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돌 중심의 한류가 달라지고 있다

[엔터미디어=조원희의 로스트 하이웨이] 미국 호러의 젊은 실력가 럭키 맥키의 신작 ‘더 워먼’에는 이런 장면이 등장한다. 뒤틀려 있는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순수한 몽상가인 막내딸이 라디오로 노래를 듣고 있다. 뭔가 기묘한 리듬을 지닌 이 노래가 어느 나라 노래냐고 물어본다. 막내딸은 ‘코리아’라고 대답한다. 아빠는 “코리아 노래, 그럴 듯 한데”라고 평가한다. 미국 시골의 전형적인 가정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사건을 다룬 이 영화에서 ‘한국 노래’는 요즘 평범한 아이들이 즐겨 듣는 노래로 묘사된 것이다. 일부 대중들에게는 믿어지지 않는 사실일지 모르겠으나 KPOP은 실제로 전 세계에, 특히 영미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처음 KPOP이 아시아권을 넘어 유럽과 미국으로 전파되는 데는 인터넷의 영향이 컸다. 특히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마니아들이 늘어나고, KPOP을 따라 부르거나 노래에 따라 춤을 추는 UCC들이 등장하면서 KPOP이 외국에서 ‘신기한 구경거리’의 자격을 조금 넘어선 형태로 히트하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 내에서 아이돌 그룹들이 번성하면서 KPOP=아이돌 팝이라는 공식이 세워졌다. 이렇게 ‘실제 아티스트가 진출하지 않은 가운데 먼저 노래가 히트하는 경우’는 우리에게 익숙한 예다. 바로 1990년대경까지 한국에서 서구 팝을 받아들이는 형태가 그랬기 때문이다.

KPOP이 영미권에 ‘알려진’ 이후 이 영향력을 이용해서 어떻게 ‘수금’할 것인가에 대한 노력이 계속됐다. 원더걸스같이 아예 미국으로 진출해서 그 곳에서 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 SM의 아티스트들처럼 대규모 콘서트를 통해서 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최근 아이돌 그룹들은 일본과 중국 활동을 통해서 전 세계 진출에 대한 트레이닝과 교두보를 확보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현재의 상황이다. 어쨌든 우리가 이곳에서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KPOP은 아이돌 그룹들의 노래 위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 영미권에서 KPOP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최근 미국 MTV의 네트워크 중 하나이며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타겟으로 한 ‘MTV IGGY’는 2011년 결산을 했다. 그중 ‘최고의 데뷔 앨범’을 선정하면서 타블로의 솔로 앨범을 5위에, 그리고 인디 밴드 칵스의 앨범을 4위에 랭크시켰다. 이것은 영미권의 팝 음악 감상자들의 관심이 한국의 아이돌 그룹에서 다양한 장르의 음악으로 넓어지고 있다는 증거다. 원래 MTV IGGY는 아이돌의 영향력이 지배적인 매체였다. 지난 11월에는 같은 매체에서 ‘최고의 신예 밴드’ 1위로 2NE1을 선정하기도 했다.

‘춤과 노래를 동시에 선보이는 퍼포먼스’만이 KPOP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 점차 알려지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한국 내에서도 사실 또래 집단을 위주로 한 아이돌 그룹의 히트에 가려 수많은 연주하는 밴드 뮤지션들이나 경력 높은 가창자들의 활동이 ‘나는 가수다’ 류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아니면 좀처럼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하지만 아이돌 그룹의 번성과 함께 한국 인디 밴드들의 약진 역시 대단한 상황이다. 현재 장기하와 얼굴들이나 10Cm 혹은 국카스텐 그리고 앞서 언급된 칵스 등의 밴드들은 이제 ‘인디’라는 꼬리표를 떼어버리는 것은 물론 국제적인 활동의 가능성도 가질 수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 ‘인지도’라는 면에서 2이돌 그룹들에 눌릴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상품성’에 있어서는 그들 못지 않다. 사실 ‘연주하는 밴드’는 한국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언제나 톱을 차지하는 팝 음악 최고의 상품이다. 그리고 유투나 메탈리카, 혹은 라디오 헤드 같은 예를 들면 알 수 있듯이 한동안의 유행으로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롱런이 가능한 아이템이다. 그렇게 한국의 ‘연주하는 밴드’ 뮤지션들이 주목받기 시작했다는 점은 매우 희망적인 소식이다.

‘톱밴드’에 출연했던 고교생 밴드 ‘엑시즈’는 유니버설 뮤직 재팬과 전속 계약을 맺었다. 한국 기획사가 아닌 해외 유명 음반사가 한국의 신인 밴드를 직접 접촉해 계약을 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KPOP의 다음 아이템은 ‘밴드’라는 사실을 그들이 예상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일본에 한국의 ‘연주 밴드’들이 진출한 예가 있었지만 그들은 밴드의 형태를 지닌 아이돌 그룹일 뿐 진짜 밴드와는 거리가 있었다. 유니버설 뮤직은 ‘진짜 한국의 밴드’를 원했고 그 선택이 엑시즈였던 것이다. 이렇게 한류는 변화하고 있다. 그 주목받는 장르가 넓어지고 있고, 또 그 무대 역시 확장되고 있다.


칼럼니스트 조원희 owen_joe@entermedia.co.kr


[사진=SM, 룬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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