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크릿가든’ 김주원은 영혼을 잠식한다



[배국남의 핫트렌드] 선풍적인 인기를 끈 드라마‘시크릿 가든’을 보면서 상상해 본다. 만약 극중 김주원(현빈)이 재벌 2세가 아니었다면 ‘주원 앓이’가 가능했을까. 적지 않은 시청자들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드라마 작가들의 상당수 역시 이 부분에 공감을 표한다.

주원이 시청자에게 관심을 끈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자본주의에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 돈을 쥐고 있는 재벌 2세라는 점이다. ‘돈이면 다 된다’는 천민자본주의가 굳건하게 자리 잡은 2011년,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재벌 2세’는 사랑과 행복의 보증수표이며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전가의 보도로 인식되고 있다.

천민자본주의의 강화와 재벌 2세에 대한 잘못된 인식 심화는 안방을 강타하고 있는 드라마도 한몫 단단히 하고 있다. 근래 들어 우리 드라마에서 재벌 2세가 주인공으로 나오지 않는 드라마를 찾기란 힘들다.

“한국에는 재벌 2세가 정말 많은가 봐요. 드라마에 남자 주인공은 모두 재벌2세인 것을 보면요. 그런데 한국에 살다보니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런데 드라마에만 유독 재벌2세가 많아요”라는 한 외국인 시청자의 질문처럼 현재 안방 시청자와 만나고 있는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이 대부분 재벌2세다.

최근 끝났거나 요즘 방송되고 있는 드라마 중 KBS 드라마 ‘웃어라 동해야’, MBC ‘폭풍의 연인’등 일일극에서부터 MBC ‘글로리아’‘욕망의 불꽃’SBS ‘시크릿 가든’등 주말극, KBS‘드림하이’, MBC ‘역전의 여왕’, ‘마이 프린세스’등 이 많은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이 재벌 2세다. 근래들어 우리 안방 드라마의 현황은 이랬다.

재벌 2세가 나오지 않으면 드라마가 아니라고 할 정도로 재벌 2세는 드라마의 철옹성 같은 공식이 됐다. 독창성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드라마라는 창작의 세계에서 해도 너무 과한 ‘재벌 2세’ 주인공 기용이다.

뿐만 아니다. 재벌2세의 양태도 매우 획일적이다.‘파리의 연인’‘꽃보다 남자’ ‘시크릿 가든’등 근래 들어 큰 인기를 누린 수많은 드라마에서 재벌 2세의 남자 주인공의 성격과 모습은 너무 흡사한 획일성을 띠고 있다. 제작진이 작심하고 창의성을 버린 채 재벌2세 캐릭터 공식에 맞추려는 듯 천편일률적이다.

처음 만날 때 싸가지 없는 재벌 2세이지만 드라마가 전개되면 집안의 거센 반대를 무릎 쓰고 계급과 신분을 뛰어넘으며 가난한 여성과 진정한 사랑을 일궈가는 남성으로 변한다. 한국사회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발휘하는 돈을 엄청나게 갖고 있겠다 여기에 진실한 사랑까지 하는 사람으로 재벌2세가 그려지니 시청자는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같은 재벌 2세 드라마의 홍수와 획일적인 재벌 2세의 스테레오타입식의 전형성은 시청자의 인식과 의식 그리고 영혼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현실에서 돈 많고 뛰어난 외모에다 진정한 사랑을 하는 재벌2세를 만나는 신데렐라가 되는 것을 꿈으로 이야기하는 초등학생과 부유층 남성을 만나는데 자신의 월급을 전부 투자하는 20대 여성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뿐인가. 명품 대여점을 찾아 명품 의상을 빌리는 이유에 대해 방송에서“명품 옷을 입고 나이트클럽에 가 돈 많은 남자 만나서 결혼하면 남는 장사”라고 거침없이 말하는 여성이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한 여성은 TV에 나와 말했다. 사랑을 해도 번듯한 차와 집이 없으면 결혼하지 않겠다고.

여기서 더 나가는 사람도 있다. 돈으로 대변되는 물화된 조건을 갖추지 못한 남자는 루저로 전락시키는 여성들이다. 이제 이런 욕망의 여성들을 노리고 등을 치는 재벌 2세 사칭하는 사람들까지 활개치고 있는 세상이다.



이 같은 현실 속 우리의 모습과 재벌2세가 넘쳐나는 드라마와 전혀 상관없는 것일까. ‘드라마는 픽션이니 현실과 상관없다’‘드라마는 드라마일뿐 너무 의미부여하지 말자’‘픽션인 드라마는 현실 속 시청자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라는 참 편하고 안이한 생각일랑 버려야한다.

물론 드라마는 시청자의 지적수준, 교육정도, 경험, 연령, 가치관, 성별, 지역, 빈부계층 등에 따라 드라마가 시청자에게 미치는 영향의 정도가 다르고 드라마 텍스트 해독도 다양하다. 뿐만 아니라 수용자가 드라마를 보고 해독을 한 뒤 의미 만드는 것(Making Meaning) 또한 큰 차이가 있다.

분명한 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드라마는 현실 속 사람들 즉 드라마 수용자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드라마를 전복적으로 비판하며 수용하는 사람도 있지만 현실을 드라마 속 모습으로 재단하는 수용자까지 있다.

기 드보르(Guy Devord)의 지적처럼 우리는 현재 대중매체에 의해 구축된 스펙터클의 사회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삶의 직접적인 경험, 정서 그리고 관계를 망각하도록 길들여지며, 대중매체에서 디자인한 이미지들(상징화된 세계)을 소비하며 살아가고 더 나나가 대중매체의 상징화된 세계가 현실의 척도가 되며 인식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드라마가 디자인한 세계를 소비하며 살아가고 그 드라마 속 세계가 인식의 근간을 이루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한마디로 드라마가 우리의 영혼을 잠식하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돈과 외모 등 물화된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고 거기에 사랑에 목숨 거는 드라마 속 재벌 2세는 어느 사이 우리의 인식 속에 깊이 자리 잡았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재벌2세 같은 물화적 토대를 갖추지 못한 남자들을 루저로 전락시키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까지 하는 까칠한 재벌 2세 ‘시크릿 가든’의 김주원이 많은 사람들의 눈과 가슴을 부여잡으며 영혼을 왕성하게 잠식하고 있을 때 재벌 2세 최모씨는 회사 인수·합병 과정에서 고용승계를 해 주지 않는다며 1인 시위 등을 한 화물차 운전사 유모(52)씨를 회사 사무실로 불러 야구방망이로 10여 차례 때리고 ‘매값’으로 2000만원을 건넨 혐의가 있다는 시사고발 프로그램이 방송됐다. 참 묘한 드라마와 현실의 이중적 풍경이 연출됐다.


칼럼니스트 배국남


[사진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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