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연극 <가을반딧불이> 관객과의 대화

[엔터미디어=공연전문기자 정다훈] 지난 7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오른 정의신 작가의 <가을반딧불이>는 소시민 혹은 사회적으로는 루저인 사람들이 새로운 가족으로 탄생하는 좌충우돌 스토리를 담고 있다. 2001년 일본에서 초연되고, 지난 해 한국에서 초연됐다. 초연 작으로 김제훈 연출은 2013 제6회 대한민국 연극 대상 신인 연출상을 수상했다.

탈 가족화, 가족해체 시대에 따스한 메시지를 던지는 연극이다. 변두리에서 보트선착장을 배경으로 전혀 정상적인 가정 구성원이라고 할 수 없는 이들이 함께 얽히게 되면서 갈등도 겪지만, 어느새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함께 만드는 구성원들이 된다.

여행을 다녀 온 듯 마음의 여유를 찾게 하는 연극 <가을반딧불이>재연은 배우 이항나 송인경(마쓰미), 김정호(슈헤이), 이도엽 배성우(사토시), 김 한(분페이), 유승락 이현응(다모쓰)로 출연한다. 대학로 공연 이후엔 오는 6월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앙코르 공연이 올라갈 예정이다.

재연을 올리면서 김제훈 연출은 “초연이 소동극의 유쾌한 기운이 느껴졌다면 재연은 등장 인물들 각자의 아픔을 조금 더 가져가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극으로 만들었다”고 전했다. 9일 오후 연극 <가을반딧불이> 김제훈 연출가와 출연 배우들이 관객과의 대화시간을 가졌다.

■ 김정호 슈헤이 “누구나 상처를 인정하는 순간 다른 사람이 된다”

-반딧불이는 여름에 볼 수 있는데, 왜 제목이 <가을반딧불이>인가?
김정호: 죽은 아버지의 혼이 나타나서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모쓰 역 이현응 배우의 대사에 그 의미가 잘 나타나 있다.
이현응:(대사를 낭독했다)가을 반딧불이가 있다고 들어본 적이 있다……죽은 나무 사이를 오가는 반딧불이를 실제로 보았다면……그건 조금 엉뚱하고, ……조금 예쁘고……조금 구슬퍼 보일 지도 모른다. ……캄캄한 연못 위에서 훨훨 떠다니며 빛나는 것이, 그 가을 반딧불인지……아니면 아버지의 영혼인지, 잘 모르겠지만……내게는 왠지 작게 손을 흔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다모쓰의 삼촌 슈헤이는 상처 있는 마쓰미와 사토시를 다 받아준다. 그 이유는?
김정호: 슈헤이의 트라우마 때문이 아닐까. 누구나 인정하고 싫은 생각하고 싶지 않은 상처가 있고 개인적 아픔이 있다. 하지만 그 상처를 인정하는 순간 다른 사람이 된다. 슈헤이는 가장 사랑했던 사람을 잃어버리고 나서 그 사람이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같이 있을 땐 불편하다고 느끼고 소중함을 몰랐던거다.

슈헤이에게도 남 모르는 상처가 있다. 슈헤이는 일본이 한창 전쟁이었을 때, 다리에 총을 맞아 절둑거리게 된다. 안 되는 일은 모두 다리 탓으로 돌리고, 이 세상을 저주하면서 사는 인물이다. 같이 살았던 못생긴 여자가 죽으면서 ‘내가 먼저 갈 걸 알았으면 아이라도 낳을 걸’이란 말을 했는데 그 말이 계속 슈헤이의 가슴에 남아있게 된다. 결국 그 말이 또 다른 상처와 아픔이 있는 마쓰미와 사토시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든다.

-사토시는 극도로 사실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이도엽 본인인지 연기인지 헷갈릴 정도다.
이도엽: 극도로 사실적이었나? 사실 그 동안 주로 <햄릿>같은 고전 작품에 출연했다. 지금까지 해 왔던 역할과 다른 사토시 역을 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두 시즌을 함께 하면서 사토시 역에 빙의 된 건 같다. 사람들 마음 속엔 유쾌함과 심오함이 모두 들어있다. 그런데 사토시 역을 맡아 내 안의 유쾌함을 꺼내놓게 됐다. 제 안에 그런 유쾌함이 있는 것 같다.

-40대 사토는 가족을 위해 일하지만 버림받는다. 이도엽 개인의 20대 30대를 돌아본다면
이도엽: (공연 내내 꼬마 아이(이도엽 배우의 아들)의 ‘까르르’ 웃음 소리가 즐거운 음향처럼 들려왔다)사실 오늘 공연에 어머니랑 아들이 왔다. 잔혹한 세상에서, 대한민국에서 한 가족의 가장으로 살아남기 위해 살다보면, 가정은 뒷전이 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어쩔 수 없이 말이다. 이 작품으로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됐다.

-<가을 반딧불이>의 그 뒷이야기는 어떻게 될까. 사토시는 슈헤이의 집에서 계속 살게 될까
이도엽: 말로는 곧 나간다고 하지만, 사토시가 아닌 다모쓰가 취직하고, 사토시는 여기 있어야 한다.

-일본 관객 분이 객석에 있는데 한국 <가을반딧불이>를 본 소감은 어떤가
리에코상: 일본에서 올라간 <가을반딧불이>도 봤는데 배우와 연출이 다르니까 그 때와 느낌이 다르다. 특히 일본 사토시 역 배우는 조그맣고 약해 보이는 체격의 배우가 했는데 한국 사토시는 마치 분페이 역 배우와 비슷한 큰 체격의 배우가 맡아서 새로웠다.
이도엽: 한국 사토시가 더 좋다는 말이죠.(웃음)

-영화 <변호인>의 송강호 부인 역으로 출연한 이항나 배우는 <가을 반딧불이> 초연에 이어 다시 한번 마쓰미 역을 맡았다. 마쓰미는 왜 슈헤이의 집으로 오게 됐나
이항나: 마쓰미는 사기 결혼을 당하고 홀로 바를 운영하고 있는 여인이다. 그런데 임신한 걸 알게 된다. 그 사이 슈짱(슈헤이)이 많이 보호 해줬을거다. 농담으로 ‘힘들면 우리집에 올래?’ 라고 말했을건데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슈짱 집으로 온다. 그래서 모든 사람을 당황시키는 인물이다.

-<가을반딧불이>에서 갈등을 촉발하는 인물이자 봉입하는 인물이기도 한 마쓰미는
단 한명의 여자 역할이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이항나: 정의신 작가가 남자 배우의 연기를 더 좋아하나? 자세한 이유는 정의신 선생님께 직접 물어봐야 할 것 같다.



■ 김한 분페이 “아들이 아빠가 알지 못하는 서른 이후의 인생을 잘 살았으면”

-분페이는 의상도 그렇고 80년대 일본 양아치 느낌으로 출연한다. 왜 그렇게 표현했나
김한: 분페이가 살아있을 때 스타일이 그랬을거라 생각했다. 분페이는 아들인 다모쓰만 볼 수 있는 귀신이다. 아들을 빼고 살아있는 사람들은 분페이를 보지 못하는데 분페이는 그들을 볼 수 있다.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느낌이랄까. 어떨 땐 관찰자로서 관객의 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분페이는 슈크림 빵을 사오겠다고 말한 뒤 아들과 헤어진다. 그리고 21년 만에 , 아들이 30세 되는 날 슈크림 빵을 들고 찾아 와 약속을 지킨다. 왜 이제야 들고 오는가
김한: 분페이는 서른 살에 죽었으니까 서른 살 이후의 세상을 모른다. 아들인 다모쓰는 아빠가 알지 못하는 인생을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그런 의미로 찾아온다.(아버지 분페이로서의 슬픈 감정이 북받쳐 울컥하더니 다시 장난스럽게)갱년기라서 그런가 보다.

-분페이는 등장할 때 체조를 하는 데 그 이유는 뭔가
김한: 처음에 할 때는 잘 몰라서 ‘이 체조를 왜 할까?’계속 고민했다. 그러다 분페이는 폐병으로 죽었다는 사실에 착안, 죽은 귀신이지만 더 건강하고 싶은 마음으로 그렇게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또 다모쓰에게 (아빠와 달리)건강하라는 의미로 그렇게 하는 거라고 봤다.

(다시 한 번 울컥하는 감정을 내비친 김한 배우를 보고) 이도엽: (유머스럽게)불경기라서 그런다.

■ 이현응 “실제로 슈크림 빵엔 아버지와의 추억이 들어있다”

-다모쓰는 자신의 집에 다른 이들이 들어오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그 이유는 뭔가
이현응: 다모쓰는 내 유일한 사람인 슈헤이 삼촌을 다른 사람들에게 빼앗길까봐 그런다. 외부인들이 들어와 날 내치지 않을까 그런 두려움이 있다.

-다모쓰는 왜 성인이 되었음에도 보트선착장을 떠나지 않고 있나
이현응: 초연 때는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는 귀신 아버지도 보고 해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살짝 정신이 나갔나? 란 생각도 들었다. 올해 공연하면서 든 생각은 아버지를 계속 기다리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 계속 이 공간에 머무르는 것 같다.

-그렇게 만나고 싶었던 아버지를 만난 뒤에도 계속 여기서 산다.
이현응: 복잡하게 생각하는 편은 아닌데, 삼촌 때문이지 않을까. 다모쓰는 삼촌의 공간은 내 공간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계속 이 곳에 산다.

-다모쓰의 아픔과 비슷한 아픔 혹은 경험이 있나
이현응: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부모님과의 갈등은 한번 쯤 있었을거다. 아들이라면 어머니보다 아버지와의 갈등이 더 많지 않나. 그런 점에서 공감이 간다. 또 공교롭게도 극중에 나오는 슈크림 빵과 관련해 추억이 있다. 내가 아이였고 아버지가 한참 젊으셨을 때 퇴근 후 슈크림 빵을 군것질거리로 사오셨다. 마지막 떨이로 사오는 슈크림 빵이라 속 크림 뿐 아니라 겉에 빵까지 눅눅해져있는 슈크림 빵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눅눅한 슈크림 빵을 먹어서 그런지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고급스런 슈크림 빵이 오히려 맛이 없다고 느껴진다. 개인적인 이런 경험들이 <가을반딧불이>란 극과 맞닿아 있어서 특별하다.

■ “‘가을반딧불이’는 같이 밥을 먹으면서 이어진 가족들의 이야기”

-극중에서 배우들이 슈크림 빵, 찰떡, 전골, 메밀 국수 등 직접 먹는 장면이 많다. 실제 음식이 극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
김제훈: 정의신 작가의 의도가 같이 밥을 먹고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였다. 관객이 이 공간에 같이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하고 싶었다. 마쓰미의 대사에도 있지만 ‘식구를 위해서 음식을 준비할 수 있는 건 행복한 일이다’ 그게 작가의 의도이기 때문에 연출로서 충실히 전달하고자 했다.

김정호: 실제로 저희들이 먹는 음식이 간도 잘 맞고 정말 맛있다. 연출이 요리사라 직접 만든 음식들이 더 맛있다. 그리고 모르는 사람과 같이 밥을 먹으면 친해지게 된다. 다모쓰도 처음엔 모르는 사람과는 같이 밥을 안 먹겠다고 하지만, 나중에 같이 밥을 먹으면서 그들을 받아들이게 된다.

-김제훈 연출은 <아시안스위트>,<겨울선인장>,<가을반딧불이> 이렇게 정의신 작품을 세 번이나 선택했다. 그 이유와 <가을반딧불이> 초연을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재연을 빨리 올릴 수 있었던 이유는?
김제훈: 정의신 작가의 작품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인간미가 느껴지는 작품을 좋아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낄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 루저들의 이야기라 공감이 갔다. 연출이자 제작자라 운영하던 작은 가게를 팔아 자금을 조달했다. 그건 개인적인 사정이고, 작품이 좋아 빠른 시일 내에 다시 한번 올리고 싶었다.

-<가을반딧불이>는 일본 버플경제의 몰락에 따른 가족이 해체되는 그 시기 이야기이다. 일본 작품을 한국으로 옮겨오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김정호: ‘일본작품이다. 한국작품이다’ 그런 차이보다는 가족의 해체는 우리나라에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가족이라는 개념이 붕괴되어 가고 있는 현시대를, ‘가족’이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피를 나누진 않았지만 서로 만나 이해하고 같이 밥을 먹으면서 이룬 가족이다. 그런 면에서 이 시대를 이야기하는 작품이라고 봤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극단 조은 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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