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만에게 류담이 없었다면

[서병기의 대중문화 트렌드] 이번 주말로 막을 내리는 KBS ‘개그콘서트’의 최장수코너 ‘달인’이 잘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철저한 전략이 숨어있었다. 한 사람이 주가 되면 다른 사람들은 받쳐주는 역할을 하는 콤비 플레이가 주효했다.
 
‘달인’에서 최고의 웃음 포인트를 만들고 주목받아야 하는 인물은 김병만이다. 개그계의 용어로 김병만이 ‘오도시’를 맡은 거다. 류담과 노우진은 상대인 김병만의 웃음을 만들어주기 위해 받쳐주는 역할인 ‘니주’다.

‘달인’은 니주와 오도시의 역할 분담이 철저하게 이뤄진 개그다. 노우진에게는 대사를 거의 다 빼버렸다. 류담은 웃지 못하게 했다. 그래야 사람들이 김병만에게 주목할 수 있다. 이는 멤버들간 신뢰와 상호존중이 바탕에 깔려있어야 가능하다. 이 역할 분담이 잘 안돼 서로 웃기고자 하는 욕심을 내면 ‘달인’은 산으로 갔을 것이다.

웃기고 싶은 욕심이 없는 개그맨이 어디 있겠는가? ‘분장실의 강선생님’의 웃음 포인트는 후배들에게 “똑바로 해 이것들아~” “야, 영광인 줄 알아 이것들아”하고 후배들을 질타하는 안영미에게 있다. 정경미와 강유미는 깔아주는 개그를 맡았다. 하지만 강유미는 “야야~ 놔둬라. 요즘 애들이 뭘 알겠니” 하고 능청을 떨며 안영미를 살려주면서도 자신도 슬쩍 웃긴다. 분장을 안영미보다 더 독하게 하기도 한다. 웃음 포인트를 나눈 경우다.

류담은 “달인은 병만이 형이 잘될 수 있고 병만이 형 외에는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서 자신이 절제하게 된 이유를 밝힌 후 “병만이 형이 잘돼 너무 기쁘다”고 했다.
 
사실 김병만은 오랫동안 무대공포증, 울렁증에 시달렸다. 류담과 노우진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김병만도 이들과 호흡을 맞추면 긴장을 별로 하지 않았고 비교적 편안할 수 있었다. 류담은 “나도 병만이 형과 잘 맞다. 개그 성향도 서로 비슷하다”면서 “무대에서는 서로 장난치듯이, 놀듯이 하는 사이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깔아주는 개그(니주)를 많이 하는 개그맨은 늘 고민에 시달린다. 사정을 모르는 일반인들이 “너는 왜 못웃기느냐” “너는 왜 주인공이 못되냐”“남 좋은 일 시켜준다”라고 말할 때 설명할 길이 없다. 설명해도 이해해주지 않는다. 윤형빈도 깔아주는 개그만 계속해 존재감이 부각되지 못하자 자신이 직접 주(主)가 되어 웃기는 강한 캐릭터, 왕비호를 하게 됐다고 했다.
 
깔아주는 개그, 받쳐주는 개그를 계속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런 고민에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류담은 받쳐주는 개그를 오래하면서 지명도는 높아지지 않았지만 그 특성을 십분 활용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드라마에 많이 출연할 수 있었다. ‘개콘’에서 강한 캐릭터를 하지 않았고 확실하게 캐릭터가 잡혀있지 않아 연기할 때는 유리했다는 것이다. ‘선덕여왕’ ‘성균관스캔들’에 출연했고 ‘계백’ 후속으로 방송될 ‘빛과 그림자’에도 캐스팅됐다. 또 ‘달인’할 때의 역할로 인해 행사MC 섭외가 많이 들어온다.


 
류담은 무리하지 않는 성격으로 김병만의 개그를 잘 받쳐준다. 평화주의자인 류담의 이런 특성은 아프리카 오지의 생존 버라이어티 SBS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에서도 잘 발휘됐다. 팀원의 생존을 책임지는 리더인 김병만이 격한 감정 상태를 보이기도 한 반면 류담은 정글에서의 활약상은 크게 눈에 띄지 않는 ‘초식남’이지만 팀원들을 아우르고 조율하는 엄마 캐릭터였다.

개성이 강한 멤버들이 극한 상황에서 각자 개인적으로 행동하기가 쉬운데, 포근한 류담이 이들간 유대감을 높여주는 데 한몫했다. 류담은 “병만이 형과 리키 김이 부딪히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 곳은 술을 마시며 속마음을 풀 수도 없다”면서 “싸워봤자 답이 나오는 공간이 아니다. 답이 뻔하니 스트레스 받지 말자고 했다”고 말했다.

제작진은 이들을 정글에 투입하면 신경이 예민해져 싸우지 않을까 고심했다. 류담은 “오히려 극한상황이 되면 관계가 더 끈끈해질 것이다”고 예측했다. 류담의 예상대로 멤버들끼리 서로 배려하고 음식도 나눠먹으면서 버터냈다. 류담은 황광희와 리키김과도 속을 털어놓을 수 있을 정도로 친해졌다.
 
화려한 역할을 맡지는 않아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류담도 개그계의 소중한 자원이다.
 

칼럼니스트 서병기 < 헤럴드경제 선임기자 > wp@heraldm.com 


[사진=KBS, SBS]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