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 이름 함부로 말하지 마. 울 아빠 절대 그런 사람 아니야. 남의 각서나 훔치고 남의 농장이나 강탈하는 당신 부모님이라면 몰라도. 우리 아빤 그런 사람 아니라고. 어떻게 당신 같은 사람이 경찰이야? 어떻게 당신 같은 인간이? 날강도들. 그렇게 남의 농장 도둑질로 강탈해서 얼마나 잘 먹고 잘사는지 내 두 눈 똑똑히 뜨고 지켜볼 거야. 당신들이 천벌을 받는지 안 받는지, 내 똑똑히 지켜볼 거라고.”

- KBS2 <오작교 형제들>에서 백자은(유이)의 한 마디

[엔터미디어=정석희의 그 장면 그 대사] 지난 주말, KBS2 <오작교 형제들>에는 복장 터지는 장면들이 즐비했다. 우선 백자은(유이)의 아버지가 남긴 농장을 한 입에 삼켜버린 황창식(백일섭)네 아들이자 형사인 황태희(주원)가 자은을 찾아와 “너 부정 입학했어? 니네 아버지 백인호가...”라고 추궁하던 장면. 자은은 따귀를 올려붙이며 ‘어떻게 너 같은 인간이 경찰일 수가 있느냐’며 따지고 든다. 자은이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불난 집에 부채질 하자는 것도 아니고 자은의 처지가 얼마나 딱한지, 무엇 때문에 길에 나앉게 되었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황태희가 아닌가. 부모 대신 정중히 사과를 하고, 의지할 곳 없는 나이 어린 여자가 혼자 몸으로 어떻게 지내는지 걱정을 해도 시원치 않은 마당에 불쑥 나타나 닦달부터 해대다니.

이 드라마가 소름이 돋도록 섬뜩한 건 남의 재산, 그것도 오갈 데 없어진 친구 딸의 마지막 희망을 빼앗았다는 사실 때문만이 아니다. 그 가족의 일원 중에 버젓이 경찰도 있고 방송국 기자도 있다는 사실이 특히나 무섭다. 비리와 범죄를 파헤쳐 응징하고 보도해야 할 경찰과 기자가 자신들이 저지른 인면수심에는 그처럼 관대할 수 있다니. 사업이 위기에 몰리자 10년 동안 임대해준 농장을 돌려 달라고 찾아왔던 자은의 아버지 백인호(이영하)의 실종 소식에 온 가족이 모여 희희낙락 기뻐하던 장면도 끔찍했지만 가족 중 한 사람이 자은이 지니고 있던 각서를 훔쳤을 게 불을 보듯 빤하거늘 모른 척 외면하려 드는 경찰 아들과 기자 아들이 더 황당했다.

게다가 경찰서에서 동생 황태희 경위의 책상을 뒤져 부정입학 수사 자료를 손에 넣은 황태범(류수영)은 사실 확인도 않고 자은의 아버지가 자은을 부정입학 시켰다는 의혹을 받고 있으며 입학 후 자은이 학교 홍보 모델로 활동해왔다고 보도해버린다. 이니셜을 사용하긴 했지만 학교 홍보 모델임을 언급했으니 수사 대상이 자은이임을 대놓고 만천하에 알린 꼴이다. 아니나 다를까 부지불식간에 자은은 네티즌의 공적으로 떠오르고 마는데, 감히 자은을 공명심의 도구로 삼을 생각을 한 그 저열함에 치가 떨릴 정도다. 양심이 씨가 말라도 유분수지.





수사 종결 지시에 불복하여 일부러 기자인 형에게 수사 자료를 흘렸다는 오해를 받고 만 황태희는 결국 직위해체를 당하고 분노에 차 방송국으로 형을 찾아간다. “나는 형처럼 까발리고 싶지 않았을 것 같아?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꿈인 줄도 모르고 짓밟아버리는 인간들, 적어도 세상엔 돈으로 사고팔면 안 되는 것들이 있다는 걸 내가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 것 같아? 그런데 이제 틀려버렸어. 이렇게 수사는 종결될 테고 난 직위해제야. 형 하나 잘 둔 덕분에 형사 노릇도 못해먹게 됐다고. 내가 태필(연우진)이라도 형이 나한테 이랬을까?” 이 대목 또한 섬뜩하다. 황태희는 실은 황태식의 조카로 아버지 사망 후 어머니가 재혼하자 큰아버지의 아들로 입적되어 길러졌던 것. 따라서 황태범과 황태희는 친 형제가 아니라 사촌 지간이다. '아니 어떻게 형이라는 사람이 동생 입장을 생각 안하고?'라며 의아해 했는데 비로소 고개가 끄덕여졌다.

압권은 황창식의 처 박복자(김자옥)가 장롱 깊숙이 자은에게서 훔친 각서를 숨기는 장면이었다. 설마, 설마 했건만 종내 범인이 어머니 박복자였다니. “다 니 팔자려니 혀, 내 죄는 내가 죽어서 받을 테니껴.” 가족의 안녕을 위해 자신이 죄를 다 뒤집어쓰겠다는 식의 넋두리가 참으로 가증스럽다. 정녕 무서운 가족이 아닌가. 더 무서운 건 천벌을 받아야 옳을 이 가족들이 우여곡절 끝에 별 처벌 없이 자은과 극적으로 화해하리라는 예감이다. 그리고 그보다 몇 배나 더 무서운 건 이 가족이 겉으로는 지극히 사람 좋은 이들로 비쳐지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런 어이없는 일들이 이 나라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을 게 분명하다는 사실이 아닐는지.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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