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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를’이 남궁민을 통해 보내는 절실한 메시지
기사입력 :[ 2015-05-14 12:58 ]


‘냄새를’, 사이코패스에게 점령된 세계를 구하려면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드라마 찬(贊)△. <냄새를 보는 소녀>는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16부작 드라마로, 신세경, 박유천, 남궁민 등의 호연에 힘입어 높은 시청률을 보이고 있다. 신세경은 기존에 TV에서 보여주었던 청순가련한 이미지를 벗고, 쾌활하고 발랄한 이미지를 얻는데 성공했다. 신세경은 사건의 비밀과 신비한 감각을 지닌 소녀이면서도, 밝고 씩씩한 성격의 인물을 연기하였는데, 진지함과 코믹함을 아우르는 신세경의 연기는 극의 초반에 분위기를 이끌며 시청자들을 끌어들였다. 남궁민의 연기도 칭찬할만하다. 부드럽고 나른한 목소리에 유려한 태도, 거기에 자상하면서도 이따금 공허하고 가끔씩 오만하게 번뜩이는 눈빛은 악역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박유천의 연기도 안정적이며, 과하지 않게 극의 중심을 충실히 잡아낸다.

◆ 잘 조율된 복합장르

드라마는 연쇄살인범을 쫓는 스릴러이자 로맨틱 코미디이다. 여기에 ‘냄새를 본다’는 판타지적인 설정과 만담을 활용한 개그를 섞으며, 하나의 드라마 안에 스릴러, 로맨스, 판타지, 코미디가 공존하는 복합장르를 보여준다. 이처럼 장르를 섞을 경우, 스릴러의 진지함이나 긴장감이 떨어질 수도 있지만, 드라마는 이러한 맹점을 잘 피해간다. 이는 물론 탄탄한 극본으로 네 요소를 유기적으로 결합시킨 작가의 역량이기도 하지만, 극의 흐름에 따라 적절한 비중으로 간을 잘 맞춘 연출가의 힘이기도 하다.

<냄새를 보는 소녀>는 판타지를 매우 ‘이성적으로’ 활용한다. ‘냄새를 본다’라는 판타지를 전제한 뒤, 인물들의 행동은 합리적으로 전개한다. 때문에 비이성적인 장르인 판타지가 이성적인 장르인 스릴러와 만나도 어색하지 않다. 여주인공을 개그맨 지망생으로 설정하여 코믹의 강도를 높였던 초반의 떠들썩한 분위기도 중반이후 자제하면서 스릴러의 본령을 훼손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극이 너무 무거워지지 않도록 조연들을 활용한 자잘한 유머를 밑반찬으로 깐다.



<냄새를 보는 소녀>는 초반에 상반된 성격의 남녀가 기이한 상황에서 만나 협력해나가며 티격태격 사랑에 빠진다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흐름을 보여주었다. 드라마는 분위기 좋은 장면으로 달달한 로맨스를 펼치다가도, 그것은 공상이었고 현실의 연애는 찌질하고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면서 친근함과 신선함을 안겨주었다. 중반이후 드라마는 두 사람의 비밀을 공개한 뒤 애절함이 스민 로맨스로 갈아탄다. 시청자의 감정선을 배려하면서, 차분하게 스릴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율하는 것이다.

드라마의 중심축인 스릴러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드라마의 플롯은 대단히 정교하다. 드라마는 바코드 연쇄살인 사건을 다루면서, 초반에는 다른 부수적인 사건들을 배치하였다. 다른 사건들은 시청자들을 지루하지 않게 하는 장점이 있지만, 산만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 그러나 드라마는 다른 사건들이 바코드 연쇄살인 사건의 실마리와 암시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배치하여 짜임새를 높인다.

중반 이후 <냄새를 보는 소녀>는 범인의 존재를 드러낸 상태에서, 경찰과 범인의 두뇌싸움을 보여준다. 이는 최근 스릴러들이 후반부까지 누가 범인인지를 밝히지 않거나, 마지막 반전에 무게를 두면서 깜짝쇼와 같은 전개를 구사했던 것에 비해 나름 참신한 면모이다. 시청자들은 물론이고 경찰까지 누가 범인인지를 알고 있지만, 그의 범행을 증명하기 위하여 두뇌싸움을 벌인다. 시청자들은 경찰이 증거를 찾기 위해 덫을 놓거나 범인이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는 장면을 보면서 서스펜스를 느끼는 한편, 그가 왜 이러한 범죄를 저지르는지 의미를 곱씹게 된다.



◆ 초감각과 무감각

드라마 <냄새를 보는 소녀>의 핵심 키워드는 ‘감각’이다. ‘냄새를 본다’는 설정은 공연한 말장난이 아니다. 이는 후각이 시각처럼 명료하게 분별되는 사태에 대한 일종의 은유이다. 인간에게 가장 분별력이 높은 감각은 시각이며, 후각은 시각처럼 명확하게 분별되지 않는다. 흔히 어떤 감각이 뛰어나다고 할 때, 이를 강도의 문제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는 강도가 아니라 정밀함의 문제이다. 가령 시력이 좋다는 것은 사물이 크게 보인다는 게 아니라, 뚜렷하게 보인다는 뜻이다. 해상도라는 것이 근접한 두 점을 분리해 보는 능력이듯, 어떤 감각이 뛰어나다는 것은 서로 다른 자극을 분별해낼 수 있음을 뜻한다. 개나 뱀파이어처럼 후각이 뛰어난 존재는 희미한 냄새도 맡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모호하게 뒤섞인 냄새를 분간할 수 있다. 후각이 발달하지 않은 인간에게 이처럼 뛰어난 후각적 분별력을 지닌 오초림(신세경)의 감각방식을 이해시키기 위해, 드라마는 아예 ‘냄새가 보인다’는 말로 번역해 표현한 것이다.

오초림의 맞은편에 최무각(박유천)이 존재한다. 이름부터 ‘무각’인 그는 사랑하는 여동생이 살해된 뒤 감각을 잃는다. 냄새도 맛도 모르고, 뜨거운 것도 아픈 것도 간지러운 것도 느끼지 못한다. 이는 실제로 존재하는 의학적 증상인 통각상실증을 뜻하며, 이미 영화 <통증>에서 소재로 활용된 바 있다. 그러나 <통증>보다 <냄새를 보는 소녀>의 통각상실증이 더 자연스럽게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통각상실증을 단지 신파로 소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감각의 변이와 함께 배치함으로써 감각에 대한 색다른 사고를 일깨우기 때문이다.



◆ 사람을 죽여 책으로 만들다

드라마 <냄새를 보는 소녀>는 연쇄살인범에 대한 묘사가 뛰어나다. 권재희(남궁민)는 유명 쉐프이자 고급 레스토랑 체인의 사장이다. 그는 부와 실력과 명성을 가지고 있으며, 가장 고급화된 취향과 감각의 소유자이다. 그는 해외입양 되었다가 한국에 돌아온 ‘검은 머리 외국인’으로, 한국에 온 후 해마다 지역과 연령, 직업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납치한다. 희생자를 감금한 상태에서 각자의 사적인 이야기를 쓰게 한 뒤 살해한다. 그리고는 시신에 바코드를 새긴 후 유기한다. 그는 희생자들의 기록을 한권의 책으로 만들어 서재에 소장한다.

그는 우리 사회가 가장 부러워하면서도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 즉 ‘성공한 사이코패스’의 전형을 보여준다. 가장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의식주의 감각을 지니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을 나와 같은 고통을 지닌 존재로 인식하지 못한다. 그는 외계인이 지구인을 수집하듯이 지역, 연령, 직업을 달리하는 희생자들을 포집하고, 그들로부터 각자의 이야기를 절취하여 책으로 소장한다.

그가 안면인식 장애를 갖고 있다는 설정은 의미심장하다. 안면인식 장애는 완전범죄를 지향하는 권재희의 가장 큰 약점이자 서사의 발원지이다. 그가 동명이인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함으로 인해 오초림과 최무각의 인연이 시작된다. 이는 또한 그의 사이코패스로서의 성격을 단적으로 상징한다. 그는 한 사람, 한 사람을 개별적인 존재로 인식하지 못하고 ‘익명의 사람들’로 감각하고 인지한다.



예컨대 그에게 사람이란 대면적 존엄성과 고유성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 한 무더기로 인식되는 군집이다. 다만 각자의 사연과 레시피를 담은 존재라는 점이 그의 흥미를 자극한다. 이를테면 그에게 사람들이란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일종의 책과 같은데, 겉표지로 잘 구별되지 않기 때문에 바코드를 찍어 구분해야 할 전집 같은 것이다. 사람을 책으로 인식하는 사고는 권재희만의 것이 아니다. 사람마다 각자의 독특한 사연을 지니며, 그를 통해 구체적인 배움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바로 ‘사람도서관’의 개념이다. 권재희는 이 개념을 가장 끔찍한 방식으로 전유한다. 즉 ‘사람-책’을 살아있는 상태에서 열람하고 공유하는 게 아니라, 죽여서 박제로 만든 뒤 사유하고 독점한다. 이는 사람을 노동력 뿐 아니라 전인격적으로 사물화하고 사유화하려는 자본주의적 사고를 극단으로 밀어붙여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이다.

드라마가 초감각과 무감각을 대비시키며 던지는 ‘감각’이라는 화두와 권재희라는 인물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는 가볍지 않다. 우리는 동일한 세상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감각의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세계를 경험하며 산다. 권재희는 뛰어난 감수성과 세련된 취향을 지니지만, 타인을 자신과 같은 존재로 인식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고통에 무감각하다. 그는 인간의 고유함을 대면적 상호관계를 통해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글로 고착시켜 배우고자 한다. 인간을 사물화하는 페티시즘의 끝을 보여주는 것이다. 가장 발달된 미적 감수성을 지닌 존재라 할지라도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없다면 엽기적 연쇄살인마가 될 수 있다. 어쩌면 모든 감수성 중 가장 중요한 감수성이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요, 모든 능력 중 가장 중요한 능력이 ‘공감의 능력’인지도 모르겠다. 이는 ‘성공한 사이코패스’들에게 점령당한 이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가장 절실히 요청되는 능력이기도 하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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