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계 90년대 열풍, 모방에 그치지 않으려면

[엔터미디어=노준영의 오드아이] 요즘 가요계를 보고 있자면 그야말로 타임머신을 탄 듯한 느낌이다. 최근까지 음원 차트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던 <응답하라 1994>의 O.S.T 들은 전부 과거형이다. ‘너에게’, ‘가질 수 없는 너’, ‘행복한 나를’, ‘그대와 함께’ 등 장르도 무척 다양하다. 드라마 열풍의 여파를 무시할 순 없지만, 대형 아티스트들의 컴백이 이어졌고 음원 차트의 숨겨진 강자들이 속속들이 신곡을 출시했다는 사실을 감안해 보면 대단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퍼포먼스 듀오 테이스티는 90년대를 강타했던 뉴잭스윙을 가지고 나왔다. 90년대의 추억을 그대로 안고 있는 이들의 ‘떠나가’는 듀스가 가요계를 강타하던 그 시절을 생각나게 만든다. 구성면에서도 90년대 느낌 그대로라 누가 들어도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지금 90년대가 가요계에서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과거형 음악 대세는 과거 쎄시봉 열풍과는 달리 전 세대에 걸쳐 공감을 얻고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음원 차트를 쥐락펴락하는 주요 세대가 모두 동의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사실 10대들과 20대 초반에 이르는 세대는 90년대를 아우르는 느낌에 딱히 공감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열정적인 손짓이 음원 차트 롱런으로 나타나고 있는 지금이다. 세대를 넘어서는 인기의 원인을 우리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 걸까?

일단은 재해석이라는 측면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90년대 음악은 지금의 음악과 크게 동떨어진 부분이 없다. 사운드 요소적인 측면이 조금 더 깔끔해 졌을 뿐, 전체적인 히트 코드나 공감대는 거의 비슷하다. 발라드, 댄스, 그리고 각종 장르를 넘나드는 음악적 대세들이 유사하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2000년대는 90년대를 기반으로 형성됐다. 과거의 유산들이 지금의 가요계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는 사실은 반론을 제기하기 어려울 정도로 당연한 사실이다. 때문에 90년대 음악은 재해석을 통해 동시대에 적용하기에 용이한 측면을 두루 갖추고 있다. 그래서 음악을 새롭게 접할지도 모르는 어린 세대들이 빠르게 흡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위에서 잠깐 언급한 연속성도 큰 요소 중 하나다. 자연스럽게 2000년대로 이어진 흐름 속에 어떤 세대가 들어도 이질감을 느끼기 어려운 음악이 바로 90년대 음악이다. 지금의 아이돌에게도, 싱어송라이터에게도 90년대 음악은 마치 ‘레퍼런스’와도 같이 반짝거리는 결과물들이다. 2000년대의 음악을 주로 듣고 자란 세대에게도 크게 다르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니 접근성이 남다르게 다가가는 것이다. 꽤나 긴 시간동안 단절의 아픔을 겪지 않은 연속성의 지금의 대세를 가져왔다고 봐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바로 호기심에 대한 담론이다. 최근 트렌드에 길들여지며 자라온 세대들에게 90년대의 향수는 새로운 호기심과 신기함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이런 음악들도 있었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클릭을 부르고, 검색이 편해진 지금은 과거의 디스코그래피까지 찾아보기도 쉽다. 똑같은 음악이 난무하는 요즘, 음악에 대한 일말의 호기심이 90년대로 시계추를 돌렸다고 볼 수 있다. 맨날 비슷한 음악만 듣던 세대들이 갑자기 툭 튀어나온 과거형 음악을 듣는다. 신선함 면에서 호기심이 솟는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트렌드가 건강하게 이어지려면 무엇보다도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업들이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이다. 모방이 아니라 모티프로 이어질 수 있게 다양한 시도들이 이어져야 하고, 90년대의 느낌을 바탕으로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아이디어들이 지속적으로 쏟아져 나와야 한다. 음악은 결론적으로 현재성이 있어야 한다. 특히나 이런 트렌드는 과거에 매몰되면 따라하기와 모방이 판을 치는 형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기획 단계에서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다.

다양한 장르가 시도되었던 90년대의 유산을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방법도 고민해 봐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은 90년대 만큼 다양한 음악들이 나오지 않고 있다. 트렌드에 치중하는 음악들이 주로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고,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면 그만큼 소외되는 현상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런 때 우리에게 좋은 지혜를 줄 수 있는 멘토는 바로 90년대 음악이다. 다양한 장르가 혼재하면서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던 이 때를 추억하는 데서 끝날 게 아니라 지금의 편중 현상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 참고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필자가 봐도 90년대는 참 아름다운 음악적 시기였다. 지금 우리가 90년대를 바라보고 있는 건 어쩌면 현재에 대한 아쉬움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때의 강점들을 현대적 관점으로 다시 받아들인다면 가요계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일들의 해결책을 발견할 수 있진 않을까? 따뜻했던 그때의 기억을 다시 되살려 본다.

칼럼니스트 노준영 nohy@naver.com

[사진=CJ E&M, 울림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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