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해철, 선배들 얼굴보기가 부끄럽지 않았을까

[서병기의 핫이슈] 밴드 서바이벌 KBS ‘TOP밴드’는 토너먼트로 돌입한 16강전부터는 경연이 끝나면 두 팀을 불러모아 심사결과를 발표하고 이긴 팀과 진 팀의 인터뷰를 듣고 마무리한다.

이 자리에서는 탈락한 팀들도 대부분 패배를 아쉬워하면서도 코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성장과 보람이 있었다면서 다음을 기약한다는 내용의 인터뷰들로 채워진다.
 
8개의 16강전을 모두 현장에서 지켜본 기자는 누구는 붙고 누구는 떨어져야 하는 승부 세계에서도 훈훈함을 느낄 수 있었다. 8강전 티켓 주인을 가리는 8개의 18강전이 모두 그렇게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신해철 코치팀의 경연에서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신해철은 자신이 이끈 직장인 밴드 S1이 한상원 코치의 밴드 라떼라떼에게 완패를 당하자 한상원과 포옹을 하기는 했다. 하지만 이내 들고있던 마이크를 던져버리고 인터뷰를 잠깐만 하자는 MC 이지애의 말을 거부하며 무대를 나가버렸다. 인터뷰를 기다리던 S1 팀들은 코치가 나가버리자 엉겹결에 한사람씩 따라나갔다. 방송에서는 신해철이 마이크를 던지는 장면은 편집되었고 갑자기 무대를 나가버리는 돌발상황만 볼 수 있었다.

신해철의 행동은 순식간에 ‘톱밴드’ 분위기를 망쳐버렸다. 녹화방송을 보러온 관객들에게 무례한 행동임은 물론이다. 이 자리에는 심사위원석에 송홍섭, 봄여름가을겨울, 김종서 등 신해철의 락커 선배들도 많이 앉아있었다. 선배들 얼굴보기가 부끄럽지 않았을까.
 
‘톱밴드’는 비록 형식상으로는 서바이벌 오디션 형태를 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응원, 격려하며 즐기는 음악을 하는데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지나친 경쟁의식과 승자독식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피로감이 ‘톱밴드’에서만큼은 별로 드러나지 않았다.

한데 신해철은 그런 톱밴드 정신에 오점을 남겼다. 신해철은 돌발행동을 보인 이후 가진 인터뷰에서 “직장인 밴드에 대한 멸시로 봤다. 심사결과에 불복한 차원은 아니었다”며 “S1이 음반을 내고 잠실주경기장에서 공연하는 것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S1에 대한 심사는 직장인 밴드에 대한 멸시가 아니었다. 공정했다고 생각한다. 신해철은 심사결과에 불복한 것이 아니라고 했는데, 누가 봐도 그의 행동은 판정에 대한 불복이었다.
 
20인의 전문심사위원은 라떼라떼와 S1의 경쟁무대에 14:6으로 라떼라떼의 일방적 우세 판정을 내렸고, 5명의 심사위원은 5:0으로 모두 라떼라떼 손을 들어주었다.
 
신해철은 S1의 이번 무대의 선곡과 프로듀싱에 깊게 개입했다. 여의도의 한 호텔 스위트룸을 빌려 캠프까지 치고 샴페인까지 마시며 연습했다. 춤도 일일이 가르쳤다.
 
하지만 S1이 부른 아바의 ‘댄싱퀸’은 모두 흥겹게 춤을 춰 신나기는 했지만 앙상블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남녀 보컬 모두 춤을 추느라 숨이 차서 그런지 목소리가 잘 안나왔고, 음정 화음 모두 높은 점수를 줄 수 없었다.

30~40대 직장인들로 구성된 S1은 패자부활전을 통해 16강에 올랐으나 만만한 팀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S1은 코치를 잘못 만나 승부에서 진 것이다. 스포츠로 따지면 작전의 실패였다. 신해철 코치가 이 점을 인정했더라면 정말 보기좋았을 것이다.


 
반면 조덕배의 ‘그대 내맘에 들어오면은’을 선곡한 라떼라떼는 색소폰, 드럼, 베이스, 기타가 라틴풍의 흥겨운 음악을 선보였으며, 유유리의 열정적인 보컬과 좋은 앙상블을 이뤘다. 아직 대학생이지만 실제 공연 같은 느낌도 들었다. 누가 심사를 하더라도 라떼라떼에게 우세를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신해철은 16강전에서 탈락한 ‘번아웃하우스’를 코치할 때도 큰 갈등을 일으켰다. 코치와 제자는 갈등할 수 있다. 갈등 자체가 나쁜 것도 아니다. 이견을 어떻게 극복하는지는 보여주는 것, 이런 것이 ‘톱밴드’를 보는 재미다.
 
하지만 신해철은 굳이 경연장에서 “행복하게 소통하는데 실패했고 오늘을 마지막으로 코치관계는 몇 일 전에 종료가 됐다”는 말까지 해 번아웃하우스의 스트레스를 가중시켰다. “그간 수고했습니다. 행운을 빕니다. 코치를 거부한 만큼의 자존심을 증명하시길 바랍니다”는 신해철의 문자도 공개됐다.

당시 갈등의 주원인은 선곡이었다. 번아웃하우스는 계속 연습해왔던 레이디가가의 ‘포커페이스’를 고집했고, 신해철은 카라 ‘미스터’로 바꾸기를 원했다. 결국 ‘포커페이스’를 불러 탈락하는 바람에 신해철의 짐은 덜어졌던 셈이다. 당시 심사위원인 유영석은 번아웃하우스에게 “왜 신해철 코치 말을 안들었냐. 사람이 건방져보여서 그렇지 20년 음악한 사람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쨌든 신해철은 두 건의 코칭 모두 그리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게 됐다. 실력과 열정도 넘치는 신해철이 좀 더 행복한 소통법을 본인 스스로 찾아야 할 것 같다.
 

칼럼니스트 서병기 <헤럴드경제 기자 >wp@heraldm.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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