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서유기’, 시대가 바뀌어도 통하는 하드코어 캐릭터 게임 예능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5년 전 tvN 예능 <신서유기>가 첫 시즌을 시작했을 때 시청자들은 그 조합만으로 이 프로그램이 KBS <12>의 초창기 풍경을 재연할 거라고 예상했다. 나영석 PD와 신효정 PD가 메가폰을 잡고 강호동, 이수근, 은지원, 이승기가 포진한데다, 시즌6까지 해외에서 촬영되었기 때문에 여행이라는 콘셉트도 가져왔다. 게다가 이들은 그 곳에서 여행과 더불어 게임을 한다. 그러니 <12>이 갖고 있는 두 가지 핵심적인 소재인 여행복불복 게임을 그대로 재연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외형은 조금 다른 포장지를 썼다. 해외여행이라는 공간의 변화는 <12>의 국내여행과 사뭇 다른 그림을 만들었고, 매 시즌마다 저마다의 캐릭터 분장쇼를 이야기에 덧붙였다. 강호동, 이수근, 은지원은 변함없이 시작부터 현재 시즌8까지 한 번도 빠짐없이 프로그램에 참여함으로서 본색을 유지했고, 여기에 젊은 출연자들이 가세하면서 새로운 대결구도를 만들고, 캐릭터들을 창출했다. 안재현, 조규현, 송민호, 피오가 그들이다.

<신서유기>는 시즌7,8에 이르러 이제 국내를 배경으로 하기 시작했다. 시즌7홈커밍이라는 콘셉트에 따라 국내 촬영이 이뤄진 것이지만, 시즌8은 코로나19의 영향이다. 지리산과 추자도에서 벌어진 <신서유기8>은 그래서 더더욱 <12>과 유사해졌다. 그들은 국내의 특정 공간으로 가서 그 곳의 특산물로 차린 맛난 음식들을 두고 복불복 게임을 한다. 물리적 거리두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외부로 나가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아 주로 방구석에서 벌이는 게임을 연속적으로 보여준다.

이제 시청자들은 프로그램의 흐름을 거의 알고 있다. 음식을 앞에 놓고 갖가지 제작진이 제안하는 게임을 하고, 잠들기 전에는 여지없이 기상미션으로 물건 지키기 게임이 펼쳐진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 너무 비슷한 패턴의 반복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게임도 쥐를 잡자 게임, 고요 속의 외침 같은 익숙한 게임에 고깔 쓰고 음식 먹기앞잡이 콘셉트를 더해 약간의 변형을 준 것들이다.

지금까지의 흐름을 놓고 보면 시즌8을 이어오고 있는 <신서유기>가 여전히 빵빵 터트리고 시청자들을 몰입시키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게 느껴진다. <신서유기8>은 여전히 뜨거운 반응을 입증하듯 최근 방송에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기도 했다. 이런 일이 가능한 건 지금도 여전히 여행과 복불복 게임을 양 날개로 삼고 방영되고 있는 KBS <12>10년을 훌쩍 넘기는 그 세월동안 부침은 있었지만 지속적인 호응이 이어져온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어찌 보면 예능 프로그램의 변함없는 재미적 요소를 갖고 있어 비슷한 패턴을 반복해도 또 시대가 바뀌어도 힘을 잃지 않는다고나 할까.

이미 리얼 버라이어티 시절은 지난 지 오래지만 그래도 <12><신서유기>가 건재한 건 게임 예능이 갖는 하드코어적 재미요소가 가진 힘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신서유기> 속 게임을 보다보면, 1984년부터 2009년까지 허참이 진행하며 사랑받았던 KBS <가족오락관>이나, 그 이전 1976년부터 1985년까지 변웅전 아나운서가 진행했던 <명랑운동회> 같은 프로그램들이 떠오른다.

<신서유기>는 그래서 리얼 버라이어티쇼라기보다는 시대가 바뀌어도 변함없이 시청자들이 빠져드는 게임 예능의 캐릭터 버전처럼 보이는 면이 있다. 물론 같은 게임을 반복해도 <신서유기>가 새로운 재미를 만들어내는 건 훈민정음요소 같은 걸 더함으로써 변화를 모색하는 제작진과 더불어, 게임의 즉흥적인 상황들 속에서 놀라운 케미와 순발력으로 예상 못한 웃음을 선사하는 출연자들의 노력 덕분이다.

특히 이런 하드코어 예능의 힘은 코로나 19 같은 외부로 펼쳐나가기보다는 내부 안에서의 재미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더욱 빛을 발하기 마련이다. 과거 <12> 시절 갑작스런 기상으로 가려던 섬을 가지 못해 작은 방 하나를 빌려 벌였던 게임이 더 큰 재미와 몰입감을 주었던 것처럼, <신서유기8>은 해외로 갈 수 없는 현 상황 속에서 보다 하드코어적인 게임 예능의 본질에 충실함으로써 활로를 찾아내고 있다. 힘들어도 웃음으로 버틴다는 덕목이 거기에서는 발견된다. 이렇게 버티다 보면 언젠간 더 멀리 갈 수 있는 시간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전하며.

엔터미디어 채널 싸우나에서 정덕현 평론가가 한글사랑과 재미유발 사이에서 갈등을 빚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의 자막에 대해 얘기 나눠봅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