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티드’, 시대의 냉소를 냉소하는 드라마라니


제19강. 냉소 [冷笑]


[명사]
1. 무관심하거나 쌀쌀한 태도로 비웃음
2. 지금 여기의 시대정신


[엔터미디어=이승한의 TV키워드사전] 키미(엘리 켐퍼)의 불행한 과거를 들을 때마다 흥미와 경악, 동정이 미묘하게 섞인 표정을 지어 보이던 타이터스(타이터스 버지스)는,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지 말라는 키미의 말에 이렇게 답한다. “내 잘못이 아닌 걸. 사람들은 남의 비극을 자세히 알고 싶어 해. 첫째, 공포영화처럼 재밌고 둘째, 남을 불쌍히 여기면 착해진 기분이 들거든. 셋째, 내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안도감까지.” 넷플릭스 시트콤 <언브레이커블 키미 슈미트>의 한 장면이다. 아마 개인의 비극이 어떻게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일부로 포섭되는지에 대한 가장 정확한 묘사이리라.

언제는 안 그랬는가 싶지만, 오늘날 우리 중 절대 다수는 타인의 비극에 깊게 공감하는 대신 그 비극이 내포한 센세이션만을 소비한다. 사태 해결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자문하고 행동한다거나, 상대의 아픔에 공감하고 연대하려는 실질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이들은 많지 않다. 우리는 공동체로서 이 비극을 어떻게 함께 아파하고 해결할 것인가를 논하는 차원에서의 정치가 실종되고, 주어진 자극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소비자-대중만 부각된 폐허 위에 서 있다.

공감 대신 센세이션만을 추구하는 세상에선 비극의 주인공은 늘 대중의 평가 대상이 된다. 이 비극의 주인공이 내가 공감하는 척이라도 할 시간을 투자해도 좋을 만큼 정말로 억울하고 무고한 사람인가를, 현명한 소비습관을 키우려는 소비자가 된 태도로 재단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비극의 주인공은 언제나 평소 품행이 바르고 자기 일에 성실하며 주변에 상냥하고 사치 따위는 모르는 사람이어야 한다. ‘저런 일을 당해도 싼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더불어 정치적인 해결방안을 요구한다거나 특정한 구호를 외치는 일이 없어야 하고, 금전적인 손해배상 따위는 받아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는 금세 “내 어째 목적이 순수해 보이지 않는다 했어”라는 손가락질을 당하기 십상이다. 말하자면 ‘진정한 피해자’라는 상상 속의 이상향을 그려 두고, 그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이들을 향해 “그럴 줄 알았다”라고 이야기하는 행위랄까.



오늘날의 지배적 시대정신으로 ‘냉소’를 지목하며 꾸준히 탐구 중인 김민하 <미디어스> 편집장에 따르면 “어떤 냉소는 ‘진정한 무언가가 있다’는 점을 전제하지만 어떤 냉소는 ‘진정한 무언가는 없다’는 점을 전제한다. ‘헬조선’으로 통칭되는 어떤 생각들에는 이 두 가지 흐름이 뒤섞여 있다. 전자는 ‘미개’고 후자의 맥락은 ‘죽창’일 것이다.” 전자가 ‘진정한 무언가에 도 달하지 못한 현 상황’에 이항대립하는 ‘진정한 이상향’을 그려 놓고는 현 상황을 비웃는 태도라면, 후자는 ‘어차피 그 어디에도 진정성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며 윤리의 종언을 적극적으로 맞아들이는 태도에 가깝다.

김민하에 따르면 이 두 가지는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서로 자리를 바꾸는 한 세트인데, 대중이 비극을 소비하는 태도에서도 두 가지 태도가 번갈아 가며 등장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이를테면 “저 자는 순수한 피해자가 아니다”라는 말 속엔 그에 대립하는 ‘순수한 피해자 상(想)’이 존재하는데, 그 다음 단계인 “내 그럴 줄 알았다”라는 말 속에는 ‘어차피 순수한 피해자 따위는 없을 줄 알았다. (그러니 아픔에 공감하지 않았던 나의 태도는 정당하다.)’는 심리가 작동하고 있다.



SBS 새 수목드라마 <원티드> 속에 비춰진 오늘날의 시대정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은퇴를 선언한 날 아들을 납치당한 톱 배우 정혜인(김아중)은 납치범의 요구에 따라 생방송 리얼리티 쇼에 출연하게 된다. ‘열흘 동안 생방송으로 방송할 것. 범인이 보내주는 지령을 충실히 수행하고 그 모든 걸 방송에 공개할 것. 시청률 20% 이상을 유지할 것.’ 혜인은 이상의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아들을 무사히 돌려 보내겠다는 범인의 요구에 응한다.

케이블 채널에서 시청률 20%를 넘겨야 하는 상황, 급하게 소집한 제작팀의 수장인 PD 동욱(엄태웅)은 기획 회의 자리에서 방송 홍보를 위해 SNS를 이용하자는 제안을 한다. “첫 회는 일단 예고편으로 낚아 봐야지. 범인이 보낸 동영상 있지? 현우 묶여 있는 거. 그걸 트위터랑 페이스북에 돌리면 어때. 충격적이고 눈도 끌지 않겠어?” 시청률을 높여야 하는 명분이 확보된 이상 동욱은 점잔을 뺄 생각 따위는 접어 둔다. 어차피 이 비극을 엔터테인먼트 이상의 무언가로 소비할 대중은 없고, 있더라도 어차피 욕하면서 볼 것이라는 동욱의 태도는 대중에 대한 미디어 엘리트들의 냉소를 대변한다.



혜인은 방송 홍보를 위해 제작진과의 사전협의 없이 타 방송국 생방송 토크쇼에서 이 사실을 깜짝 공개하고, 눈물로 시청을 호소하다가 실신하고 만다. TV로 상황을 지켜보던 조연출 보연(전효성)이 혜인을 걱정하자, 동욱은 “저 상황에서도 연기가 되네”라는 무심한 평을 뱉고 메인작가 우신(박효주)은 감탄하며 부연한다. “이 바닥에서 20년 괜히 버틴 게 아니지. 대단하긴 하네. 저래야 감정이입해서 방송도 보고 욕도 덜 하지, 사람들이?” 저 모든 게 다 진심이기만 할 리 없고 분명 쇼의 일환일 것이라 생각하는 태도, 어차피 이 바닥에서 진정한 무언가 따위는 없다는 사실을 베테랑인 우리는 간파할 수 있다는 냉소주의가 작동하는 광경이다.

물론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들 또한 냉소로 답한다. 극 중 SNS에 올라오는 시청자들 반응을 오타 수정 없이 고스란히 옮겨 적어보자. “정혜인 애 가지고 쑈하는 거 같다;;; 뜰려고 별 짓을 다하는 듯!” “짜고치는건가? 보나마나 시청률 때문에 그러는 거 같은데… 아무리 그래도 애를 이용하냐??? 너무 하네ㅋㅋㅋㅋ” 그러면서도 뉴스를 퍼 나르고 생방송 리얼리티 쇼에 채널을 고정하는 대중의 양가적 태도 또한 냉소에 그 뿌리를 대고 있다. “어차피 방송은 진정한 무언가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알면서도 프로그램을 시청한다. 어차피 다들 그러지 않는가?)”라는 윤리의 파산.



이런 적극적인 냉소의 태도는 연예 저널리즘 또한 공유하는 태도다. 정혜인 아들 납치사건에 대한 기사를 빨리 올리라며 다른 매체들에게 선수를 빼앗길 것이라 닥달하는 편집장에게, 극중 연예지 <스타라이프>의 기자 장진웅(이승준)은 이렇게 대꾸한다. “잘 됐네. 그냥 하던 대로 해요. 다른 데서 쌔빠지게 써서 올리면, 트위터나 디씨 가서 반응 좀 얹어다가 다시 올리면 되지.” 대중은 연예 저널리즘에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고, 그러니 많은 것으로 부응할 필요도 없다는 태도는 만인에 의한 만인에 대한 냉소를 보여준다.

김아중의 말을 인용하면 한지완 작가는 시놉시스를 보내며 맨 뒷장에 “미디어 종사자로서 어디까지 치닫는지 자성해 볼 필요가 있지 않”는가를 묻는 장문의 편지를 썼다고 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냉소 투성이인 미디어 종사자, 언론, 그리고 그것을 더 거대한 냉소로 받는 대중을 함께 그려낸다. 아이러니한 점은 그러한 모두를 가장 차갑게 냉소하고 있는 주체가 바로 드라마 <원티드>라는 점이다. 시대의 냉소를 냉소하는 드라마라니, 아직 단언하긴 이르지만 적어도 출발만 보면 올 상반기에 등장한 모든 드라마 중 가장 문제적인 작품이라 하겠다. 과연 <원티드>와 그것을 지켜보는 우리는 이 냉소를 극복하고 당면한 문제를 공동체의 자격으로 해결해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SBS, 키이스트]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