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백’, 몇 가지 결핍에도 불구하고 응원과 지지 보내는 이유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미쓰백>은 아동학대를 소재로 한 영화로, 한지민의 연기 변신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첫 등장부터 노랗게 탈색된 머리에 능숙하게 침을 뱉어 담배를 끄는 모습은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는 한지민의 이미지를 담는다. 그러나 건조하고 낮은 목소리로 내뱉는 욕설과 독기와 불안이 서린 눈빛이 어우러지면서, 불과 몇 장면 만에 기존에 알고 있던 한지민의 얼굴이 더 이상 떠오르지 않는다. 배우 한지민이 기존의 예쁘장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연기 폭을 넓히기 위해 얼마나 절치부심하였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미쓰백>은 남성일색의 한국영화계에서 여성 감독이 만든 여성 원톱의 영화라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심지어 헤드 스탭들도 대부분 여성으로 이루어져, 여성영화로서 반가움을 더한다. 영화는 아동학대라는 민감한 소재를 묵직하게 다루며, 복지 사각지대에서 고통 받는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제도개선을 촉구한다는 점에서 시의성이 높다.



◆ 모성이 아닌 상처 입은 자들의 연대

제목인 ‘미쓰백’은 백상아(한지민)가 학대받는 소녀(김시아)에게 자신을 부를 때 쓰라고 가르쳐준 호칭이다. 아줌마, 이모, 엄마 혹은 선생님 등의 호칭을 거부하고, ‘미쓰백’으로 부르라는 이유가 뭘까. ‘미쓰백’은 백상아가 일터에서 불리는 이름이다. 백상아는 몸을 학대할 정도로 여러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직장에서는 성실한 노동자로 인정받는다. 그의 노동은 불안정한 삶에 경제적 안전장치라도 마련하려는 안간힘이자, 누구의 아내나 엄마가 되는 삶을 포기한 백상아가 사회 안에서 존재를 증명하려는 몸짓이다. 그는 ‘미쓰백’이 아닌 백상아라는 이름을 쓰는 것이 불편하다. 파출소나 병원에서 이름을 써야할 때 주저한다. 성인도 되기도 전에, 사회가 만들어준 전과자라는 낙인 때문이다.

백상아는 가정폭력과 성폭력의 피해자이자, 사법 피해자이다. 친모에게 학대받다 보육원에 맡겨진 뒤 “부모 없는 날라리 계집애”가 된 백상아에게 세상은 야멸찼다. 미성년의 성폭행피해자인 백상아에게 무거운 죄목을 뒤집어씌웠다. 사건처리에 책임을 느낀 형사(이희준)는 아직도 백상아 곁에서 그를 안쓰럽게 바라본다. 백상아는 자신을 연민하는 형사의 눈길을 뿌리친다.

백상아가 소녀에게 일터에서 불리는 호칭을 알려준 것은 유사 가족적 관계가 아니라, 대등한 사회구성원으로 만나고 싶다는 뜻을 담고 있다. 백상아는 소녀에게서 학대받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본다. 상처를 공유하는 두 사람이 “너나 나나” “지켜줄게” “나도 지켜줄게요” 등의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은 ‘버려진 이들의 연대’를 떠올리게 한다. 백상아는 죽은 엄마를 끝까지 용서하지 않으며, 형사와 가정을 이룰 생각도 하지 않는다. 영화가 결말을 통해 제시하는 해법도 모성애의 회복이나 정상가족의 구성은 아니다.



◆ 남성형사의 비중이 지나치게 크다

<미쓰백>은 2017년 4월에 촬영을 마쳤으나, 1년 이상 개봉이 미루어졌다. 제작과정에서 투자를 받기 어려웠고, 배급도 난항을 겪었다. 신인 감독 이지원은 “주인공을 남자로 바꾸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었다고 한다. 이런 압력이 작용한 탓인지, 형사의 비중이 필요이상으로 높다. 영화에서 상황을 끌어가는 것은 백상아지만, 그가 위험에 빠지거나 난처해질 때마다 형사가 나타나 사태를 해결한다. 백상아와 소녀를 연민하는 형사의 시선과 악인을 응징하는 형사의 주먹이 영화 전체에 퍼져있다. 하지만 이런 단점에 지나치게 가혹할 필요는 없다. 제작에 착수했던 2016년에는 남성위주의 제작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이 공론화되기 전이었음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혹자는 영화 <아저씨>의 여성판본이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두 영화의 유사점은 거의 없다. <아저씨>는 전직 국정원 특수요원이 유사부성애를 발휘해 활극을 벌이는 액션영화다. 소녀가 놓인 상태도 매우 다르다. 가정에서 방임되던 소녀가 범죄 집단에 납치되자, 아저씨가 소녀를 구출하기 위해 범죄 집단과 사투를 벌인다. 즉 영화의 방점은 아동학대가 아닌 아저씨의 멋짐에 찍힌다. 그 보다는 2016년 드라마 극본 공모 당선작으로 2017년 10월에 방송되었던 KBS 드라마스페셜 <정마담의 마지막 일주일>이 연상된다. 공소시효가 만료될 때까지 7년간 숨어 살던 범죄자(라미란)가 만료 일주일을 앞두고 학대받는 옆집 소녀를 발견하고 함께 도망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가장 기시감이 강하게 느껴지는 작품은 드라마 <마더>이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학대를 당하다 보육원에 맡겨졌던 여주인공이 학대당하는 아이를 발견하고 유괴한다는 기둥줄거리가 같기 때문이다. 2017년에 촬영을 마친 <미쓰백>의 개봉이 미루어지고 있는 상태에서, 비슷한 시기에 기획된 한국판 <마더>가 2018년 초에 먼저 방영되고 있었으니 제작진은 얼마나 속이 탔을 것인가. 하지만 제작진은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과 응징의 서사를 취한다는 차별점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실제로 제작진은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아동보호기관의 협조를 얻어 여러 건의 실제 사례를 취재하였다고 한다. 그 결과 영화 속 소녀의 상황은 평택의 ‘원영이 사건’과 ‘인천 11세 여아 학대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원영이 사건은 속옷차림의 아이를 3개월 동안 화장실에 감금해 놓고 물과 락스를 뿌려서 사망하게 만든 사건으로 공분을 샀다. ‘인천 11세 여야 학대 사건’은 게임중독에 빠진 친부와 동거녀에게 학대를 당하던 소녀가 빌라에서 가스배관을 타고 아버지 몰래 탈출하여 인근 슈퍼로 들어온 것을 슈퍼주인이 경찰에 신고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진 사건이다.



사실 백상아의 캐릭터는 드라마 <마더>의 주인공과 많이 다르고, 유괴사건이 떠들썩하게 공론화되는 과정도 <미쓰백>에는 없기 때문에,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백상아의 행위가 유괴사건으로 비화되지 않고 수습된 것에는 형사의 역할이 크다. 하지만 드라마 <마더>에서 주인공과 소녀를 돕는 조력자들이 거의 여자였다는 점을 떠올리면 더 큰 아쉬움이 남는다. 그런 의미에서 형사의 누나(김선영)가 더 비중 있는 캐릭터로 나왔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밥은 먹었니?”라는 한 줄 대사를 “니 추어탕 무 봤나. 미꾸라지를 튀기 주까”라는 애드립으로 바꾸어내는 김선영이라면 영화에 더 풍부한 정서를 입힐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아이와 도망친 백상아를 만난 그가 “니는 야가 그리 좋드나. 네가 무슨 죄가 있겠노. 이 아와 피붙이로 엮이지 못한 게, 그게 죄지” 라고 말하는 장면은 백상아의 상황과 행동을 너무 빨리 이해한 것으로 보여 어색하다. 그의 캐릭터가 더 비중 있게 다루어졌다면 훨씬 자연스럽게 감독의 심정을 대리하는 해설자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이고, 결말에 대해서도 더 쉽게 납득되었을 것이다.



◆ 나쁜 계모에 대한 직접 응징이 클라이맥스를 장식해야 했을까

영화 <미쓰백>에서 가장 이해되지 않는 대목은 주미경(권소현)의 캐릭터를 그리는 방식이다. 게임중독이 빠진 무책임한 친부의 빈약한 캐릭터에 비해 주미경은 너무 드라마틱하고 화려한 악역이다. 굳이 개를 안고 귀여워하는 모습이나, 다른 사람 앞에서 연극적으로 얼굴을 바꾸는 모습은 남성들이 가지고 있는 가증스러운 ‘김치녀’의 표상을 반복한다. 일종의 정형화된 여성혐오적인 캐릭터인 셈이다. 단란주점에서 일하는 주미경이 마사지사인 백상아의 노동을 폄하하며 공격하는 장면도 성노동을 사이에 두고 하층민 여성들끼리 분열하여 싸우는 구도를 은연중에 내포한다. 특히 소녀를 세워두고 둘이 벌이는 마지막 쟁탈전이 반드시 필요했는지 의문이다. 혈투 직전 주미경이 쏟아내는 집착적인 언사는 작위적이며, 이에 분노한 백상아가 그를 응징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심지어 피를 흘리며 쓰러진 주미경의 머리를 내려치기 위해 다시금 돌을 드는 장면은 과잉된 위악으로 보인다.

불행하거나 미성숙한 부모들이 아이들을 방치하거나 학대하고, 가정에서 돌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사회에서도 보살피지 못하는 복지 시스템에 대한 고발보다 아동학대를 저지르는 가해자(그중에서도 특히 여성)을 악마화하여 직접 응징하는 것에 정서적 에너지를 쏟는 것이 바람직할까. 영화는 백상아의 엄마가 백상아를 학대하고 보육원에 맡긴 이유를 밝히지만, 그 이유가 형사와 관객에게 가닿았을 뿐, 백상아에게도 가닿았는지는 분명하게 그리지 않는다. 요컨대 백상아의 엄마가 남편과 사별 후 우울증과 술에 빠져 어린 백상아를 때렸고, 그런 자신에게서 딸을 보호하기 위해 보육원에 맡겼으며, 이후 딸의 인생을 망친 가해자에게 직접 응징을 가하고 속죄하듯 살다가 고독사 했다는 이야기를 백상아가 받아들이고, 엄마라는 불행한 여자의 인생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경지에 도달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백상아에게는 여전히 자신을 학대한 엄마에 대한 분노와 원한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이며, 이러한 분노가 주미경을 향해 투사된 것으로 읽힌다. 그렇다면 영화가 아동학대에 대해 품은 문제의식도 사회 시스템을 향한 거시적인 관점보다는 가해당사자를 향한 미시적인 분노에 그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든다. 친모와의 화해를 넘어 보살핌의 연대로까지 나아갔던 드라마 <마더>와 비교해보면, 이 지점의 결핍이 두드러져 보인다.

하지만 <미쓰백>이 지닌 결핍을 부각하기보다 응원과 지지를 보내고픈 심정이다. <미쓰백>이 완벽한 영화는 아닐지라도 옳은 방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일본군 위안부’를 다룬 상업영화 <귀향>이 성공한 이후, <귀향>에서 지적되었던 직접적인 성폭력 묘사가 <아이캔스피크>에서는 지양되었고, <아이캔스피크>에서 지적되었던 큰 비중의 남성조력자가 <허스토리>에서는 여성조력자로 바뀌었듯이, 제작이 중단되지만 않는다면 후속작들을 통해 개선될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또한 <미쓰백>의 제작진은 학대받는 연기를 한 아역배우를 위해 전문심리상담이 주기적으로 제공됐음을 밝혔다. 영화 <도가니>에서 성폭행 피해자를 연기했던 아역배우들에 대해 보호조치가 없었다는 문제가 제기된 후, 영화 <소원>의 촬영 때는 아역배우들에 대한 상담이 도입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들이 아직 제도적으로 정착되진 못한 형편이다. <미쓰백> 이후 아역배우에 대한 보호시스템이 법적·제도적으로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미쓰백>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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