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 정작 드라마는 유혹적이지 않은 이유

[엔터미디어=이만수 기자] 사흘에 10억. SBS 월화드라마 <유혹>이 내놓은 화두는 자못 자극적이다. 다만 이런 설정의 스토리가 새로운 건 아니다. 이미 과거 데미 무어,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은밀한 유혹>이라는 영화가 이런 설정의 이야기를 내놓은 바 있다. 돈의 유혹 앞에 사랑은 온전할 수 있을까.

세영(최지우)이 10억을 주고 사흘 간 석훈(권상우)과 있었다는 사실은 홍주(박하선)에게 갖가지 오해와 불신을 만들고, 그 와중에 우연히 만난 민우(이정진)의 아이 로이와의 정 때문에 홍주는 그 아이의 보모가 된다. 모든 게 거래관계라 생각했던 석훈은 이상하게 세영에게 자꾸 끌리고, 석훈과 관계가 자꾸 엇나가는 홍주는 로이에 집착하다 그 옆에 있는 민우와도 점점 가까워진다.

사실 이런 얽히고설킨 관계의 이야기는 너무 전형적이다. 그래서 ‘사흘에 10억’이라는 파격적인 장치를 빼놓고 보면 남녀가 치정으로 치닫는 아침드라마를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것이 만들어낼 파국을 이미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예감하고 있다. 석훈과 세영은 점점 가까워질 것이고, 홍주에게 민우는 점점 다가올 것이다. 그 사이에 석훈과 홍주의 관계는 점점 복잡한 갈등 속으로 빠져 들어갈 것이다.

이렇게 전형적인 소재에 어떻게 굴러갈 것인지를 뻔히 아는 드라마가 그 예상에 맞게 척척 움직이는 것만큼 흥미를 떨어뜨리는 건 없다. 그것은 이미 전개될 방향을 다 알면서도 마치 마인드 게임 하듯이 드라마를 시청하는 아침드라마나 일일드라마 시청 패턴이라면 상관없겠지만 이건 무언가 새로운 걸 기대하게 되는 월화 드라마다. 뻔한 이야기에 변주 없는 전개는 드라마를 무미건조하게 만든다.

게다가 찬찬히 상황들을 떠올려보면 이들이 왜 이러는지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면이 있다. 즉 세영은 왜 선뜻 사흘에 10억을 석훈에게 제시했는지가 불분명하고(관계를 모래성에 비유해 돈앞에 얼마나 무력할 수 있는가를 시험하기 위해서라지만 이게 설득력이 있는지 모르겠다), 돌아온 석훈이 왜 세영의 언저리를 계속 전전하는지도 이해하기 쉽지 않다. 또 석훈에게 화가 나고 로이와의 정이 있다고 해도 홍주가 민우의 별장에서 로이와 함께 입주해 지낸다는 것도 상식적이지 않다.



드라마는 이들의 섬세하고 세밀한 감정변화를 포착해 시청자들에게 공감시키기보다는 주인공들의 대사를 통해서 이를 설명한다.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하고 홍주가 묻는 것보다는 그녀의 힘겨운 감정을 좀 더 효과적인 다른 표현으로 담아냈다면 어땠을까. 좀체 절제되지 못한 홍주의 토로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감정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아무 일도 없었는데 오해와 불신에 사로잡혀 계속 짜증을 내는 인물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미 가야할 방향이 정해져 있고, 그것을 시청자들 역시 예감한다고 해서, 작가가 홍주가 집을 나와 민우의 별장에서 지내고, 그러다 결국 오해가 깊어져 석훈과 별거하게 되며, 그 별거 기간에 다시 세영을 찾아와 “자신을 다시 사라”고 하는 것은 너무 안이한 전개다. 흐름이 있다고 해도 시청자들이 그 감정의 변화를 공감시킬 수 있을 만한 섬세한 표현이 따르지 않는다면 너무 기계적이고 인위적인 느낌을 줄 수밖에 없다.

<유혹>이라는 제목의 드라마가 정작 유혹적이지 않은 건 단순한 스토리 전개에만 머물러 있을 뿐 주인공들의 심리와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정서적인 울림과 공감이 없을 때 <유혹>은 그저 평범한 치정극이 될 위험성이 있다. <유혹>은 과연 진짜 유혹적인 드라마로 거듭날 수 있을까.

이만수 기자 leems@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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