같다.
“초연에 출연했던 박호산 한성식 김용호, 강현우 배우는 재연 공연도 함께 하게 됐어요. 또 이번엔 수잔 역 배해선 배우 빼고는 전부 다 남자배우(김태한, 신문성, 이준녕 김기창, 이형준)로 구성됐어요. 이렇게 바뀐 콘셉트 자체가 ‘사티가 사랑한 여인은 수잔 한 명 밖에 없다’입니다. 어쨌든 사티가 6개월간 사랑한 여자는 수잔 밖에 없었다고 들었어요.”

-에릭사티 곡과 정민선 작곡가의 곡이 정확히 구분되지 않았다.
“에릭사티 원곡인 짐노페디(Gymnopedies), 그노시엔(Gnossiennes), 쥬뜨부(Je Te Veux), 벡사시옹(Vexations) 등과 정민선 작곡가가 창작한 곡으로 구성 됐어요. 전 선곡된 사티의 음악과 정 작곡가님의 음악이 잘 어울리도록 편곡했어요. 어느 곡은 사티의 곡이고 또 어느 곡은 정 작곡가의 곡이라고 구분 짓기 애매한 게 특징이죠. 전반적으로 BGM으로 깔리는 음악들은 사티스런 음악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서커스 발레극 <파라드>에 집중한다는 말도 들었다.
“옴니버스 식 이야기에서 벗어나 <파라드> 이야기에 좀 더 중심을 뒀어요. 이번에 안무가 서미숙씨(SEO발레단 단장)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파라드’ 장면을 만들어요. 발레 장면은 프랑스 무용수가 직접 와서 할 겁니다.”



■ “음악감독은 음악을 드라마적으로 연출하는 일”

-음악감독이 하는 일이 뭔지 보다 쉽게 설명한다면
“연출님이 드라마적으로 음악을 건드린다면, 음악감독은 음악을 드라마적으로 건드린다고 할 수 있을까요. 작품 전체적으로 음악을 연출한다고 볼 수 있죠. 음악감독은 노래하는 배우들에게 터치를 하기도 해요. 호흡을 어떻게 썼으면 한다는 말과 함께. 연출은 연기 부분, 음악감독은 음악 부분만 디렉션 해야 한다는 식으로 따로 구분하지 않고 함께 가는 경우도 있긴 해요. 외국에선 세분화되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같이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이번엔 전체 선곡을 하고, 창작곡과 사티 곡이 잘 믹스 되도록 편곡하고, 그 때 그 때 배우들의 호흡과 템포를 조절하는 일을 해요. 음악감독의 영역이 케이스 마다 달라요. 정민선 작곡가님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부터 조감독 작업으로 인연을 맺어서 10년 이상 선생님 작품이라면 주저하지 않고 기쁘게 하고 있어요.”

-음악극과 뮤지컬 차이가 뭔가?
“많이들 물어보시는 데 설명은 잘 못 하겠어요. 뮤지컬이 노래로 내용을 전달한다면, 음악극은 음악에 맞춰 대사가 들어가고 드라마가 이어진다고 해야 하나요. 극 전체에 음악이 배경으로 배치돼요”

-<에릭사티>의 음악 뿐 아니라 아티스트로서 공감 하는 부분이 많을 것 같다.
“예술에 대한 이야기, 작곡가를 다룬 작품이라 사티에 대해 공부도 하고, 사티 음악도 많이 들었어요. 또 단순히 아티스트의 이야기가 아니라 ‘세계관 혹은 가치관의 이야기’라 더 공감 돼요. 사티는 천재 아니면 외톨이, 예술가 아니면 외계인이라고 인식됐어요. 고집불통, 선구자, 시대의 반항아, 이단아라고 언급되고 있는데 ‘중심을 잃지 마. 배짱을 부리자는 거지.’라고 말하는 사티의 우직한 면들이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공감이 되죠. 저 역시 작품이 좋으면 무조건 하는 스타일이거든요.”

-뮤지컬 젊은베르테르의 슬픔, 인당수 사랑가, 카르멘, 콩칠팔새삼륙, 트레이스 유, 천상시계, 구름빵, 브레멘 음악대, 비틀깨비 등 작업을 많이 했다. 이젠 신경미 음악감독의 이름을 많이 알지 않나
“아직은 저에 대해 많이들 모르세요. 한 우물을 10년 이상 파서 그럴까요? 뮤지컬 보는 사람들은 이름을 기억해주시기도 하는데 음악이 워낙 좋은 작품들이어서 그랬을 겁니다. 거기에 제 이름도 기억을 해 주면 감사하죠.”



■ “현실과 일루젼을 연결하는 다리역할을 잘 해내고 싶다”

-뮤지컬 작곡이 더 하고 싶었을 것 같은데
“창작에 대한 열망은 다들 있을 겁니다. 저 역시 그렇고요. 음악에 대해선 계속 수양 중입니다. 몇 년 전에 창작 팩토리 부분에 당선 돼서 공연한 <사이드미러>는 직접 작곡을 한 작품입니다. 대구 국제 뮤지컬 페스티벌 참가작으로 공연했었어요.”

-어떻게 공연계에 몸을 담게 됐나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어요. 교회에서 초등학생 친구들을 모아놓고 연극 만드는 것이 재미있기도 했고요. 그러다 연극 쪽 음악을 담당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작업이 또 재미있었거든요. 그런데 드라마를 좋아하고 전공은 작곡 이다 보니 ‘두 개를 다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이렇게 뮤지컬 작업을 하게 됐어요.”

-드라마를 좋아한다면 직접 대본을 쓰기도 하나
“실은 몇 번 시도해봤는데 너무 어려워서 관 뒀어요. 시가 있으면 음을 붙여 노래 곡을 쓸 수 있는데, 대본을 쓰는 건 에휴. 음표를 고르는 게 낫지.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는 못하겠더라고요.”

-음악감독으로서 본인이 뭘 잘한다고 생각하나
“음악을 드라마적으로 푸는 걸 좋아해요. <콩칠팔새삼륙> 때도 그렇고, 배우 호흡에 따라 바뀌는 공연이 좋아요. 숨소리 하나하나를 캐치하는 걸 좋아하고 그런 걸 잘해요. 전 공연이 살아 있어서 좋아요. 공연은 그 순간에 날 것의 호흡을 느낄 수 있잖아요. 예전 <트레이스 유> 공연 때 최재웅, 이율, 이창용, 김대현, 손승원, 윤소호 배우들이 페어별로 호흡이 다 달랐어요. 공연의 기본 틀은 똑같이 가지고 있지만 그 때 그 때의 호흡을 잘 읽어내 템포나 흐름이 쫙 맞아가는 희열을 잊을 수가 없어요. 이건 현장이 아니면 안 되는 거잖아요. 초 예민해져서 긴장하고 있는데 음악적으로 합이 맞아졌을 때 기분은 말 할 수가 없죠.”

신경미 음악감독은 <에릭사티> 공연이 끝나면 내년 1월에 공연될 뮤지컬 <구름빵> 새 버전 작업과 정확한 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트레이스 유> 재공연 작업에 들어간다.

마지막으로 신 감독은 “현실과 일루젼을 연결하는 다리역할을 잘 해내고 싶다”고 말했다. “<에릭사티> 음악감독을 하면서 직접 어코스틱 피아노도 치고, 발레극 ‘파라드’ 드라마 안에 있는 소리와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 타자기도 치고 호루라기도 불어요. 풀 오케스트라가 아니기 때문에 제가 바쁘게 움직이죠. 극중 사티 대사에도 있는데, ‘현실과 일루젼을 연결하는 음악의 역할’을 제가 하고 있어요. 한 편의 공연 안에서 일루젼과 현실을 연결 짓는 매개체이자 다리 역할을 잘 해내고 싶어요. 그렇기 위해서는 음악을 드라마적으로 잘 풀어내도록 해야겠죠.”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재)안산문화재단, E-Won Art Fac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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