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적이고 철학적인 무대로 탄생한 착한 가족오페라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지난 19일 막을 내린 예술의전당 제작 오페라 ‘마술피리’는 어른 관객과 어린이 관객을 모두 고려한 착한 가족오페라로 기억될 만하다.

이경재 연출은 ‘회화적이고 철학적인’ 콘셉트로 무대를 그려나갔다. 흰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 색깔을 입혀가는 방식은 어린이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김보슬 영상디자이너가 합세한 이번 작품은 극중 마술이 일어나는 장면들을 회화 영상으로 처리해 동심을 자극하는 동화 속 세상으로 초대했다. 영상이 단순히 시선을 잡아끄는 파편적인 장면으로 존재하는 게 아닌 목적성을 가지고 함께 움직였다는 점도 주목할 만했다.

파파게노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리모트컨트롤 장치를 이용해 직접 무대 위로 새가 날아가게 한 점도 집중력이 짧은 어린이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넌 피리를 불면 난 병나발을 불겠어”와 같이 위트 넘치는 대사도 귀를 쫑긋거리게 했다.

선과 악의 대립, 이성과 감성의 조화를 유지하게 하는 숫자 3의 철학과 삼각구도를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로 삼아 원작의 철학을 반영하고자 한 오페라이다. 이경재 연출과 정승호 무대디자이너의 철학적 콘셉트는 무대 전면에 있는 모든 벽을 삼각형으로 구성하고 있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프리메이슨의 상징인 삼각형으로 이뤄진 기하학적 무늬는 전 막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그렇게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속에 수수께끼처럼 숨겨져 있는 모차르트의 철학과 심오한 사상은 어렵지 않으면서도 무게감 있게 받치며 극을 전개시켜나갔다.

‘마술피리’ 속에서는 목숨을 거는 이상적인 사랑(타미노), 어머니의 사랑(밤의여왕), 지극히 현실적인 사랑(파파게노) 등을 만날 수 있다. 시련을 이겨내고 서로의 사랑을 찾는 모습 속에서 모차르트 음악의 힘을 경험할 수 있다.

이번 작품의 지휘를 맡은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임헌정 지휘자는 “모차르트 ‘마술피리’는 들으면 마음이 착해지는 음악”이라고 했다. 또한 “모든 음악은 그 나름의 색깔이 있는데 그걸 뚜렷이 하는 게 지휘자의 의무이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말 대로 “착한 사람이 되게 만드는 음악”은 무대 위 성악가 뿐 아니라 객석의 관객들에게도 천천히 하지만 활력 넘치게 스며들었다.



이번 ‘마술피리’는 예술의전당이 2009년 오페라극장 재개관 프로그램인 ‘피가로의 결혼’ 이후 6년 만에 직접 제작하는 오페라극장 오페라로 주목 받았다. 또한 10대 이상의 카메라 앵글로 만들어 내는 역동적인 장면, 한국 오페라 사상 최초로 UHD 고화질 영상, 5.1채널의 입체 서라운드 음향으로 영상화 되어 ‘SAC on Screen’(예술의전당 공연 영상화 사업)을 통해 전국 및 해외 각지에 상영 될 예정이다.

오페라 ‘마술피리’의 영상 관람객들은 오페라극장 최고 등급석에서도 볼 수 없었던 아티스트의 생생한 표정과 몸짓, 그리고 무대 뒤 이야기까지 경험 할 수 있게 된다. 예술의전당 태승진 본부장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대중성을 확보한 오페라 레퍼토리를 만들기 위해 ‘마술피리’를 선택했고, 문화 소외계층까지 향유할 수 있도록 영상화 작업(SAC on Screen)을 병행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모차르트 징슈필 오페라 ‘마술피리’는 타미노 왕자가 타미나 공주를 구하러 가는 긴 여정에 함께하는 유쾌한 새잡이꾼과 신기한 마술피리, 밤의 여왕과 지혜의 자라스트로가 등장하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주요 내용이다.

오페라의 핵심은 성악가들이 쥐고 있다. 오페라 애호가들도 놓칠 수 없는 오페라 드림팀과 국립합창단이 한 무대에 올랐다. 한번 보는 것으로는 아깝다. 두 번 이상은 봐야 ‘마술피리’의 묘미를 맘껏 즐길 수 있다.



독일 정부의 궁정가수 작위(캄머쟁어 Kammersaenger)를 받은 세계적인 베이스 전승현의 완숙한 자라스트로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개막 전부터 많은 기대를 모았던 것도 사실. 베이스 전승현은 ‘독일 정부가 아닌 한국 정부가 보호해 줘야 할 성악가’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였다. 독일어도 우리말 대사도 모두 완벽히 소화하며 무게 중심을 잡아줬기 때문이다. 한국어 대사를 하는 건 그에게도 도전이었을 터인데 수많은 노력의 시간을 엿보게 해 ‘브라보’를 외칠 수 있었다.

독일 바이마르 극장 전속 솔리스트 김대영이 분한 자라스트로 역시 훌륭한 가창을 선보였다. 스위스 베른 오페라극장 소속 소프라노 이윤정은 가창과 연기의 강약을 적절히 조율하며 인간미 넘치는 ‘밤의 여왕’을 탄생시켰다. 재기발랄한 모차르트 오페라 캐릭터인 ‘파파게노’로 분한 바리톤 공병우와 이응광은 오페라에 쉽게 다가가지 못했던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안겼다.

이번 프로덕션에서는 독일어로 노래하는 동시에 모든 대사를 한국어로 처리하여 누구나 쉽고 편안하게 즐기는 징슈필(Singspiel : 연극처럼 중간에 대사가 들어있는 독일어 노래극)의 묘미를 살리고자 했다. 하지만 이는 부작용도 낳았다.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 런던 로열오페라하우스, 밀라노 라 스칼라까지 세계 3대 오페라극장을 정복한 테너 김우경이 ‘타미노’로 분해 2011년 국립오페라단 ‘파우스트’이후, 4년 만에 국내 무대에 올랐다. 또한 독일 만하임 국립극장에서 타미노 역을 도맡고 있는 테너 이호철이 더블 캐스팅 됐다.



듣는 이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초대하는 흠 잡을 데 없는 미성의 소유자 김우경의 목소리에 감동하는 것도 잠시, 곧 이어지는 어색한 한국어 대사에 객석은 잠시 ‘주춤’ 거렸다. 그의 음악에는 어느 누구도 쉽사리 토를 달지 않겠지만 그의 연기는 음악성만 감안보고 보기엔 많이 아쉬웠다. 뛰어난 성악가라 더욱더 이번 한국어 대사 처리가 당혹스러웠다. 2012년 서울시오페라단이 선보인 <모차르트 오페라 시즌>의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 때도 역시 한국어 대사가 터질 때 가수들의 연기력이 확연히 비교 되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초래했다. 독일어 대사 그대로 갔으면 어땠을까. 관객은 유명 아리아만 듣기 위해 오페라 극장에 가지 않는다. 종합예술인 오페라의 다채로운 맛을 온 몸으로 느끼고 싶고 극장에 간다는 걸 고려했으면 한다.

작품의 마지막에 가서는 황금빛 벽을 만날 수 있다. 용기 있게 의지를 지켜낸 자들은 지혜와 아름다움으로 보답을 받고, 여기에 더해 의로운 철학자이자 빛의 현자 자라스트로와 밤의 여왕이 화해하는 모습을 피날레에 보여준다. 다 같이 화합하는 세상을 염원하는 예술가들의 의도가 엿보이는 장면이었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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