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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시봉’의 느닷없는 신파가 불편한 사람들에게
기사입력 :[ 2015-02-13 16:00 ]


‘쎄시봉’, 이건 그냥 단순한 추억 팔이가 아니다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쎄시봉>은 6-70년대 청년문화의 산실이었던 음악감상실 ‘쎄시봉’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멜로영화이다. 영화는 지금은 사라진 ‘쎄시봉’의 모습을 복원해내고, 그곳에서 활동했던 송창식, 윤형주, 이장희, 조영남 등의 음악을 들려준다. 영화는 ‘트윈 폴리오’의 전신이 ‘쎄시봉 트리오’였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허구의 이야기를 끼워 넣는다.

송창식, 윤형주, 이익균으로 구성된 ‘쎄시봉 트리오’는 1967년 10월에 결성된 뒤 이익균의 갑작스러운 군입대로 불과 몇 달 만에 해체되어버린다. 얼마 뒤 송창식, 윤형주의 ‘트윈 폴리오’가 방송에 데뷔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다. 제3의 인물인 이익균에 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중저음 보이스였다는 점, 부산상고 출신의 대학생이었다는 점, 이후 토목 관련 회사원으로 살아간다는 점 외에는. 영화는 실존인물 이익균의 자리에 오근태라는 가상의 인물을 집어넣고, 그가 사랑하는 민자영이라는 인물도 그려 넣는다. 영화는 오근태를 중심으로 ‘쎄시봉 트리오’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쎄시봉의 뮤즈’였던 민자영과의 사랑을 그린다.

◆ 왜 주저앉아 우냐고? 그게 핵심인데

여기까지는 이견이 없다. 누구나 인정하듯이 주크박스 뮤지컬처럼 <쎄시봉>이 들려주는 ‘트윈 폴리오’의 히트곡들은 감미로우며, 백 대 일이 넘는 오디션을 뚫고 뽑힌 강하늘(윤형주 역)과 조복래(송창식 역)가 들려주는 화음은 기대 이상의 감흥을 안긴다. 짧게 등장한 김인권(조영남 역)의 모창도 인상적이다. 또한 원곡과 달리 슬픈 가사를 지닌 번안 곡 <웨딩 케잌>의 가사를 중요한 테마로 활용하는 솜씨도 능숙하다. 음악 판권비로만 제작비의 10%인 6억 원을 썼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쎄시봉>은 음악영화로서 훌륭한 성취를 보여준다.

또한 영화는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의 각본을 쓰고 <광식이 동생 광태>를 만들었던 김현석 감독의 멜로물답게 짝사랑하는 남자의 순정과 안타까운 실패를 담는다. 영화가 담은 순애보와 음악은 관객들을 풋풋했던 청춘과 아련한 추억으로 인도하기에 충분하다. 영화에 대한 평가가 갈리는 것은 그 이후이다. 오근태의 사랑이 깨지는 과정이 느닷없이 그려졌다거나, 관습적으로 시대상을 버무렸다거나, 이후의 재회를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그리고 있다는 것이 이 영화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영화의 주제와 감독의 의도를 도외시한 결과이다. 요컨대 영화는 낭만과 추억에 젖어들다가 그것이 깨지는 과정과 상흔을 드러내는데, 이는 감독이 의도한 것으로 영화의 주제를 담고 있다.

김현석 감독은 인터뷰에서 <쎄시봉>이 중년이 된 오근태가 주저앉아 우는 뒷모습에서 시작된 영화이며, 이를 연기할 김윤석을 가장 먼저 캐스팅했다는 사실을 여러 번 밝혔다. 김윤석 외에도 중년을 연기할 배우들을 먼저 캐스팅하고 20대를 연기할 배우들을 나중에 캐스팅 했다는 것도 밝혔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영화의 방점이 누구나 즐겁게 감상하는 ‘6-70년대의 낭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견이 갈리는 ‘90년대의 회한’에 있다는 뜻이다. 즉 영화의 핵심이 왜 오근태는 갑자기 도망쳤으며, 20년 만에 우연히 만난 민자영을 왜 차갑게 뿌리쳤으며, 왜 주저앉아 우는가에 있다. 영화의 핵심이 그 시절을 추억하고 당대의 청춘들을 위무하는 데 있다고 보는 입장에서는 불필요하거나 불편한 장면으로 인식될 영화의 후반부가 사실은 감독의 의도와 영화의 주제를 함축한 대목인 셈이다.



◆ 추억 팔이가 아니라, 영혼에 새겨진 상흔을 되새기는 영화

‘쎄시봉’은 6-70년대 청년문화의 아이콘이자, 5년 전 TV토크쇼에 ‘쎄시봉’의 친구들이 출연한 이후 해당 세대들은 물론이고 젊은 세대들에게까지 반향을 일으켰던 복고열풍의 진원지이다. 수년간 복고가 대중문화의 대세로 자리 잡았고, <써니><응답하라 1994><건축학개론><무한도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등이 90년대를 소환하는 이때에, 6-70년대 복고물인 <쎄시봉>을 어찌 보아야 할까. 그저 향수를 통해 세대를 위무하거나 상업적인 단물을 빠는 의도라면 구려도 너무 구린 게 아닌가. 하지만 <쎄시봉>은 그 시절 청춘이 이렇게 아름다웠노라 며 ‘세대부심’에 젖어드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낭만과 결부되어 있는 그 시대의 상흔을 미묘한 가담자의 관점에서 드러내는 영화이다.

감독은 전작 <스카우트>를 통해 광주민주화운동을 보여주며, 폭력에 동원된 자의 자의식과 시대의 폭력으로 인해 파탄난 관계의 속살을 드러내었다. <쎄시봉> 역시 당대를 가로지르는 폭압을 드러낸다. 그것도 단순히 통행금지나 미니스커트와 장발단속 등을 풍속사적으로 스케치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가공권력으로 인해 깊은 내상을 입은 청춘의 영혼을 보여준다. 영화는 짝사랑하는 남자의 비틀린 자의식을 국가폭력에 비겁하게 굴복하였던 자괴감과 뒤섞으며, 그 세대가 지닌 굴절의 역사를 음각으로 드러낸다.



혹자는 <쎄시봉>을 6-70년대 <건축학개론>이라 말한다. 남자의 좌절된 순정, 음악, 복고 등이 이러한 연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쎄시봉>의 정서는 <건축학개론>의 정서와 차이가 있다. <건축학개론>에서 남성의 좌절은 자본에 의한 것이었다. 가난한 그는 부유한 선배에게 여자를 빼앗긴다. 그는 자신의 열등감을 여자에게 투사하여 “썅년”이라 비방한다. 영화는 남성의 비겁함을 보여주면서 그의 자괴감을 변호하는 태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반면 <쎄시봉>에서 남성의 좌절은 일차적으로 예술적 재능과 성적 지배력에 의한 것이다. “너는 나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니?”라는 민자영의 질문에 오근태는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노래할 뿐 그녀의 구체적인 욕망에 화답할 수 없다. 민자영은 자신이 사랑했던 ‘교회 오빠’이자, 화나면 자신을 때릴지언정 배우의 꿈을 펼치게 해줄 감독을 선택한다. 오근태는 무능력한 자신을 벌주기 위해 군대로 숨어버린다. 그는 민자영을 욕하는 대신 웨딩 케잌을 바칠 만큼 지고지순함을 유지한다.

그러나 국가공권력은 그의 내면에 상처를 입힌다. 그는 국가폭력의 피해자로서 민자영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을 주기 위해 국가폭력의 가담자가 된다. 그는 친구들을 고발했다는 죄의식으로 인해 그 시절 친구들을 다시 만나지 못하고, 자신의 비겁과 나약을 바닥까지 체감한 상태라 민자영 앞에 나서지 못한다. 그는 자신을 버린 민자영을 위해 친구들을 고발한 자신의 행위를 순애보였노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없다. 거기에는 민자영으로 대표되는 ‘쎄시봉 친구들’에 대한 기묘한 열등감이 엉켜있기 때문이다.



민자영을 위한 그의 행위는 어차피 바보짓이거나 기껏해야 미련일 뿐이다. 친구를 판 그의 행위는 질투로 인한 배신이거나 심하게 말하면 부역이다. 그는 스스로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찾을 수 없다. 해명될 수 없는 죄의식과 자괴감을 꾹 눌러 담은 채, 그는 사랑, 낭만, 음악, 꿈 등을 자신의 내면에서 소거한다. 그리고 묵묵히 ‘산업의 역군’으로 살아간다.

<세시봉>은 6-70년대를 추억하되, 오마주를 바치거나 향수에 함몰되는 영화가 아니다. 영화는 그 시절의 청년문화가 대결하고자 했던 시대의 억압을 보여주며, 그 억압을 그저 ‘외부의 벽’으로 사유하는 게 아니라 가담자의 내면에 새겨져있는 깊은 상흔으로 응시한다. 이러한 점이 동시대 청춘들의 사랑이 공권력에 의해 무자비하게 짓밟히는 모습을 피해자의 관점에서 그린 <그해 여름>이나, 당시의 대중문화가 지닌 반문화적 성격과 정권으로부터 받은 부당한 탄압을 그린 <고고 70>에 비해, <쎄시봉>이 훨씬 세련돼 보이는 이유다.

<쎄시봉>은 당대의 청년문화를 패퇴시켰던 ‘대마초 파동’의 허구성을 뚜렷하게 지적하면서도, 그 세대의 문화가 이후 왜 더 저항적인 반문화로 나아가지 못하였는지를 쓸쓸한 그림자로 비춘다. ‘쎄시봉’ 세대는 한국전쟁 직후의 베이비붐으로 태어나, 엄청난 교육열과 미국대중문화의 수혜를 입은 첫 세대로, 최초로 기성세대와 구분되는 청년문화를 일으켰다. 하지만 어처구니없는 국가탄압을 겪으면서, 그들 중 소수의 피해자들을 제외하면 오히려 가담자와 방관자로 내면화하는 과정이 일어났다. 이것이 핵심인데, 이를 통해 당대의 청춘들은 죄의식과 자괴감과 비틀린 자의식을 안고 ‘산업의 역군’이 되어 급속히 체제 안으로 흡수되어갔다.



영화는 1967년 ‘쎄시봉 트리오’의 결성과 1975년 대마초 파동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면서도, 한대수, 김민기, 양희은 등 이후 저항문화와 연결점을 지니는 당시 ‘쎄시봉’ 멤버들을 전혀 등장시키지 않는다. 이는 6-70년대에 청춘을 보낸 ‘쎄시봉’ 세대를 자부심이 아닌 자괴감의 정서로 응시하려는 영화의 관점과 무관해보이지 않는다.

중년이 된 오근태의 차갑게 식어버린 표정과 주저앉아 우는 모습은 느닷없이 튀어나온 신파이거나 과도한 감상주의의 산물이 아니다. 오히려 감독이 바라보는 세대에 대한 압축적인 유비이다. <쎄시봉>을 통해 마냥 ‘세대 부심’을 느끼고 싶었던 중년들이나 6-70년대 명곡들을 들으며 예스럽고 순수한 청춘 멜로를 감상하고 팠던 젊은이들에게 영화의 후반부는 삼켜지지 않는 가시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이만하면 우리 아름다웠죠?”라고 묻는 영화는 <국제시장> 한편으로 족하지 않은가.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쎄시봉>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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