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친구들’, ‘부부의 세계’인 줄 알았더니 ‘임성환 월드’였네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JTBC 금토드라마 <우아한 친구들>은 이전에 방송된 <부부의 세계>와는 다르다. 아마 첫 회를 본 순간부터 시청자들은 짐작했을 것이다. 이것은 여주인공 중심의 이야기가 아닌 네 명의 철이 덜 든 중년남자들의 소동극에 가깝다. 여기에 20년 전의 죽음을 둘러싼 스릴러를 현재의 살인사건과 교차시키며 핏빛 양념을 두루두루 뿌린다.

아쉽게도 <우아한 친구들>은 첫 회에 스릴러의 묘미는 거의 보여주지 못했다. 오히려 중년남자들의 서사를 코믹하게 풀어내는 데 집중했는데, 그 방식이 좀 구차했다. 중년의 대학동창 절친끼리 술 마시다, 옆자리 젊은 여성들에게 다가가 괜히 추파를 던지는 장면들. 혹은 중년남성들끼리 화장실에서 한 줄로 서서 우르르 소변을 보며 오줌줄기에 대해 토론하는 장면 같은 것들. 이것은 딱히 우아하지도 유쾌하지도 그렇다고 스릴이 넘치는 장면도 아니었다.

특히 화장실에서 갑자기 젊은 남성이 등장해 유아용 소변기 앞에서 세찬 오줌 소리를 들려준다고 시청자의 웃음보가 터질 일은 없다. 소변 소리는 쫄쫄이든 콸콸이든 그냥 구차할 뿐. <우아한 친구들>은 이런 구차한 장면을 그것도 첫 회에 너무 길게 보여줬다.

하지만 첫 회 후반부에 절친 중 한 명인 천만식(김원해)의 죽음 장면은 또 약간 달랐다. 퇴근길 만원버스 안에 있던 천만식, 갑자기 가슴을 움켜쥔다. 하지만 버스 안에 탄 승객들은 아무도 그를 돌아보지 않는다. 이때 깔리는 것은 윤종신의 서정적인 음악 <배웅>. 이 잔잔한 <배웅>에 맞춰서 천만식은 만원버스 안에서 결국 죽고 만다. 서정적인 음악과 무표정한 승객들, 그리고 뜬금없이 심장마비로 죽는 캐릭터. 잠깐, 이것은 구차와는 다른 괴랄에 가까운 장면인데, 어디선가 기시감이 느껴졌다.

우리는 만원버스 안은 아니지만 갑자기 방안에서 <웃찾사>를 보다가 죽는 등장인물을 본 적이 있다. 이런 장면은 아무나 쓸 수 있는 장면이 아니었다. 설마 <우아한 친구들>의 제작진은 <부부의 세계>가 아니라 이제는 전설 속의 이름으로 사라진 임성한 작가의 세계를 오마주하려는 것 아닐까?

살짝 의심은 갔으나 일단 그 생각은 접어두기로 했다. 무엇보다 <우아한 친구들>암세포도 생명이잖아요같은 충격적인 대사를 날릴 법한 힘도 없어 보이는 작품이기도 했다. 회차가 진행되는 내내 <우아한 친구들>의 대사는 1차원적이고 설명적인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후 <우아한 친구들>은 안궁철(유준상)과 남정해(송윤아) 부부 사이에 들어온 주강산(이태환)과 그의 죽음을 바탕으로 스릴러로 전환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안궁철의 친구들 사연이 안 궁금한데도, 계속 그들의 사연을 보여주느라 드라마는 도돌이표를 찍었다. 그 중에도 또 친구들은 천만식을 잊지 못해 다 같이 등산을 한다. 그 장면을 또 드론까지 이용한 촬영으로 멋있게 보여준다. 그런데 왜 드라마가 절반이 지나가는 길목에서 그들이 굳이 산에 가는 것까지 길게 보여줘야 하나? 이거 100부작 넘는 일일드라마 아니라 스릴러에 가까운 미니시리즈 아니었나, 이상하잖아.

그런 와중에 8회에서는 또다시 이해할 수 없는 긴 장면이 나온다. 절친들의 첫사랑 백해숙(한다감)의 가게로 몰려간 절친들의 아내들. 그리고 이들 앞에서 한다감은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이어 술에 취한 남정해 역시 마이크를 잡고 <분홍립스틱>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부른다. 그리고 절친들의 아내인 강경자(김혜은)와 유은실(이인혜)은 남정해를 데리고 그 술집을 빠져나간다. 이어 강경자의 가게에서 남정해는 또 노래 한 곡을 더 부른다.

이쯤 되면 <우아한 친구들>은 진심 임성한 월드를 노렸는지도 모르겠다. 긴 노래방장면과 노래 연속으로 완곡하기(심지어 아현동마님은 한 회차를 원더걸스의 텔미부르기로 다 때웠다)는 임성한 작가의 특기였다. 이제 안궁철이 아내와 화해하기 위해 왕모나 황마마처럼 여장만 하면 완벽한 임성한 월드 오마주다. 아니면 <오로라공주>처럼 등장인물들이 하나하나 죽어나가는 방법도 있겠다. 어쩌면 이미 세상을 뜬 천만식이 절친 중 한 명인 정재훈(배수빈)에 빙의해 <신기생전>처럼 눈에서 레이저를 번뜩이며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방법도 있다.

불행하게도 아직까지 <우아한 친구들>에서 재미 찾기란 고작해야 어이없는 몇몇 장면에 실소하며, 임성한 월드를 그리워하는 정도 밖에 없다. 그만큼 <우아한 친구들>은 스릴러로도 코믹으로도 드라마로도 뭐하나 콕 집어 집중할 수 있는 똘똘한 면이 없어서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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