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탁재훈·이수근 조합, 또 어긋난 이유

[서병기의 대중문화 트렌드] 탁재훈이 공감토크쇼 KBS ‘승승장구’에 공동MC로 합류하고 배철수, 박정현편이 방송됐다. 이 두 편만으로 탁재훈의 진행 능력을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탁재훈이 잘 어울리는 것 같지는 않다. 탁재훈이 자신의 기량을 충분히 발휘하면 할수록 프로그램의 정체성이 흔들릴 우려가 생기고 있다.
 
탁재훈은 순발력이 매우 뛰어난 MC다. 능청스럽게 웃기며 순간적인 애드립은 최고다. 박명수도 이 부분의 대한민국 1인자는 탁재훈임을 인정했다. 탁재훈은 박정현이 “미인도 아닌 저에게 왜 화장품 제의가 들어왔는지 모르겠다”고 하자 “그럼 거절을 하셨어야죠”라고 말한다.

이처럼 탁재훈은 팍팍 치고나간다. 이를 통제하기는 쉽지 않다.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춰온 신정환 정도는 되어야 탁재훈의 깐쪽과 독선과 무례를 눌러주고 상쇄해줄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속수무책이다.
 
탁재훈의 가세로 당황한 쪽은 이수근이다. 이수근은 끊임없이 작은 웃음을 만들어내는 MC다. 하지만 이수근은 “게스트의 말을 들어주는 프로그램의 특성상 맥을 끊지 않기 위해 자제하는 중이다”면서 “가능하면 비어있는 구멍을 찾아 들어가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탁재훈의 치고 들어오는 토크는 이수근의 역할과 조화를 이뤄야 하는데, 둘의 조합을 찾기는 쉽지 않다. 두 사람은 집단 MC체제의 ‘상상플러스’에서 시너지를 이뤄내지 못한 경험이 있다.

물론 제작진은 다소 밋밋한 프로그램에 변화를 주기 위해, 좀 더 탄력을 주기 위해 탁재훈을 투입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승승장구’가 ‘강심장’처럼 강력한 화기 없이도 1년9개월간 유지해온 것은 게스트의 삶을 들여다보며 자연스럽게 웃음과 감동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것은 강풍이 아니라 따뜻한 바람이었다는 우화를 생각하는 토크쇼다. 탁재훈은 게스트를 편안하게 해주는 MC는 아니다.
 
탁재훈을 수용해줄 예능 프로그램을 찾는 건 힘든 일이다. 어설프게 MC가 비어있는 예능에 들어갈 일이 아니다. 현재로서는 탁재훈을 활용하려면 두 가지뿐이다. 탁재훈을 시스템에 묻어가게 하든가 아니면 탁재훈 스타일로 포맷팅된 ‘탁재훈쇼’를 만들어 탁재훈의 재능과 특성을 마음껏 살리게 하는 것이다.  



탁재훈을 시스템에 묻어가게 하는 것은 ‘천하무적 야구단’ ‘뜨거운 형제들’ 아바타편에서 시도된 적이 있다. ‘천무단’은 야구로 풀어가기 때문에 탁재훈이 말로 세게 치고 들어가도 먹히지 않았다. ‘뜨거운 형제들’에서도 자신의 순발력이 아바타를 통해 살아나기는 했지만, 독선적인 느낌은 덜하고 협업의 느낌이 살아났다. 이 때는 개성이 워낙 강한 MC 탁재훈이 변화와 성장을 모색하는 것 같았다.
 
‘김승우의 승승장구’에서 탁재훈의 역할을 축소, 배분해 기존MC들과 조화를 이루게 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탁재훈이 시스템에 의해 대형이 잡힌 상태에서 자신의 특기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냥 놔두면 혼자 튀게 돼 프로그램의 분위기가 흔들리고, 자제를 당부하면 기가 죽어 능력 발휘량만 줄어들 수 있다.
 
탁재훈의 강한 모습을 누그러뜨리면서도 자신의 기량을 짧게라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래서 방송 분량이 조금 줄어들더라도 독선적이라는 소리를 덜 듣게 만들어야 한다.
 
탁재훈에게 최적화된 예능을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다. ‘달인’ 김병만도 집단MC 체제의 버라이어티 예능에 들어갔다면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다. 자신의 특성과 능력을 살릴 수 있는 프로그램, ‘김병만의 생존의 법칙’ ‘키스 앤 크라이’ 등을 찾아가거나 새로 만들게 한 것이다.
 
집단MC 체제에서 개성을 발휘하고 있는 김구라에게 최적화된 프로그램도 새로 만들 수 있다. 제이 레노(Jay Leno) 쇼 처럼 말이다. 탁재훈도 탁재훈만이 할 수 있는 예능을 만들 수 있다. 채널이 다양화되면서 더욱 다양한 형태의 예능이 나올 것이다.
 

칼럼니스트 서병기 < 헤럴드경제 선임기자 > wp@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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