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애보적 사랑은 이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일까

[엔터미디어=배국남의 눈] 김수현 작가의 ‘천일의 약속’이 20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김수현 작가의 명성과 작품의 완성도에 비해 시청률은 기대이하다.

김수현 작가하면 조건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수식어가 ‘천하의 김수현’이다. ‘언어의 연금술사’, ‘시청률의 미다스’ ‘인기 드라마 제조기’ ‘스타 작가’… 대중매체와 대중이 김수현 작가에 헌사하는 수식어는 끝이 없다. 하지만 ‘천하의 김수현’으로 아우를 수 있다. 그만큼 김수현 작가는 작품의 완성도나 대중성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김수현 작가를 수식하는 말들 속에는 지난 1968년 ‘저 눈꽃에 사슴’이후 40년 넘게 김수현의 드라마가 작품성과 독창성 그리고 대중성(시청률)까지 잡았다는 말이 내포돼 있다.

김수현은 40여년 동안 ‘모래성’‘청춘의 덫’‘유혹’‘내남자의 여자’등의 드라마를 통해 우리 삶의 날 것 그래도 던져놓고 결과적으로 우리네 삶의 꾸며진 허위의식으로 가득 찬 위선, 관행 등을 여지없이 후벼 파 인간의 이중성에 비수를 꽂아 시청자들에게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주기도 하고 ‘목욕탕집 남자들’‘엄마가 뿔났다’‘부모님 전상서’등에서는 우리시대에 상실돼가는 하지만 소중한 전통적 가치나 가족애 등을 빼어난 개연성과 일상성으로 담아내 공감과 감동, 교훈을 선사하기도 했다. 그리고 ‘인생은 아름다워’처럼 우리사회의 편견이나 왜곡된 시선에 사로잡힌 문제들을 정면으로 다뤄 논란과 함께 편견을 개선하는 계기를 부여해 주기도 했다.

김수현의 이 같은 세 가지 유형의 드라마를 공통으로 관통하는 것은 상황과 캐릭터의 정확하면서도 현실적인 묘사, 힘 있는 네러티브, 시청률 고저에 상관없이 흔들림 없는 일관적인 드라마의 전개, 가슴의 폐부를 찌르는 대사 등이다. 이 때문에 지난 40여년 동안 시청자의 기호와 취향이 급변하고 시대의 트렌드가 변했음에도 김수현 드라마는 높은 인기를 끌었고 ‘천하의 김수현’라는 수식어가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20일 막을 내린 20부작 ‘천일의 약속’은 대사를 비롯한 김수현 드라마의 특성이 발현된 드라마였다. 하지만 15~18%대의 시청률을 기록해 김수현 작가의 작품에 대한 관성적 기대에 못 미치는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연기자, 캐릭터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순애보적 사랑을 바라보기에 우리 현실이 그리고 우리가 너무나 물화되고 조건화됐으며 사랑 역시 그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2011년 대한민국의 자화상 때문은 아닐까.

김수현은 ‘천일의 약속’ 집필을 마친 뒤 가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사랑이 넘쳐나는 시대예요. ‘사랑해요’라는 말이 깔렸죠.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사랑은 실종된 지 오래입니다. (‘천일의 약속’을 통해)이런 사랑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라고 주제와 기획의도를 밝힌 바 있다.

‘천일의 약속’은 착하고 재벌인 부모를 둔 여성, 향기(정유미)와 약혼한 젊은 건축가 지형(김래원)이 결혼식을 앞두고 사랑하는 여자 서연(수애)을 선택한다. 서연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동생과 함께 고모집에서 지내며 곤궁한 생활을 한 뒤 신춘문예의 당선되고 출판사 직원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지형이 약혼녀와 결혼을 앞둔 시점에서 자신이 사랑한 서연이 치매 걸린 사실을 알게 되면서 진정한 사랑을 하는 사람이 서연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향기와 파혼한 뒤 서연을 지극한 사랑으로 보살핀다.



‘천일의 약속’이 시작되자마자 시청자들의 상당수가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며 모든 조건과 착한 심성을 갖춘 약혼녀가 아닌 치매에 걸린 가난한 여성을 택한 지형부터 자신을 버리고 간 남자에게 원망보다는 행복을 빌어주며 기원하는 향기에 이르기까지 비현실적이라는 비난을 쏟아냈다. 서연이 치매의 증상을 노골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드러낼 때마다 시청자들은 그 상황을 불편해하며 ‘천일의 약속’에 몰입하지 못했다. 하지만 ‘천일의 약속’이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가 너무 물화된 것은 아닐까. “사랑해”는 편리하고 조건 좋을 때만 나오는 말이고 힘들고 어려워지면 사랑이 식어버리는 편리한 일회용 인스턴트적 사랑이 난무한 현실이 진정한 사랑을 비현실적인 것이라고 매도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김수현 작가의 말처럼 ‘천일의 약속’은 진정한 의미의 사랑은 실종된 시대에서 이런 사랑 즉 모든 어려움을 뛰어넘는 조건 없는 순애보적 사랑, 진정한 사랑을 보여주는 드라마다.

하지만 현실과 우리는 드라마 속에서 드러난 진정한 사랑을 감동이나 공감을 하기에는 너무나 물화됐다. 사랑역시 물적 토대라는 외형적 조건의 만남의 또 다른 말이라는 것이 통용되는 상황이다. 치매라는 치명적인 병을 앓고 있음에도 사랑하기에 안고 가는 한 남자의 진정한 사랑에 몰입하고 공감하기에는 우리가 너무 조건의 사랑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청순하고 지순한 사랑을 그린 드라마가 1990년대 많은 인기를 끌었고 청순파 연기자들이 스타덤에 올랐다. 이때만 해도 시청자들은 드라마 속 순애보적 사랑에 대리만족을 하거나 동일시하며 눈물을 흐리거나 감동을 했다. 하지만 사랑마저 물화된 가치로 평가하는 2011년 오늘의 현실에서 진정한 사랑이라는 순애보적 사랑에 더 이상 눈물 흘리지 않는다. 오히려 외모, 재산, 학벌, 직업, 연봉 등 스펙으로 대변되는 조건들이 남녀 간의 만남에 우선시되는 불편하지만 적나라한 현실을 곧잘 보여주는 SBS ‘짝’에 공감하며 몰입한다.

‘짝’에 몰입하며 환호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천일의 약속’의 조건 없는 사랑에 공감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사랑의 의미와 현실의 변화가 ‘천일의 약속’의 기대 이하 성적 원인은 아닐까?


칼럼니스트 배국남 knbae@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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