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사랑’, 황정음보다 정웅인이 더 보이는 까닭

[엔터미디어=이만수 기자] 역시 나연숙 작가의 선은 굵다. <에덴의 동쪽> 같은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그녀의 작품은 남자들, 그것도 형제의 이야기가 많다. 그리고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시대의 아픔과 엮어진 복수극이다. 이번 SBS 주말드라마 <끝없는 사랑>도 마찬가지다. 서인애(황정음)를 사이에 둔 한광훈(류수영)과 한광철(정경호)의 미묘한 삼각관계, 엘리트 출신 형과 건달 같은 삶을 살아가는 동생. 그리고 어느 날 당한 부모의 죽음과 복수극.

이런 드라마는 새로운 이야기의 묘미를 준다기보다는 충실한 공식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풀어나가는가 하는 스토리텔링의 힘에 성패가 달려 있다. 첫 회에 이미 거의 모든 이야기의 발화점은 만들어진 상태다. 어린 시절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서인애의 어머니, 그렇게 해서 한광훈과 한광철의 집에 얹혀살게 된 서인애, 그러던 어느 날 데모 학생들을 숨겨준 서인애와 한광철 때문에 죽음을 맞게 된 아버지...

이제 뿔뿔이 흩어지게 될 가족이 겪을 아픔이 등장할 것이고, 그렇게 성장한 이들이 모여 아버지의 죽음(서인애의 경우엔 어머니의 죽음과 연결된)의 원인을 파헤치고 그 복수를 해나가는 과정이 그려질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강력한 악역의 힘이다. 복수극의 한 축으로서 그 악역이 제대로 서지 않으면 드라마는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끝없는 사랑>에 등장한 박영태(정웅인)가 짧은 출연에도 주목되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미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주었던 정웅인은 우리에게는 여전히 민준국이라는 이름으로 각인되어 있는 연기자다. 과거에는 우스꽝스런 시트콤 연기를 보여줬던 그는 어느 새 악역의 대명사 같은 연기변신을 보여주고 있다.

강렬한 눈빛과 조금은 야비하게 보이는 입매를 살짝 뒤트는 것만으로도 정웅인의 악역 존재감은 확실한 느낌을 만들어낸다. 이 절대적인 악역의 힘을 활용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단순 선악 구도의 드라마가 갖는 식상함으로 흐를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정웅인처럼 그것을 효과적으로 연기해낼 수만 있다면 의외의 재미를 선사할 수도 있다.



한편 <비밀>에서 주목할 연기를 선보였던 황정음은 첫 회에서는 그다지 인상 깊은 캐릭터의 면면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그것은 첫 회에서 그녀가 연기한 서인애라는 존재가 일종의 민폐 캐릭터처럼 그려졌기 때문이다. 더부살이 하는 한광철의 집이 하루아침에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 데는 서인애의 좌충우돌이 그 역할을 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드라마 설정 상 서인애라는 인물에게 죄책감과 고통을 부여함으로써 향후 복수극에서의 성장을 보여주려는 의도다. 하지만 어딘지 어색하게 느껴지는 건 때론 주먹을 쓸 만큼 남자 같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멜로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잘 어우러지지 못한 탓이다. 여러모로 캐릭터의 일관성 문제 때문에 서인애 캐릭터는 애매한 느낌을 주고 있다.

어쨌든 <끝없는 사랑>의 이야기는 서인애의 복수극이 그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 일단 그 절대적 악역으로서의 박영태라는 캐릭터의 존재감은 정웅인의 등장만으로도 확실해졌다. 하지만 아직까지 서인애의 캐릭터의 매력은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 <비밀>의 강유정이란 캐릭터가 그 모성애라는 공감대로 시청자들을 몰입시켰듯이 <끝없는 사랑>의 서인애는 우선 이 캐릭터의 공감대를 어떻게 끌고 갈 것인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만수 기자 leems@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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