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단의 개인주의 콘셉트’ 박명수, 뜻밖의 행보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한동안 명절이면 으레 아이돌 세상이었다. 도대체 아이돌이 없던 시절에는 프로그램을 어찌 만들었을까 싶게 채널을 이리 돌려보나 저리 돌려보나 아이돌 천지였는데, 올 추석에는 고맙게도 상당한 변화가 느껴졌다.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을 꼽아보자면 씨름이 국민 스포츠였던 80년대를 돌아보는 KBS1 <천하장사 만만세>도 뜻 깊었고, 추억의 여배우 정윤희를 회고하는 MBC <카페 정윤희>도 색다른 시도였다. 명절에 가족이 둘러앉아 강호동이 센지 이만기가 센지 갑론을박을 벌였으며 정윤희가 얼마나 예뻤는지, 요즘으로 치면 누가 정윤희의 미모에 필적할지를 두고 신구가 토론 아닌 토론을 벌였으니까.

그런가하면 MBC <나는 트로트 가수다>에서 ‘NOBODY'를 부른 문희옥도 꼽지 아니 할 수 없다. 올봄 tvN <오페라 스타 2011>로 실험적인 도전에 나섰던 문희옥은 이번에도 또 다른 변신에 나섰는데 지난번이 클래식의 대중화를 위해 앞장섰다면 이번은 세대 간의 격차를 좁히기 위한 시도였다고 할까?

그리고 MBC <가수와 연습생>에 출연한 무명의 개그맨 권영기가 있다. 물론 우승은 심사위원들에게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훌륭한 스타가 될 빼어난 인재다’라는 극찬을 받은 휘성의 후배 에일리가 차지했다. 하지만 웬일인지 나는 2등도 아닌 3등을 한 권영기가 더 잊히지 않는다. 멀리 안동부터 와주었다는 고향 친구들의 소박한 연주가 찡하니 와 닿았던 것일 수도 있고, 마치 주크박스처럼 제목만 대면 바로바로 튀어나오던 본조비의 노래 한 구절이 주는 아련함 때문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후배의 도우미를 자처한 정성호의 말마따나 진정성이, 절절함이 가슴으로 느껴져서 좋았던 것 같다.

그는 박명수의 ‘거성엔터테인먼트’ 소속 개그맨이자 가수로 소개되며 함께 트로트 가요 ‘땡벌’과 <무한도전>‘서해안 가요제’의 인기곡 ‘바람났어’를 불러 김장훈과 함께 나온 ‘오 브러더스’를 제치고 극적으로 예선을 통과했다. 하지만 아깝게도 결승에는 오르지 못했는데, 그의 재능과 패기를 대중에게 널리 알릴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도전이었지 싶다.

심사위원으로 나온 예능 PD 김유곤조차 이날 이때까지 그 존재 자체를 알지 못했다는 권영기. <위대한 탄생>에도 도전해 100위 안에 들었을 당시에도 박명수가 응원 차 오디션 장을 찾았던 기억이 어슴푸레 난다. 농담 삼아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앞으로 박명수 씨 무대에 자주 불려 다니며 이용될 것 같다’는 심사평들이 오갔지만 사실은 이용당하는 것이 아니라 박명수가 기회를 주려고 애를 쓰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이미 MBC <놀러와>를 비롯한 몇몇 프로그램을 통해 알려진 바대로 박명수는 1인 기획사를 차려 MBC 개그맨의 맥을 이어보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MBC 간판 개그 프로그램 <웃고 또 웃고>가 금요일 밤 12시 35분이라는 시청률 사각지대에 편성될 정도로 공채 개그맨들이 홀대 받는 시절이나 보니 어떻게든 후배들이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을 수 있게 판을 벌려주고 있는 것. 김경진과 유상엽, 그리고 이번에 소개된 권영기가 그의 소속사 개그맨들인데 예능 프로그램에 동반 출연할 적마다 사무실 하나 없다, 매니저며 코디도 없다, 심지어 이동도 스스로 해야 한다며 불평이 자자하지만 솔직히 박명수가 아니라면 그들이 얼굴을 알릴 기회나 얻을 수 있었을는지. 더구나 그들이 악덕 기획사 사장 이미지를 개그 소재로 차용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개그를 실제로 받아들여 박명수를 비난하는 이들도 있다고 하니 각고의 노력을 해온 박명수 입장에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을 일이 아니겠나

특히 김경진의 경우 KBS2 <백점만점> 등, 출연했다하면 대부분이 박명수가 맡고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유상엽 또한 인지도를 높일 수 있었던 프로그램이 <일요일 일요일 밤에>‘뜨거운 형제들’의 콩트 코너였고 역시나 MC 중에는 박명수가 있었다. 실은 박명수와 자주 함께 MC를 보는 유재석이나 김구라도 일련의 과정들을 익히 잘 아는 터, 박명수가 키우는 후배들이 나오면 눈치껏 말 한마디라도 더 할 수 있게 배려하고 있다.

수년 째 극단적 개인주의, 이기주의 콘셉트를 밀고 있는 박명수로서는 뜻밖의 행보가 아닐 수 없다. 하기야 이번 주 <해피투게더>에 출연한 모델 장윤주도 의미 있는 발언을 했다. 유재석은 사람을 귀히 여길 줄 아는 점이 좋았고 의외로 박명수에게서는 ‘나는 개그맨이다. 나는 최고의 코미디언이다’라는 단호한 자부심이 느껴져 좋았다고 하는데 나 또한 그가 개그맨으로서의 긍지, 책임감을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entermedia.co.kr
그림 정덕주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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