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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대화의 출발점이 된 ‘난학사시’
기사입력 :[ 2014-04-28 11:26 ]


[번역과 근대2] ‘난학사시’는 번역을 넘는 변혁의 불씨였다

[엔터미디어=백우진의 잡학시대] (외국어 사전 없이 번역에 도전한다면[번역과 근대1]에서 계속) 스기타 겐파쿠(杉田玄白․1733~1817)가 ‘동지들’과 <타펠 아나토미아> 번역에 착수한 때는 1771년이었다. 우리나라는 영조(1694~1776) 말기였다.

스기타는 18세 때 의학을 익히기로 결심하고 부친이 사망한 1771(37세)까지 막부 의관 니시 겐테스(西玄哲) 문하를 비롯해 여러 곳에서 배웠다. 그는 의술을 펼치며 유복하게 지냈고 84세까지 장수했다.

스키타의 동지는 마에노 료타쿠(前野良澤)와 나카가와 준안(中川淳庵)이었다. 마에노가 셋 가운데 네덜란드어를 가장 많이 배웠지만, 그 실력이라는 게 단어 약 700개를 알고 문장을 대략 파악하는 정도였다. 스기타는 백지 상태에서 출발했다.

이들은 단어를 스스로 깨치고 사전을 만들어가면서 번역에 매진한다. 스기타는 verheven이라는 낱말을 다음과 같이 예로 든다.

“또 어느 날에는 ‘코 부분이 verheven되어 있는’이라는 부분에서 verheven이라는 단어를 몰라 아무리 노력해도 해석할 수가 없었다. 물론 이 무렵에는 사전이라는 것이 없었다. 료타쿠가 나가사키에서 구입한 간략한 소책자를 보면 verheven의 의미를 설명하는 부분에 ‘나뭇가지를 자르고 남으면 그 흔적이 verheven된다. 또한 정원을 청소하면 먼지와 흙이 모여 verheven이 된다’고 나와 있었다.

이것이 대체 어떤 의미인지 몰라 예문을 보고 의미를 끌어다 맞추려고 해보았으나 알기가 어려웠다. 그 때 내 머릿속에 나뭇가지를 자른 흔적이 회복돼 그 부분이 높아지고 청소를 해서 먼지가 쌓이면 그 또한 높아진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코는 얼굴 중앙에 툭 튀어나와 있으므로 verheven은 높다는 뜻이 틀림없다.”

스기타가 <난학사시(蘭學事始)>에서 들려준 일화다. 난학이란 네덜란드어와 그 언어를 통한 서양의 과학기술 공부를 가리킨다. 사시는 글자 그대로 일의 시작을 뜻한다. 난학이 일본 사회에 널리 퍼지자 자신의 공이라고 내세우는 사람이 많아졌고 그러자 스기타가 주위의 권유를 받아 난학의 출발점이 된 <타펠 아나토미아> 번역 과정을 적어 1814년에 남긴 책이 <난학사시>다.

누구보다 <난학사시>에 감동한 인물이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1835~1901)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누구인가. 일본의 최고액권 만엔짜리 지폐에 살아있는 인물이다. <서양사정>이라는 책을 저술해 근대화의 방향을 열어보이고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일본이 그 쪽으로 나가도록 이끈 지도자다. 그는 김옥균과 박영효 같은 조선 개화파의 스승이었다.

후쿠자와는 21세부터 26세까지 5년 동안 난학에 매진한 뒤 영학(英學)에 뛰어든다. 주위의 만류와 비웃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일본에서 최초로 영어로 된 문명을 향해 고독한 항해를 시작한다. 물론 사전은커녕 가르침을 받을 사람 하나 없었다. 후쿠자와는 스기타의 ‘대항해기(大航海記)’를 다음과 같이 읽었다고 술회한다.

“우리들은 선배들의 고통을 직접 눈으로 보는 듯했고, 그 강단과 용기에 놀랐으며, 그 성심성의에 감동해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나는 별세한 미쓰쿠리 슈헤이와 교제가 가장 깊었는데, 당시 이 사본을 둘이 앉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부분에 이르면 우리 둘은 또 다시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 할 말을 잊었습니다. 더 이상 책을 읽을 수 없었습니다. (<난학사시> 재판 서문)”

‘앞에서 언급한 부분’이란 다음 구절을 가리킨다.

“실로 방향타 없는 배로 망망대해를 항해했다. 정박할 항구는 없었다. 단지 망연자실할 뿐이다.”

개인적인 경험이 겹쳐진 것뿐이었다면 후쿠자와가 <난학사시>에 그토록 감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후쿠자와는 개인이 아니라 일본인으로서 <난학사시>에 열광했다. 그것은 이 책이 전한 <타펠 아나토미아> 번역작업이 일본 근대화의 출발점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난학사시>는 번역을 뛰어넘는 번혁의 불씨였다. ([번역과 근대3]에 계속)

칼럼니스트 백우진 <안티이코노믹스><글은 논리다> 저자 smitten@naver.com

[사진=스기타 겐파쿠 초상화(1812년). 와세다대학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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