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임·예원 욕설·반말 논란이 예능에 주는 교훈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지난주 대중을 사로잡은 연예계(예능) 이슈를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정보성 소식이나 볼거리는 아무리 충격적이거나 화려해도 쉽게 휘발되고 만다는 것이다. 태진아는 물론이고, 국민 첫사랑 수지와 한류 톱스타 이민호의 열애설도 관심 밖으로 멀어지는데 이틀이면 족했다. 늘 무수한 이슈를 몰고 다녔던 <꽃보다> 시리즈도 1년 만에 최지우라는 새로운 캐릭터와 함께 돌아왔지만 협찬의 영향인지 아직은 높은 관심에 비해 이야깃거리가 별로 없다.

대신 뜨겁게 회자되는 이슈는 대중들이 감정이입을 하거나 가치판단을 하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사안들이다. 모처럼 인터넷 여론의 지분을 잠식한 <무한도전>의 식스맨 특집은 투명한 집계를 통해 당선자를 뽑는 오디션 형식을 내세우지 않는다. 그런데 진행되면 될수록 대국민 서바이벌쇼를 둘러싼 감정이입과 긴장이 느껴진다.

시청자들은 재미 여부의 논의 불가한 1차원적인 호불호를 넘어서서 각자 특정 후보자를 지지하거나 비토하는 의견을 적극적으로 내고 있다. 그 의견들은 논쟁의 불꽃이 되고 이 불꽃들이 점점 번지면서 이슈의 판이 커지고 있는 형국이다. 유병재처럼 취향과 맥락이 필요한 인물에 대한 반론과 재반론이 활발하게 벌어지는 인터넷 게시판의 날카롭고 진지한 댓글들은 마치 <무한도전> 작가실이나 MBC예능국 회의실의 속기록을 옮겨 놓은 듯하다. 이런 뜨거운 여론을 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호흡을 함께 맞춰간다는 점이 ‘식스맨 특집’의 숨겨진 실체다.

지난 주말 수지도, 최지우도, 삼켜버린 건 사실 예원이었다. 2주 전 지옥으로 떨어진 줄 알았던 이슈가 이렇게 부활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애당초 이 사건은 3월 초쯤 이태임의 일탈과 관련된 뉴스 중 클라이막스로 정리됐다. 드라마 현장에서 갈등을 빚은 상황에서 <띠동갑내기 과외하기>에서마저 하차한 이유가 실은 욕설 때문임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해당 프로그램을 보는 사람은 극소수였지만 이 뉴스가 나가자마자 여러 추측과 가정이 난무했다. 이태임에 대한 비난이 다수였고, 여자들의 신경전이었을 수 있다거나 예원 또한 잘못했거나 건드렸을 거라는 의혹도 나오면서 진실공방으로 이어졌다. 그때 인터넷매체 디스패치의 현장검증 기사와 방송관계자의 전언 등에 이태임은 TKO패를 당하고 링을 떠났다. 소속사도 수건을 던졌으니 정리는 끝났다.



그런데 느닷없이 지난 금요일 해당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유출되면서 재점화됐다. 비유하자면 싹싹한 예원이 몸 좋은 언니한테 욕먹은 가련한 캔디인줄 알았는데 실은 연민정일지도 모른다는 소수의 주장에 힘이 실린 거다. 실제로 영상을 보면 눈물 뚝뚝 흘리며 욕만 먹고 있는 줄 알았던(그렇다고 하는 기사를 봤는데) 예원이 나름 대전 태세를 갖춘 건 분명하고 마지막의 찰진 한마디는 이태임의 것이 아니었다.

예원의 “언니 저 맘에 안 들죠.” 이 한마디에 녹아 있는 뉘앙스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의견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죄송하다는 뜻일 수도 있지만 입장에 따라 도발의 기운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의 인간관계에서도 충분히 발발할 수 있는 복잡 미묘한 상황인지라 감정이입의 정도는 대단했다. 이태임에 대한 동정론부터 당연한 반응이라는 옹호는 물론, 일방적인 피해자로 묘사한 언론에 대한 배신감까지 번졌다. 이태임 사건을 종결지은 다음 수지 열애설로 하이킥을 날렸던 디스패치는 순식간에 일격의 테이크다운을 당하고 말았다.

상황이 이러하자 사람들은 또 한 번의 진실을 원하며 공방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양측이 다시 링으로 올라와 리벤지 매치를 갖기엔 부담이 크다. 양측 모두 여기서 허투루 펀치를 날렸다간 바로 카운터어택을 맞을 게 뻔하고, 패배는 당분간일지라도 리그에서 퇴출을 의미 한다. 그렇다고 사관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양측 모두를 헤아린 전후사정을 정리해서 보여줄 수 있는 누군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빈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감정이입한 대중들의 의견, 즉 여론이다. 여러 소식과 볼거리를 누르고 지금 들끓는 이유다. 감정이입하고 의견을 적극 개진할 수 있는 이슈에 관심을 갖고 집착하는 게 오늘날 대중의 속성이다.



따라서 이 사건을 단순한 연예계 스캔들로 바라볼 수도 있지만 <무한도전>의 식스맨 특집과 동시에 놓고 보면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있다. 갈수록 목소리가 커져가는 예능 시청자들의 변화 추이와 비교해보면 앞으로 예능 콘텐츠가 흘러가야 할 방향에 대한 안내로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식스맨 특집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시청자들은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는 걸 즐기는 것까지 시청의 영역에 포함하기 시작했다. <케이팝스타>와 같은 오디션쇼에서 학습된 경험의 영향이다. 그래서 대중을 상대로는 이제 아무리 놀라운 뉴스일지라도 대중의 의견이 끼어들 틈이 없는 단순한 정보, 시청자가 목소리를 높일 수 없는 콘텐츠는 ‘관심 없음’의 영역으로 놓일 것이란 거다.

이것은 중요한 참고 사안이다. 지금과 같은 일상성, 정서적 공감의 시대 이후 이러한 시청자의 높아진 위상과 적극적인 개입은 그 다음 버전에 대한 힌트일 수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독자들에게 한 가지. 만약 예원의 상황에 놓인 경우, 가장 무난한 모범답안은 ‘죄송합니다’다. 유병재 표정을 지을 필요도 없고 가볍게 곁들이면 웬만한 감정 대립은 다 잡아주는 만능 조미료 역할을 한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유튜브,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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