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레인’, 누구나 약점은 있다

[서병기의 대중문화 트렌드] KBS 월화극 ‘브레인’이 대세다. 하지만 초반에는 부진했다. 이유가 있었다. 1~2회가 별로 재미가 없었다. 한 마디로 흥미를 유발하지 못했다. 반전을 꽁꽁 숨겨놓은 채 평범하게 시작했다. 그러니 그렇고 그런 의학드라마인줄 알았다. 이미 의학드라마가 여러 편이 방송된 상태이기 때문에 이런 방식으로는 주목을 끌기 힘들었다.

‘하얀거탑’은 초반부터 강력한 연출이 가해졌다. 수술배틀 장면은 긴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브레인’은 출발이 다소 밋밋했다. 10개를 가지고 있는데, 12~13개를 갖고 있다고 말하면서 출발한 드라마가 ‘하얀거탑’이고, 5개밖에 없다고 하면서 시작한 드라마가 ‘브레인’이다.

하지만 캐릭터와 스토리 전개는 부분적인 결함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힘을 가지고 있다. 최고의 연기를 펼치고 있는 신하균(이강훈역)은 임상 실력과 연구 실력이 모두 뛰어나지만 성격이 모나고 야비하며 싸가지가 없다. 성공을 위해서는 누구와도 만난다.
 
이강훈 캐릭터의 대척점에는 인술을 펼치는 청렴주의자 김상철(정진영) 교수가 있다. 김 교수는 환자를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교수 눈에는 철저하게 의료기술만 믿고 있는 이강훈이 좋게 보일 리 없다. 이강훈을 교만하다고 하고 더러운 속물이라고 말한다.
 
이강훈은 임신한 한 암환자에게 아이를 유산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 김상철 교수는 이 환자에게 유산하지 말고 치료해보자고 한다. 그러자 환자는 의사를 바꿔버렸다. 이강훈은 이를 ‘과잉친절’이요, ‘환자 가로채기’라고 말한다.

이강훈과 김상철은 이런 캐릭터로 계속 밀고나갈 줄 알았다. 실제로 의사는 환자와 지나치게 가깝게 지내도 좋지 않고, 너무 멀어도 좋지 않다. 너무 감정적으로 친밀해지면 냉철해지기 힘들다. 의사는 환자에게 정확한 사실을 알려주어야 할 때도 많다. 의사가 자신 가족의 수술을 맡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이강훈처럼 너무 쿨하게 환자를 대해는 것도 좋다고 할 수 없다. 환자는 기계가 아닌 인간이다. 의사는 인간을 다루는 직업이다.  

‘브레인’은 의료기술 신봉자와 인술 신봉자의 대립만 있는 게 아니다. 이들의 관계가 뒤집혀진다. 20년 전 수술하다 죽은 강훈 아버지의 수술을 김상철 교수가 맡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반전이 이뤄진다. 이제 이강훈은 피해자가 되고, 김상철은 가해자가 된 격이다. 그래서 둘 다 성격이 다른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의학드라마들은 대체적으로 환자를 치료하고 돌보는 장면들로 구성된다. 의사 캐릭터도 상당 부분 거기서 나온다. 그래서 의학드라마는 환자 에피소드별로 진행되기 때문에 자칫 흐름이 끊어지기 쉽다.

하지만 ‘브레인’은 ‘하얀거탑’처럼 의사를 바라본다. 의사가 곧 환자다. 그래서 흐름이 끊어지지 않고 긴장감을 계속 유지한다. ‘하얀거탑’은 가난이 준 트라우마를 지닌 장준혁(김명민)이라는 의사가 출세와 욕망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다 병원권력 관계 속에 좌절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하지만 ‘브레인’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신하균이 어렸을 때 생긴 트라우마는 ‘하얀거탑’의 장준혁과 비슷하다. 알콜 중독자 아버지, 가난 등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친다. 실력을 키우고 필요하면 상사를 이용도 하고 로비도 한다. 하지만 좋은 평판을 얻지 못한다. 신하균이 욕을 먹으면서도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다.
 
이강훈이 욕망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서 겪게 되는 이런 모습들은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보여주는 부분이 있다.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이 잘 되려면 실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반면 이강훈의 동기인 서준석(조동혁)은 별로 힘 안들이고 강훈보다 먼저 조교수가 된다. 열심히 하고 때론 무리를 범하기도 하지만 좋은 평판은 얻지 못하는 이강훈의 상황은 연민을 느끼게 하고 캐릭터에 대한 몰입을 만들어낸다. 
 
‘브레인’은 ‘하얀거탑’과 달리 이강훈과 김상철 두 캐릭터의 역전 관계가 만들어졌다. 인술만을 대변하고 항상 편안할 줄 알았던 김상철 교수도 트라우마의 큰 상처에 시달리고 있다. 이를 통해 모든 사람은 누구나 약점이 있음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이강훈은 자신의 아버지를 사망에 이르게 했던 김상철 교수의 성실, 겸손, 순리를 가식으로 본다. 언제나 선한 척, 소탈한 척, 통달한 척하는 그의 선의 뒤에 숨겨진 그 추악한 모습을 반드시 끄집어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강훈은 13일 10회 방송에서 김상철 교수에게 난치암에 걸린 자신의 어머니를 살려내달라며 무릎을 꿇었다. 이 두 의사의 화해의 관계가 만들어지는 지점은 꽤 흥미롭다. 의사는 의료사고를 내기도 하지만 결국 사람을 치료하고 살려내는 직업이다. 앞으로 이 두 의사가 어떤 관계와 상황을 만들어내고 이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할지도 매우 궁금해진다.
 

칼럼니스트 서병기 < 헤럴드경제 선임기자 > wp@heraldm.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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